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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NPO지원센터 2층에는 NPO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돕는 기관이 모인 협업공간 '엮다'가 있습니다. 2020년에도 공간 '엮다'에서 NPO 생태계의 활력을 불어넣는 활동을 하는 개인/단체들을 소개합니다.[기자말]
"헤코(HEKO)는 통일의 방법론을 이야기하기보다 통일을 준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통일이 되기 이전에 통일을 맞이할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해요."

통일 이후, 경제적 격차와 문화적 차이로 혼란의 시기를 보내야만 했던 독일의 사례는 헤코에게 통일을 하는 것보다 통일을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동독인들과 서독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대화로 풀어갔던 독일의 경험을 바탕으로 헤코도 대화를 기반으로 한국의 통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지난 10월 19일, 센터에서 류광선 사무국장을 만나 헤코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듣고 왔다. 
     
“헤코는 독일어로 한반도를 향한 마음이라는 뜻이에요.” 헤코 류광선 사무국장
 “헤코는 독일어로 한반도를 향한 마음이라는 뜻이에요.” 헤코 류광선 사무국장
ⓒ 서울시NPO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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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과 한국에 각각 헤코가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의 헤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통일을 준비하는 모임이에요. 2014년 독일 베를린에서 교포들을 중심으로 단체를 만들었어요. 독일 헤코 설립에 참여했던 김민주 대표님이 2015년에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한국에도 헤코를 만들었어요. 현재 독일에 있는 헤코와 서울에 있는 헤코는 서로 독립된 단체로 운영하면서, 공부모임을 함께 하는 등 협력 관계를 이어오고 있어요. 2015년에 설립된 한국 헤코는 8명의 이사와 사무국이 중심이 돼서 운영하고 있고요."

- 사무국장님은 어떻게 처음 헤코와 만나고,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제가 고등학생일 때 헤코를 만든 대표님을 교회에서 알게 됐어요. 대표님이 독일에 가면서 연락을 거의 못 하다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다시 만났어요. 대표님을 다시 만났을 당시 저는 대학생이었어요. 제가 다니는 학교가 통일 관련된 활동이 많은 학교였고, 학교에서 탈북자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친구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못 만나는 상황을 보면서, 통일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도 계속 통일에 관심이 있었고, 헤코에서도 관련 활동을 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활동을 시작하게 됐어요."

함께 살아가는 '통일'을 위한 준비

통일이라는 주제가 어렵게 느껴진다는 질문에 류광선 사무국장은 통일도 가볍고,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통일의 필요성이나 방법론적인 논쟁이 통일이라는 주제와 더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의미였다. 그는 일상적인 주제로 통일을 이해하는 것에서 통일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 통일이라는 주제는 저에게 크고 무겁게 느껴지는데요. 이 주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풀어가는 방식도 다양해서 더 어렵게 다가오는 활동이기도 해요.
"통일은 사실 무겁게 생각하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주제에요. 통일은 사회 전반에 걸쳐서 일어나야 해서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통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려고 할 때, 방법론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아요. 통일의 찬반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경제를 위해서 통일이 필요하다는 쪽도 있고, 반대 의견도 있어요. 정치적으로는 통일 이후에 우리는 어떤 정치 체제를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이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요. 저는 이런 접근이 오히려 통일을 머리 아프고 어려운 주제로 만드는 것 같아요.

같이 활동하는 분 중에 고등학교에서 통일 교과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계세요. 그분이 학생들에게 통일을 가르치다 보니, 통일이라는 주제를 가볍고, 일상적인 것으로 여길 수 있게 도움을 주셨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통일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한국에 들어와 있는 3만 3천 명의 탈북자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어요.

한국에서 탈북자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편견이 많아서, 탈북민들이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그분들의 이야기, 고충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사회에서 통일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비록 우리가 정치적으로 휴전선이 있지만, 여기 한국에 있는 탈북민들이 먼저 한국 사회를 같이 살아갈 만한 곳이라고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통일은 앞당겨진다고 생각해요. 사실은 그것 자체가 헤코의 목적이기도 해요."  
 
대화를 통해 화해를 경험하는 헤코 포럼
 대화를 통해 화해를 경험하는 헤코 포럼
ⓒ 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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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이 된 독일을 보면서, 통일을 준비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이야기해주셨어요. 통일 후 독일은 어떤 일들을 겪게 되나요?
"독일은 1989년도에 갑작스럽게 베를린 장벽이 붕괴가 됐어요. 1990년 10월 3일에 통일이 됐고요. 갑작스럽게 된 통일이다 보니 서독과 동독 사이에 통일의 과정이 쉽지 않았어요.

