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6 18:14최종 업데이트 20.11.2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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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낙태죄 부분 개정안이 원안 그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형법에 규정된 '낙태의 죄'를 폐지하지 않은 채 예외조항을 추가해서 임신 14주 이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되 14주에서 24주 사이에는 일정 사유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당·정·청 협의를 거치며 '낙태죄 폐지 여부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기류에 대해 여성계와 법조계는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낙태죄 존치를 명문화한 정부안에 반대하며 전면 폐지가 합당하다는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고,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도 낙태죄 완전폐지를 주장하며 연이어 항의집회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새로운 법안을 입법하라고 주문한 기한은 오는 12월 31일까지이다.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입법기한까지 낙태죄 개정작업은 순조로운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죄 전면폐지를 요구해 온 여성계와 법조계는 낙태죄를 사실상 유지하는 정부 개정안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0월8일 있었던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의 청와대 앞 시위 ⓒ 권우성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그는 정부안에 반대하며 낙태죄 전면폐지안을 발의한 첫 국회의원이다. 정부안이 입법 예고된 지 닷새 만인 지난 10월 12일 그는 낙태죄를 범죄로 보지 말 것과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입법원칙으로 삼을 것을 주장하며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 27장을 전면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성계 출신의 국회의원으로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여당 의원으로서 정부안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이 흔치 않은 현실에서 단연 눈에 띄는 행보였다. 

여성학 전공자로는 처음으로 국회에 입성한 사람. 미국 클라크대학에서 여성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명지대 교수와 성폭력 전문연구소 '울림'의 초대소장을 거쳐 2017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하던 권인숙은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21대 국회의원이 됐다. 공식 이력서에 쓰일 법한 그의 인생행로는 평탄하고 순조롭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니다.


권인숙은 성폭력 피해 여성이다. 1982년 서울대 의류학과에 입학한 그는 스스로 공장 노동자의 삶을 택했다가 1986년 위장취업자로 부천서에 체포되고 거기서 강압적 성추행을 당했다. 경찰관 개인의 우발적인 일탈이 아니었다. 여성 시국사범에게 가해지는 공안기관의 성적 학대와 폭력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걸 드러내 폭로하고 싸운 이는 그가 처음이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과거의 자기 이력을 정치의 명분으로 삼거나 무용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다만, 그때 그랬듯이 국가적 제도적 폭력의 제물이 되는 여성과 아동과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활동한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과 사회적 약자가 부딪치는 현실의 벽은 완강하다. 권인숙은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이란 권력으로 어떻게 자신의 미션을 수행하려 할까?

제대로 된 낙태 논쟁이 없었던 나라
 

지난 16일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만난 권인숙 의원(좌)과 이진순 와글 이사장(우) ⓒ 권인숙의원실

 
지난 16일 국회의원 회관으로 그를 찾아갔다. 의원실 한쪽 벽면을 빼곡이 채운 서가 때문일까. 의원실이라기보다는 교수 연구실처럼 보이는 공간이었다. 

- 제가 가 본 의원실 중에 책이 제일 많네요. 

"갖다 놓을 데가 없어서요. (웃음) 버리고 골라내야 하는 건데. 그 정신도 없어서..."

-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낙태죄 개정안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정부 개정안 입법예고가 나온 게 10월 7일인데, 닷새 만에 바로 전면 폐지 개정안을 내놓으셨어요. 정부 개정안이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미리 준비해 두신 건가요?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서부터 낙태법은 제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전에 법무부장관도 만나고 여당 의원들도 만났어요. 법무부장관도 폐지 의견에 동의하시고 법무부 양성평등위원회도 낙태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권고를 해서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었는데..."

- 그런데 왜 이런 정부안이 나왔을까요? 

"보건복지부나 정부 부처에는 '균형'이란 개념이 강하게 작용해요. 한쪽에는 여성, 한쪽에는 종교계나 이런 쪽 의견을 놓고 균형을 맞춰 안을 만들려고 하죠. 문제의 직접적 당사자는 10대부터 40대까지 여성들인데 그들의 목소리를 (종교계 등과) 등가로 보려는 하는 기계적 균형이 문제죠. 입법 예고가 가능한 시기까지 어떻게든 합의를 보면서 내놓으려고 하다 보니까 졸속적인 안이 나온 게 아닌가 싶어요."

- 이번에 공동발의자로 참여하신 분들을 보니 민주당 내에 여성계를 대표한다고 하신 분들도 많이 빠져있고 남성 의원은 한 명도 없어요.

"빨리 입법 발의를 하기 위해서 알음알음 이야기 나눈 분들과 서둘러 안을 낸 거고요, 공동발의자에 이름은 안 올렸지만 적극적으로 돕는 분들도 계세요."

