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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내가 사는 아파트에 사람들을 한 집에 모아 고가의 인덕션이나 냄비, 주방 칼 등을 시연하고 파는 방문 판매가 유행했다. 지인의 권유로 참석한 나는 잘 드는 과도 하나가 있었으면 해서 관심을 보였다. 영업사원은 칼 하나만 사면 비싸지만, 세트로 사면 훨씬 싸서 이익이라고 했다.

"저야 과도 하나만 팔아도 괜찮습니다. 전혀 부담 갖지 마세요. 그런데… 집에 가서 한 번만 써보면 아, 세트로 살 걸 하고 금방 후회하실 거예요."

내가 머뭇거리니 그는 다양한 칼만 갖추면 어떤 요리라도 뚝딱 만들어 낼 수 있는 듯 말했고, 이렇게 좋은 성능의 칼을 알아보지 못하는 내가 안됐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나는 칼을 세트로 샀다. 물건이 주는 만족감이 대개 그렇듯 오래가지 못했다. 나무 블록에 멋지게 꽂혀 있지만, 잘 쓰지 않는 여러 종류의 칼을 볼 때마다 영업사원의 현란한 말솜씨에 넘어간 나의 얇은 귀를 탓했다.  
 
하버드대학 임상심리학 교수 아서 P. 시아라미콜리 저서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하버드대학 임상심리학 교수 아서 P. 시아라미콜리 저서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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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학 임상심리학 교수 아서 P. 시아라미콜리는 저서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에서 우리가 영업사원에게 현혹되기 쉬운 것은 그들이 '공감'을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감은 타인의 고유한 경험을 이해하고, 그것에 맞게 반응할 줄 아는 능력이다. 하지만 공감에는 어두운 단면이 있어 정치적 선동, 종교적 세뇌, 상업적 영업에 이용당하기도 한다. 그들은 엄격하고 권위적인 톤과 부드럽고 달래는 말투를 번갈아 사용하며 우리의 방어태세를 흩뜨린다.

어른에게 명령과 회유를 당하던 내면의 어린아이에게 공감적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저자는 공감의 어두운 면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열 가지 단계를 35년간 쌓은 상담 사례를 통해 친절히 설명한다.

그가 이처럼 공감의 다양한 이면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친동생의 자살이었다. 대학을 중퇴한 남동생은 생각처럼 일이 풀리지 않자 마약에 손을 대고, 범죄 사건에까지 휘말려 유럽으로 도망간다.

그는 동생을 위해 변호사를 선임하고, 비행기표를 부칠테니 돌아오라고 전화한다. "사랑해, 형" 동생의 말에 그는 대답 없이 전화를 끊는다. 그동안 동생의 이기적이고 철없었음에 실망과 분노가 쌓였기 때문이다. 다음날 그는 마약 주사를 손목에 꽂은 채 죽은 동생의 부고 소식을 전해 듣는다.
 
우리가 지워버려야 하는 것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억에 결부되어 있는 죄책감, 억울함, 분노 등의 쓰라린 감정들이다. (435쪽)

그는 그동안 동생에게 잘 해결될 것이라고 안심만 시켰을 뿐, 정작 동생의 '감정'을 받아주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피를 철철 흘리는 동생에게 고작 반창고를 들이댔던 셈이라고 고백한다.

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감'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공감에 대한 통찰로 본인 자신도 치유 받는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정한 말이나 도움의 손길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중대한 시점을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부탁한다.

공감은 상대를 돕기 위함이지만 역설적으로 상처를 입힐 때도 있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주려다가 '타인을 평가'하는 실수를 저지르기 쉽다. 특히 '나도 이미 겪어봤는데' 식의 접근법은 가장 잘못된 공감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는 모든 문제의 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답변을 주려는 강박을 가질 필요가 없다.

어느 날, 두 번의 유산을 겪은 환자 드보라를 상담하던 저자는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차올랐고, 드보라는 공감이 만들어낸 조용한 울림이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고 답한다. 심리전문가인 자신도 답변을 못 할 때도 있다며, 때로는 말없이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공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공감은 우리에게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It is okay not to be okay)' 진리를 담고 있다고 전한다. 우리가 삶의 목표로 하는 '행복'은 순간적이며 그 순간 사이에는 슬픔과 혼란, 비애와 절망이 더 많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이 잠깐 지나갈 것을 알기에 행복을 더 소중히 여길 수 있고, 나도 당신도 괜찮지 않지만 그래도 된다고 인정할 때 우리는 삶을 온전히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나는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통해 공감은 이타적이라는 관점을 바꿀 수 있었다. 내 마음을 먼저 돌볼 때, 다른 사람의 상황과 마음을 겸손히 이해하고 그 공감을 통해 나 또한 성장한다. 공감을 통한 연결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공감은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영혼을 섞는 일이다. 각각의 물줄기는 다른 지류와 합류하여, 스스로 방향을 잡고 목표를 향해 세차게 흘러가는 강력한 강이 된다. (155쪽)

공감은 강과 같아서 우리를 싣고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우리가 과거에 사로잡혀 빙빙 돌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공감이란 물살이 우리를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 저자 아서 P. 시아라미콜리가 남동생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에서 벗어나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공감의 선한 영향력을 끼쳤듯이.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은 당신을 위한 공감 수업

아서 P. 시아라미콜리, 캐서린 케첨 (지은이), 박단비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20)


태그:#공감, #당신은 너무 늦게 깨닫지 않기를, #경청, #죄책감, #분노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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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으로 세상의 나뭇가지를 물어와 글쓰기로 중년의 빈 둥지를 채워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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