서독이 경제적으로 훨씬 잘 살다 보니 통일 이후에 동독과 서독이 일대일로 화폐교환을 했어도 동독에 있던 기업들의 대다수가 회사를 유지하기 힘들었어요. 동독 사람들이 직장도 잃고 삶이 힘들어지면서, 같은 나라에 사는데 이등 시민이라는 열등감이 생긴 거죠. 사회가 스스로 이등 시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거예요. 그래서 독일의 정치인들은 정치적으로 통일이 됐어도, 마음의 통일은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어요."

- 헤코에서 이야기하는 통일을 준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헤코는 통일의 방법론을 이야기하기보다 통일을 준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우선 시민사회 안에서 통일을 준비하는 활동에 집중하고 있어요. 시민들의 마음가짐이 배경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서로 갈등이 있더라고 갈등을 잘 해결할 수 있게 하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운동을 하고 있어요. 경제적인 준비는 우리의 손 밖의 일이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운동으로서 일으킬 가능성이 있잖아요.

이 운동은 통일 이후에 독일 시민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었어요. 독일에서 통일 이후에 생기는 문제점들을 보완하고자 동독인들과 서독인들을 한자리에 모아서 대화의 원칙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는 포럼을 가졌어요. 그때 많은 내적 회복과 치유가 일어났다고 해요. 동독인들이 서독인들 앞에서 자기의 아픔, 울분들을 표현하게 된 거예요. 독일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통일을 해나갔어요."

대화를 통해 통일을 준비하는 모임 '헤코 포럼'
  
통일 이후, 독일 시민사회에서 동독인들과 서독인들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동서 포럼을 만들었다. 동서포럼은 동독인들과 서독인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고, 마음을 터놓는 자리였다.

이런 독일의 사례를 보고 헤코는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활동으로 한국에서 헤코 포럼을 시작했다. 한국의 헤코 포럼은 탈북민들과 남한 사람들이 선입견을 넘어 대화로 소통하는 자리이고, 각자의 배경을 떠나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곳이다.  
 
2019년에 열렸던 헤코포럼 포스터
 2019년에 열렸던 헤코포럼 포스터
ⓒ 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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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코 포럼 포스터를 보면 '대화, 화해를 그리다'라는 표현이 있어요. 헤코 포럼에서 대화를 통해 갈등을 풀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
조직 내에 일어나는 갈등이나 의사결정과정 가운데 생기는 문제는 대화가 부재해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조직 내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한국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다고 해요. 헤코 포럼은 서로의 차이를 주목하기보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면서 공통의 경험을 찾아가려고 해요. 서로 간에 몇 가지 원칙만 가지고 대화를 하더라도 문화가 달라서 겪는 상처, 그로 인해 생기는 갈등 요소를 줄일 수 있어요."

- 동서 포럼은 통일된 이후에 만든 포럼이고, 헤코 포럼은 통일된 이전에 만들어진 포럼인데요. 독일의 동서 포럼과 다르게 집중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까요?
"포럼에 탈북자들을 초청하려고 노력해요. 탈북자분들에 대해서 많은 분이 이미 다가온 통일이라고 표현해요. 그분들은 이주한 거고, 이민자로 와 계신 건데 출신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계신 거죠. 다른 문화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잘 적응 할 수 있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잘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독일의 동서 포럼과 같은 효과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고 활동하고 있어요.

남한 사람 중에서도 통일에 대한 마음이 있고, 관심이 있는 분들은 포럼에 모시고 싶어요. 탈북자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하나의 커뮤니티로서 같이 무언가를 만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헤코 포럼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강사가 강의하는 포럼이 아니라 몇 가지 대화 원칙을 정하고, 같이 대화를 나누는 포럼이에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서로 나누는 자리에요. 예를 들어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사전에 발제자를 미리 섭외해서 본인이 생각하는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발제는 주로 탈북민분들에게 요청했어요. 발제자가 십오 분에서 이십 분 정도 발제를 하고, 나온 발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눠보는 방식으로 진행했었어요. 참여하시는 분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편안하게 포럼에 참여할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터가 대화를 이끌어요.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데 이들이 큰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헤코 포럼의 큰 특징이기도 해요."