- 그런데 왜 민주당 당론으로 정하질 못합니까?

"정부안이 나왔으니까요. 민주당으로서 그건 불가능해요."

- 지금 당내 중론은 어떻습니까?

"일단 정부안이 나오면 정부안으로 많이 기울게 되죠. 부처간에 조정이 된 안이니까. 그러긴 해도 법사위에서 어떻게 다뤄지느냐가 중요한데 정부안이 나오고 나서 여성계의 반발이 강력하고 국회 청원에도 10만 명이 참여했잖아요. 정부안 그대로 가기도 쉽지 않겠구나 하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요.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기계적 균형론도 조금씩 깨지는 것 같고요."

- 지난해 4월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낙태죄에 대한 여론이 최근 10년 사이 크게 변화한 걸 볼 수 있어요. 2010년에 34대 53으로 낙태죄 유지 여론이 높다가 2019년엔 58대 30으로 폐지론이 크게 앞질렀죠.

"지난해에 헌법재판소에 법무부가 낸 변론요지서만 해도, 낙태를 원하는 여성에 대해 '성교는 하되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규정해서 '문란한 성'의 문제로 몰아가기도 했는데, 작년에 이어서 제대로 된 공론화과정을 거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지금까지 전 세계 중에 우리처럼 낙태를 둘러싼 논쟁을 제대로 안 한 나라는 없을 거예요. (웃음)"

낙태죄 정부 개정안은 사문화된 법에 날개 달기

그간 우리 사회는 공정한 논쟁을 뒷받침할 객관적 자료조차 제대로 확보해 놓지 못했다. 2011년 이후 7년 만에야 실시된 201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가 현재로선 가장 최근의 것인데, 만 15세~44세 여성응답자 1만 명 중 임신중절 평균 연령은 28.4세, 평균 횟수는 1.43회, 전체 임신여성의 19.9%가 임신중절을 경험했다고 집계됐다.

임신중절 이후 적절한 휴식을 취했다는 여성은 47.7%에 불과하고 54.6%가 죄책감, 우울감, 자살충동 등 정신적 증상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주제의 민감성 때문에 정확하게 답변하기 어려웠을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혼의 저연령층 여성의 현실은 이보다 더 심각할 것으로 추정된다. 낙태죄 형법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75%, 가장 큰 이유는 '인공임신중절시 여성만 처벌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 지금 정부안의 한계는 뭐라고 보십니까?

"가장 큰 문제는 사문화된 낙태죄를 다시 살려내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에요. 형법은 원래 아주 엄격하고 한정적인 법이라서 엄정하게 지켜지도록 만들어지는데, 숙려제니 상담확인서니 임신 주수에 따른 규정 같은 걸 줄줄이 붙여놔서 형법이 아주 길게 늘어났어요. 임신 주수라는 것도 명확한 측정이 쉽지 않은 불명료한 개념인데 온갖 모호한 것들을 다 붙여놔서 오히려 사문화된 법을 다시 살아나게 만들었죠.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명백한 퇴행이에요."

- 임신 주수라는 게 정확하게 딱 측정이 되기 어렵다는 걸 모르나요? 특히 생리가 불규칙한 사람들은 임신여부를 확인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리는데.

"청소년들이 제일 문제가 되는데 청소년들은 자기가 임신한 것도 잘 모르고 아니겠지 하다가 24주를 넘기는 게 드문 일이 아니에요. 청소년 입장에서, 낙태를 범죄라고 규정할 때와 범죄가 아니고 사회가 의료 행위로 받아들여 줄 때 언제 더 빨리 주변에 의논하고 처리할 수 있겠어요? 근본적으로 여성의 임신중지를 국가가 범죄로 다루는 것 자체가 문제죠."

- 낙태반대자들은 태아의 생명권을 주장합니다. 

"생명권을 지켜가는 방식은 여성의 삶과 건강권에 토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의 선택과 결정을 잘 지지해 주는 것이 생명을 존중하는 것이죠."

실제로 미국 거트마커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낙태를 금지하거나 산모의 건강이 위급한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는 국가의 낙태율이 천 명당 37건인데 비해, 낙태를 대체로 허용하는 국가는 34건으로 나타났다. 낙태허용이 낙태율을 높일 거라는 반대론자들의 주장과는 다른 결과이다. WHO 통계에도, 안전하지 않은 낙태가 전 세계 산모 사망 주요 원인 중 3위를 차지하며 이로 인해 장애를 얻는 경우도 500만 건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은 낙태가 아니라 여성의 몸을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국가 제도라는 주장이다. 

