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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진안에서 발원해 남도 500리를 흐르는 섬진강. 이 강을 따라가다 전남 곡성 구간에 이르면, 가정 출렁다리 못 미쳐 강폭이 좁아진 곳에 놓인 유난히 낮은 다리를 만나게 된다. 1988년에 준공된 이 다리는 이름이 '두곡교'. 여름 장마에 강물이 불어나면 물에 잠기는 세월교다.
 
두계마을 입구에 놓인 세월교
▲ 두곡교  두계마을 입구에 놓인 세월교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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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다리가 놓이기 전엔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고 한다. 1950, 1960년대만 해도 마을에 소속된 사공이 노를 젓는 배로 건너다녔는데 점차 사공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나중에는 줄배로 바뀌었단다. 강 이쪽 저쪽에 줄을 매어놓고, 배에 올라탄 후 줄을 잡아당겨 건너는 방식이다. 큰물 질 때, 배로 강을 건너다 사고가 나서 인명피해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겨울에는 강물이 줄어 배가 다닐 수 없으니 대신 여울목에 섶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다고 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마을사람들이 산에서 나무 베어다 날라서 다리 세우는 것이 큰 울력거리였단다. 이듬해 봄이 돼 강물이 불어나면 섶다리는 떠내려가고 다시 배로 건너다니다 겨울이 되면 섶다리 세우는 일이 되풀이됐다.

"막걸리도 팔고 과자도 팔고... 2000만원 모았제"
 
겨울이면 마을주민들이 힘을 모아 섶다리를 놓았다.
▲ 마을 입구에 놓였던 섶다리  겨울이면 마을주민들이 힘을 모아 섶다리를 놓았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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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강변까지 한참을 걸어 나온 후, 섬진강을 건너야만 장에도 갈 수 있고 읍내도 갈 수 있었다. 사정이 이러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마을사람들은 곡성군청에 가서 몇 번이고 마을 앞 섬진강에 다리를 놓아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군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했다. 그러자 마을부녀회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단다.

"부녀회에서 막걸리도 팔고, 과자도 팔고, 가을에는 밤 주워다 팔고 해서 돈을 모았어. 몇 년 동안 한 번도 안 쓰고, 놀러 한 번 안 가고 모은 것이제. 그래가꼬 2000만 원인가 맹글어서 군에 갖다 주고 다리 놔주라고 헌 것이여. 그때 (1987년) 2000만 원이면 큰돈이여."

그 시절 부녀회장을 지냈던, 지금은 구십 줄에 들어선 하동댁의 증언이다.

부녀회에서 돈을 모으고, 객지로 나간 자녀들까지 어렵사리 성금을 내서 보탰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목돈을 군에 터억 내놓고, 모자라는 돈은 군에서 채워 다리를 놓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1988년이면 올림픽을 치르느라 온 나라가 흥성거리던 시절인데 곡성 두메산골에서는 마을사람들이 몇 년간 돈을 모아서야 간신히 다리를 놨다니. 지금 생각하면 이 마을 분들 곧잘 하는 우스개처럼 참으로 '호랭이가 물어갈' 이야기다.
 
1988년 7월 4일 두곡교 개통식 장면
▲ 두곡교 개통식  1988년 7월 4일 두곡교 개통식 장면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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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엔 긴 장마 끝에 대홍수가 나서 섬진강이 범람했다. 우리 마을 앞 역시 강변의 집들에 물이 들어찼고 여기저기 길이 무너지고 파헤쳐져 피해가 극심했다. 강가에는 아직도 물이 할퀴고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고 지금까지도 복구가 진행 중이다. 폭우가 쏟아지기도 했지만 섬진강댐 방류가 화를 키웠다고 한다. 마을 앞 두곡교도 여러 날 물에 잠겼다.

비 좀 오면 잠기는 다리... 그래도
 
여름 장마와 홍수로 다리가 잠겼다.
▲ 강물이 넘친 두곡교 여름 장마와 홍수로 다리가 잠겼다.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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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앞 다리는 이번 홍수가 아니더라도 여름에 비가 좀 많이 내린다 싶으면 잠긴다. 여름 한 철 적어도 두세 번은 물에 잠겨 통행이 정지된다. 다리가 잠길 정도의 큰비가 온 것이 아닐 때도 다리 위로 물이 차오르기도 하는데 이는 섬진강댐에서 방류를 한 탓이라고 한다. 섬진강을 사랑하는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다.

"평소에는 섬진강댐 수량의 97%는 김제평야 쪽으로 보내고 3%만 섬진강 쪽으로 내보내는 까닭에 강에 물이 말라서 점점 심해지는 강 오염이 눈에 보일 정도다. 그런데 비가 좀 온다 싶으면 한꺼번에 섬진강 쪽으로 방류해서 다리가 잠기기 예사이고 불어난 물이 강바닥을 휩쓸어 내려 생태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심각하다."

올해도 장마로 다리가 잠겼다는 소식에 하동댁은 마루에 나앉아 한탄을 했다.

"그때 다리를 조금 더 높게 했으면 물에 안 잠길 것인디, 돈이 모자랑게 저리 낮게 놓은 것이여."

가난한 산골에서 마을사람들이 강에 다리 놓겠다고 돈을 모은 것만 해도 장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때 돈을 적게 모아서 다리가 낮아졌다고 자책하시는 것을 보니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낮은 다리가 좋다. 다리가 낮으니 섬진강을 바싹 가까이 볼 수 있고, 온 몸으로 강을 느끼며 건널 수 있다.
 
구비구비 흐르는 섬진강
▲ 다리에서 바라보는 섬진강 구비구비 흐르는 섬진강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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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을 감돌아 굽이굽이 흐르는 푸르른 강을 양쪽으로 바라보며, 눈부시게 반짝이는 물비늘에 잠깐 눈을 주고, 여울을 지나는 빠른 물살과 하얀 물거품에도 눈을 주고, 거세진 물소리에 귀를 씻고 가슴을 씻으며 강을 건너는 것은 오로지 낮은 두곡교 덕분이다. 이런 호사가 있기에 여름철 두서너 번 다리 잠기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두곡교 밑 여울목
▲ 여울목 두곡교 밑 여울목
ⓒ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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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크고 웅장한 다리가 많다. 아름다움을 뽐내는 다리도 많다. 그러나 궁벽한 산골에서 주민들이 몇 년이나 푼돈을 모아 강 위에 놓은 다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사연은 묻힌 채, 하루에도 수십 대의 차량과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다닌다. 다리 양쪽에 두곡교라는 이름과 1988년 3월 2일 착공, 1988년 7월 4일 준공이라고 적힌,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작은 표지석이 있을 뿐이다.

전남 곡성군은 이 다리가 놓이게 된 연유를 기록한 현판이라도 하나 세우고 '곡성군 생활문화재'로 지정해야 하지 않을까. 두계마을 분들의 원력으로 놓인 두곡교가 낮은 다리 그대로 원형을 유지한 채 오래오래 보존되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두곡교 착공, 준공년월일 표지석
▲ 표지석  두곡교 착공, 준공년월일 표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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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섬진강변 , #두계마을 , #주민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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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 두계마을에서 텃밭가꾸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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