- 포럼이 끝나고 참여했던 분들이 해준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는 후기가 있나요?
"참여해 주신 탈북자분들은 남한에 와서 처음으로 내 마음을 터놓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탈북자나 남한 사람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 말투에 상관없이 대화하는 게 좋았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말투만 듣고 출신을 바로 아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분들에게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투에 상관없이 본인이 살아온 이야기를 편안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죠. 탈북자분 중에 한 분은 "나는 여기서 통일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라고 표현하셨어요. 좋은 대화가 나뉘는 것만으로도 사회를 한결 좋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호기심과 만나는 순간 '청소년 통일 리더십 교육'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헤코가 집중하는 또 다른 활동은 청소년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통일 교육이다. 헤코는 헤코 포럼을 진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여자들과 소통하는 교육을 만들었고, 독일에 있는 헤코와 협력해 독일의 통일 현장들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했다.

- 청소년과 청년 세대에 관심이 남다른 것 같아요. 통일을 준비하는 활동으로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청소년·청년 시기의 경험은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하잖아요.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여 주면서, 우리가 청소년들의 삶에 멘토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통일이 5년 안에 될지, 10년 안에 될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아무래도 좀 더 걸리겠죠. 그 친구들이 사회의 지도계층 혹은 리더가 됐을 때, 앞으로 통일의 주역이 될 거예요. 헤코가 이야기하는 가치관들을 가지고 살아왔다면 통일이 됐을 때, 좋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투자는 아끼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올해 1월 진행한 청소년 교육 독일 현장학습
 올해 1월 진행한 청소년 교육 독일 현장학습
ⓒ 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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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코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통일교육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독일의 통일 과정에서 역할을 했던 리더들이 어떤 리더십을 가지고 통일을 이뤄갔는지, 그 과정을 인물 중심으로 살펴보는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통일리더십 교육을 진행했어요. 교육도 헤코 포럼과 비슷하게 활동 중심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퍼실리테이터들의 영향을 받다 보니 학생들이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해요. 질문을 적어보거나, 질문을 던지면 그 질문에 대해 본인들의 생각을 편하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해요."

- 센터에 입주하면서 헤코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해요.
"그동안 헤코는 사무실이 없었어요. 모임을 할 수 있는 공간,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서 좋았어요. 한국에 헤코를 만들고 나서 한국의 시민단체들과 교류는 많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함께 입주하는 단체들과 교류를 기대하고 왔어요. 다른 단체 활동가들과 만나서 각자의 활동이나 조직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고, 헤코에서 진행하는 활동들도 알리고 싶었어요. 코로나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센터에 나오는 것도 쉽지 않게 되면서 기대했던 것만큼 교류가 일어나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 사무국장님은 헤코를 통해서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으세요?
"헤코에서 일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던 게 좋았어요. 저의 꿈이나, 제가 헤코를 통해 하고 싶은 것들을 편하게 이야기했어요. 저는 그런 분위기가 헤코의 특성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도 처음에 환영받았던 것처럼, 누구나 오더라고 환영하는 분위기요. 제가 헤코에서 활동하면서 받았던 마음을 저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요. 청소년 교육은 작년 말에 처음으로 해본 거였어요.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청소년 교육을 못 했지만, 내년에는 교육 활동을 더 주최하고 싶어요. 그리고 할 수 있으면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들에도 헤코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활동 범위를 더 넓히고 싶은 계획이 있어요. 지방에서도 헤코 포럼을 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 중재자라는 개념을 어떻게 통일에 접목할 수 있을지 공부하고 있다는 말이 나왔을 때, 탈북민들과 해외에 거주하는 교포들과 남한 사람들 사이에서 헤코가 바로 그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코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통일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중재자로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통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인터뷰가 거의 끝날 무렵, 우연히 그가 현재 하고 있는 다른 활동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탈북 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에서 밴드부 선생님으로 일을 하고 있었고, 대학교 졸업생들과 통일 관련한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었다. 통일을 주제로 다양한 활동을 하느라 바쁜 한 주를 보내고 있었다. 그가 하는 여러 활동들이 다시 헤코에서 만나 통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활동으로 연결되고 이어지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인터뷰 지원했습니다. 이 기사는 서울시NPO지원센터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서울시NPO지원센터, #헤코, #시민단체, #통일, #N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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