나는 '권양'이 아니라 권인숙입니다 
 

인터뷰 중인 권인숙 의원 ⓒ 권인숙의원실

 
- 이제 국회에 오신 지 반 년이 되었죠? 사실 더불어시민당 후보로 이름이 공개되었을 때 많이 놀랐어요. 해보니 어떠세요?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왜 없겠어요? (웃음) 그런 생각이 자꾸 올라오는데 꾹꾹 누르고 있죠. 책임감으로 버티자 하면서."

- 뭐가 제일 힘든가요?

"정치란 게 자기를 내세워야 하는 일이잖아요. 그게 체질적으로 좀 안맞는 것 같고, 차분하고 길게 의제를 만들고 대안을 찾아가야 하는데, 뭔가 당장 사건이 만들어지고 거기 맞춰서 현안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행태가 되는 것 같아 아쉽죠."

- 권인숙이란 이름이 세간에 처음 알려진 게 언제일까요? 부천서 성고문사건의 변호인이셨던 고 조영래 변호사의 유명한 변론 첫머리도 "권양,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삼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람은 누구인가"로 시작하지요. 보통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실명 노출을 피하는데요.

"제가 밝혔죠. 87년 6월항쟁 뒤에 출소해서 8월에 거제 대우조선 이석규 열사 영결식에 갔을 때던가, 거기서 제가 이름을 밝혔어요. 권인숙이라고."

- 아, 왜요?

"'저, 권양입니다' 하는 건 너무 웃기잖아요? (웃음)"

- 같은 시대를 산 여성으로 부천서 성고문사건이 알려지고 난 뒤 망치로 한 대 크게 얻어맞는 기분이었어요.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사는 느낌이었습니다.

"너무 과거 일이어서... (웃음) 전 당시에 사실 크게 고민한 것 같지 않아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다고 생각했죠. 제가 부끄러워할 일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요."

- 당시 문귀동 경장과 관련자들을 고발하고 나서도 바로 유죄판결이 난 게 아니잖아요. 6월항쟁이 지나고 88년에 대법원에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지기까지 검찰은 문귀동을 기소유예 처분으로 풀어주면서 '운동권이 성까지 혁명의 도구로 삼는다'고 오히려 피해자인 권 의원을 비방했어요. 그 과정을 어떻게 견뎌내셨어요?

"나는 명백히 사실을 말하는 거고, 경찰에서 거짓말을 하는 게 계속 드러나는 상황이었으니까 언론이나 공안기관에서 하는 말이 개인적 상처나 트라우마로 크게 남진 않았어요. 제가 정말 힘들었던 건 다른 건데..."

- 뭐죠?

"감옥에서 나온 뒤에 일종의 '작은 영웅'이 되어 있는 삶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내가 나 자신을 책임지고 감당해야 하는데, 내게 요구되는 책임은 너무 무거워서."

- 성폭력 피해자에 대해서는 이중 잣대가 작용해요. 불의를 고발하는 투사거나 연약하고 보호해 줘야 하는 희생자거나.

"맞아요. 희생자 보호 프레임은 너무 웃겨요. 제 키가 168cm인데 사람들은 제가 굉장히 작은 줄 알았대요. (웃음) 남들은 '아주 강한 투사' 아니면 '연약한 피해자'라는 두 개의 박스로 저를 바라보는데, 그걸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포기했죠. 사람들은 그냥 보고싶은 걸 보는구나. 이건 바꿀 수 없겠구나. 그렇게 보든 말든 나는 내 삶을 살아야지, 노력해서 바뀔 수 있는 게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1989년 6월 13일 부천서 성고문사건 공판에 참석하는 고 조영래변호사와 권인숙 ⓒ 연합뉴스

 
- 득도를 하셨네요. (웃음)

"이게 득도를 안 하면 못 견뎌요. (웃음) 오래전에 어떤 아나운서와 대담을 하는 자리였는데 제가 큰 어려움을 잘 이겨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나 봐요.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닐텐데, 저한테 '그러게요. 인생을 망친 거잖아요' 하더라고요. (웃음) 아니, 남의 인생이 망쳐졌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고 그렇게 단정을 해요? 성폭력에 대한 그런 식의 통념 때문에 여성들은 실재하는 것보다 더 많이 두려워하게 되죠. 아이가 울면서 들어오면 치마부터 들춰보는 부모도 있대요. 이런 행동이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생각해 보세요. 엄청난 두려움을 안고 자기 몸에 방어적 가치를 부여하게 되죠."

- 역설적이지만 순결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겠군요.

"92년도에 윤금이 사건이라고 성매매여성이 미군 병사한테 참혹하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있었어요. 근데 이 사람이 원래는 꽃집을 하려고 했다는 둥 순진한 여성이었다는 둥, 그런 식으로 뭔가 의미를 바꾸면서 보호했어야 하는 여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식으로 반응했죠."

