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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1916년 별세하기 직전의 나철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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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국권침탈에 대응하는 방략 중에는 크게 두 가지가 제시된다.

하나는 위정척사사상에 준거한 의병활동이고, 다음은 개화사상에 바탕하는 애국계몽운동이다. 그런데 놓친 부문이 있다. 종교활동으로 민족의 구심력을 확보하고 원심력을 확대하여 국권을 회복한다는 민족종교운동이다. 나철의 대종교 중광과 손병희의 동학 - 천도교 개칭이 그것이다. 

나철이 일본에서 귀국할 때 그의 가슴 속에는 '국수망이도가존(國雖亡而道可存)' 즉 "나라는 비록 망했으나 정신은 가히 존재한다"는 신심(信心)이 불타고 있었다. 나라가 망했다는 절망감속에서 도존(道存) 즉 단군사상을 계승하여 광복의 희망을 찾겠다는 역사인식이 새롭게 정립되었다.

1909년 1월 15일 밤 12시, 서울 북부 재동 소재 취운정 아래 있는 작은 집(재동 8통 10호의 여섯 칸 짜리 작은 한옥)에서 나철을 중심으로 이기ㆍ오기호ㆍ유근ㆍ김인식ㆍ정훈모ㆍ김춘식ㆍ최전ㆍ김윤식 등 수 십 명이 모였다. 하나같이 나철과 오랜 인연이 있는 동지ㆍ선배이거나 항일투쟁 과정에서 뜻을 함께한 인사들이다. 이 자리에 당대의 걸물 김윤식이 참석했다는 것은 이채롭다. 북쪽 벽에는 단군 왕조의 신위를 모시고, 나철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대례(祭天大禮)에 이어 「단군교 포명서(檀君敎佈明書)」를 공포하였다. 

나철은 이날을 계기로 나인영에서 외자 이름의 '밝을 철(喆)'로 바꾸었다. 밝은 마음으로 한밝(단군)을 모시고 조국을 재건하는 데 헌신하겠다는 뜻이었다. 이후 단군교(대종교) 관련 주요 인사들도 과거의 이름을 외자로 개명하는 데 동참하였다. 김교헌(金敎獻)은 김헌(金獻), 신규식(申圭植)은 신정(申檉). 조완구(趙琬九)는 조량(趙亮), 조성환(曺成煥)은 조욱(曺煜)으로 바꾸었다. 

한민족 전체의 힘으로 일제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국조 단군을 구심점으로 새로운 민족종교를 창도하여 거족적으로 자위투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점에서 나철 등이 계획한 것이 바로 1909년 단군교(뒤에 대종교)의 중광인 것이다.

나철은 단군교가 단군조선으로부터 계승되어 부여에서는 대천교(代天敎)로, 신라에서는 숭천교(崇天敎)로, 고구려에서는 경천교(敬天敎)로, 발해에서는 진종교(眞宗敎)로, 고려에서는 왕검교(王儉敎)로 내려오다가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 원종(元宗) 때 단절되었다고 보고 이를 다시 중광한 것이다. (주석 1)

나철은 종교를 새로 창도한 것이 아니라 단군교를 중광(重光)하였다. '중광'이란 다시 일으킨다는 의미다. 동학의 최제우나 증산교의 강일순처럼 새로운 종교를 창교한 것이 아니라 "나철은 창교가 아닌 중광을 선택함으로써 단군신앙의 원형인 전래 신교의 계승의식을 분명히 천명했다." (주석 2)


단군교의 '중광'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실로 고려 원종시대, 몽고의 침입에서부터 700년간 폐쇄되었던 신교의 교문이 재개되어, 한말의 어둡고 암울한 가운데 일말의 서광이 민족의 전도를 밝게 비쳐주게 된 것이다. 이 날이 한국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중광하는 엄숙한 길일(吉日)이며 우리 대교의 중광절(重光節)이다. 중광이란 다른 종교와 같이 새로 창립한 종교가 아니라, 단군천조로부터 6,000년 전의 옛날부터 전하여온 신교가 몽고의 고려 침입 이래 1천년 가깝게 명맥만을 전해온 진종대도의 빛이 다시 빛나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민족 재생의 깃발이 솟아올랐다. (주석 3)

1909년 1월이면 일제가 '한국 주차 헌병에 관한 건'을 공포, 일본 헌병의 경찰권을 강화하고 병력을 증가시켜 조선의 요시찰 인물들을 감시하던 시점이다. 해서 한 밤중에 항일 비밀결사체로서 단군교를 중광하였다. 

단군교의 교조로 추대된 나철은 문장이 뛰어났으며, 또한 인맥을 갖춘 지도자로, 일제를 구축하려는 불타는 구국운동의 화신이었다. 이에 서울의 명문인사ㆍ구한말양반ㆍ항일지사ㆍ열사ㆍ애국청년들이 서로 다투어 단군교에 입교하였다. (주석 4)


주석
1> 박영석, 「대종교와 민족독립운동」, 『민족사의 새시각』, 213쪽, 탐구당, 1986.
2> 김동환, 「종교계의 민족운동」, 88쪽, 독립기념관, 2008.
3> 강수원 편저, 『우리배달겨레와 대종교역사』, 175쪽, 한민족문화사, 1993.
4> 박영석, 앞의 책, 21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민족의 선각 홍암 나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국난기와 국망기에 온몸을 바쳐 구국과 독립을 위해 나섰는데, 역사가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국민에게 잊혀진다면 어찌 건강한 사회라 할 것이며,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태그:#나철, #나철평전, #홍암, #홍암나철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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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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