- '피해자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죠.

"한번은 어떤 여성분을 인터뷰했는데 '성폭력을 당하면 자살하겠다'는 얘길 듣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아니, 성폭력이면 성폭력이지, 그게 왜 죽어야 하는 이유가 됩니까? 부끄럽고 인생 망친 일같이 바라볼 이유가 있나요? 본인이 잘못한 게 아닌데 왜 그걸로 인생을 망쳤다는 식으로 바라보냐는 거죠."

- 부천서 사건 당시 받았던 2차 가해가 이념적 정치적이었다고 한다면 요즘 2차가해는 양상이 좀 다르다고 봐야죠?

"지금은 인터넷 세계가 크게 열려 있어서 신상털이나 공격이 훨씬 직접적으로 전달되죠. 과거엔 저에 대해 뭐라고 하든 제가 직접 대면할 일이 없으니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었잖아요. 지금은 무차별적인 2차 가해에 피해자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진영이나 이념 차이가 있는 경우 공격 수위도 엄청 높아져요.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죠." 

우리 안의 폭력과 군사주의적 위계
 

권인숙은 플로리다주립대 교수로 재직하다 2003년 귀국해서 2005년 <대한민국은 군대다>를 펴냈다. 사진은 2003년 명지대 교수시절 ⓒ 권인숙 의원실

 
성폭력 피해자라고 해서 평생 그 문제를 화두 삼아 전문가가 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오히려 사방에서 부딪치는 2차 가해의 상처나 트라우마 때문에 가급적 그때의 기억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는 경향도 강하다. 그러나 권인숙은 구로공단에서 노동인권회관을 운영하다가 94년 미국 유학을 떠난 뒤, 성폭력과 국가주의, 군사주의에 대한 연구에 천착해 왔다. 그가 2005년 펴낸 <대한민국은 군대다>에서는 군사주의 문화가 어떻게 한국 근대화에 관철되었고 80년대 학생운동에까지 투영되었는지 냉정하게 고찰한다. 

- 책에서 민주 대 반민주의 첨예한 대결에도 불구하고 양측 모두 군사주의, 폭력적 젠더관에 젖어있었다고 지적하셨어요.  

"우리는 정치군인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만 얘길 하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깊게 군사적 질서나 폭력을 내면화하면서 살아왔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것 같아요. 제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건, 누구든 여성 이슈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하면 사람들이 격렬한 거부감을 보인다는 점이었어요.

여성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에 대한 경멸감, 이기적이다, 잘난 체한다, 서구적이다 하는 공격이 쉼없이 들어오고요. 대체 그 거부감의 근원이 뭘까 궁금했고, 이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면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하고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어요. 그 무렵 결혼도 하고 해서 더 문제의식을 느꼈는지는 모르겠는데, 군사주의, 민족주의, 집단주의의 억압적 환경 속에서 뭔가 단초를 풀어내지 않으면 살 수가 없겠더라고요."

- 그래서 유학을 떠나고 여성학을 하셨군요. 80년대 운동권의 군사주의적 성향을 얘기하셨는데 지금 한국 정치의 중심에 86세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뭐, 남자 86세대죠. 여자 86세대가 뭐 몇 명이나 된다고...(웃음)"

- 네, 80년대 학생운동의 명암 속에서 청년기를 보낸 사람들의 경우엔 오히려 민주화세대라는 자부심 때문에 내면화된 위계주의나 뒤떨어진 성인지 감수성을 의식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투'가 있을 때 자신이 굉장히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걸 인지했어야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젠더문제에 대한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주변에 겸허하게 물어야 하는데,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건 굉장한 교만함이죠. 스스로 남성중심적이고 위계적, 서열적인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조차 몰랐다면 너무 한심하죠. 자신이 바뀌지 않으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직시해야 해요."

차분하지만 단호했다. 박원순 시장의 죽음을 접하고 그는 과거의 인연을 떠올리며 울먹였지만, 그가 남긴 숙제가 무엇인지 지적하는 걸 잊지는 않았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을 돕고 싶어서 정치에 입문했다고 했지만, 미온적인 정부안을 비판하고 여성계 의견을 담은 개정안을 내는 것을 망설이지는 않았다. 그는 성평등이 우리 사회의 통치원리가 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걸 위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되새기고 있는 듯했다. 연약한 희생자도, 강인한 투사도 아닌 권인숙의 이름으로, 그는 지금까지 그랬듯 자신만의 길을 내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이진순씨는 재단법인 와글 이사장으로, 와글 간행 <듣도 보도 못한 정치>, 인터뷰집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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