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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이 대세라고 한다. 코로나의 전 지구적 확산이 육식 위주의 식습관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거라는 전망이다. 이번 사태는 인간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비롯된 생태적 재앙이라는 분석이 많다.

과연 그렇게 될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선 쉽지 않을 것 같다. 20여 년째 채식을 실천하며 지인과 아이들에게 권유해오고 있지만, 성공한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오히려 종교적인 이유로 오해를 사거나 까탈스럽다거나 유난을 떤다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었다.

학교 내 채식? 먼 나라 이야기
  
 경기도 소재 학교 급식 모습
 경기도 소재 학교 급식 모습 (해당 내용과 무관함)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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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급식소의 메뉴만 봐도 채식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20여 년 전보다 육류 반찬의 가짓수와 양이 훨씬 더 많아졌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변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육식 위주에다 요리 과정을 간소화시킨 가공식품의 폭발적 증가로 정리할 수 있다.

급식소 영양사의 고충을 모르진 않는다. 어쨌든 육식을 선호하는 아이들의 입맛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육식의 쫄깃한 식감과 달고 자극적인 맛에 길들어진 아이들에게 비린내 나는 생선과 나물 등의 채소 반찬은 애먼 잔반통만 가득 채우게 된다고 토로한다.

교육청에서 정책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채식의 날'을 운영해오고 있지만, 변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 어김없이 그날은 매점이 북새통을 이룬다. 아이들의 입맛을 바꾸는 게 성적을 몇 등급 끌어올리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 게 교사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학교는 배움의 공간이지만 고백하건대, 식습관만큼은 가르칠 수 없다. 교육과정에 밥상머리 교육이 강조되고 매일 교사들이 순번제로 급식 지도에 나서고 있지만, 시늉에 그칠 뿐 효과는 거의 없다. 잔반 남기지 말라고 지도하거나 새치기를 단속하는 게 고작이다.

물론 온전히 책임을 가정 교육의 부재에 돌리려는 건 아니다. 대개 한둘뿐인 귀한 자녀를 끼니때마다 육류와 즉석식품으로 때우게 하는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애써 건강에 좋다는 비싸고 좋은 음식을 자녀에게 먹이려는 게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 아닌가.

어릴 적 입맛이 평생의 식습관을 결정한다는 말도 곧이곧대로 믿을 건 못 된다. 교사로서 모든 걸 가정에 책임을 떠넘기려는 듯한 언사라 순간 민망해지기도 한다. 자칫 누구의 책임인가를 두고 가정과 학교가 서로 손가락질하는 모양새로 비칠 우려도 있다.

단언하건대, 아이들 대다수가 채식을 기피하는 건, 가정과 학교 교육의 무능을 탓할 게 아니라, 온전히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다. 해결 방안도 우리 사회의 각 분야가 나눠 짊어져야 옳다. 채식은 개인별 식습관이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장, 다짜고짜 고깃집을 수소문하는 기성세대의 회식 문화부터 짚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어떤 조직에서든 회식은 육식과 동의어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자리라야 회식이다. 오로지 삼겹살이냐, 갈비냐, 치킨이냐는 선택만 남아있을 뿐이다.

주변에 온통 고깃집밖에 없다는 건 핑계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로 눙칠 수 없다.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는 게 합리적 해석이다. 채식주의자라면 애초 회식에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다. 조직 생활에 출발부터 대단한 각오가 필요한 이유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험도 있다. 사는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농촌 마을에 기업형 축사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막기 위한 한 시민단체의 집회에 함께한 적이 있다. 주민의 요구를 외면하고 기계적으로 규정을 적용한 지방정부의 결정에 항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당장 눈에 보이는 축산 폐수도 그렇거니와, 지구상에 배출되는 온실가스 중에 무려 14.5%가 축산업을 통해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곧, 입지에 대한 갑론을박보다 축산업을 시나브로 줄여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굳이 내가 힘을 보탠 이유다.

놀라운 건, 집회가 마무리된 뒤 그들이 서로 고생했다며 다독이며 찾아간 곳이 고깃집이었다는 사실이다. 축사를 짓지 말라고, 축산업의 비중을 낮추라고 목청껏 외쳐놓고선 삼겹살을 구우며 뒤풀이한다는 게 황당했다. 

당시 조심스럽게 문제를 제기했다가 채식주의자의 몽니 아니냐며 도리어 질타를 받았다. 채식주의자가 나 혼자뿐이어서였을까. 집회의 취지와 사뭇 동떨어진 이율배반적인 뒤풀이 자리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못내 안타깝고 서글펐다.

채식주의자의 천국, 독일

이태 전 독일을 한 달 동안 여행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게 일상 속에 뿌리내린 채식 문화였다. 마트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진열대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아무리 작은 카페나 식당에도 다양한 채식 메뉴를 갖추고 있었다. 말 그대로, 채식주의자의 천국이었다.

음식뿐 아니었다. 생활용품에도 채식주의자를 위한 제품을 따로 만들고 있었다. 치약이나 로션은 물론, 심지어 먹는 약조차 동물 성분이 없고 동물 실험을 거치지 않았음을 표기하고 있다. 이와 견준다면, 이슬람 신자들을 위한 할랄 푸드쯤은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동물권'이 조금도 낯설지 않은 곳에서 채식주의자는 유별난 존재가 아니었다. 숫자로만 보면 사회적 소수자일 테지만, 그들의 주장과 요구는 사회에 기꺼이 수용되었다. 약자를 위한 배려가 아니라 공존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한 '비거니스트'는 독일인들 특유의 '죄의식'에서 원인을 찾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의 소비 행위가 자연환경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어릴 적부터 의무적으로 이수하게 되는 환경교육의 핵심 주제라고 한다.

고기를 먹든, 1회용품을 사용하든, 자신의 행동에 일말의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시나브로 소비를 줄이게 될 것이다. 여행할 때 비행기를 마다하고 굳이 비싸고 시간도 더 걸리는 기차를 이용하려는 것도 그래서다. 내연기관 차량 생산을 중단한다고 맨 먼저 선언한 나라이기도 하다.

삼겹살에 소주를 들이키며 축산업을 성토하는 현실에서, 언감생심 독일과 비교한 건 생뚱맞은 일인지도 모른다. 한창 클 나이에는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진리다. 채식은 환자들에게나 어울린다거나, 다이어트를 위한 여러 방법 중 하나 아니냐며 되묻는 이도 숱하다.

채식이 대세라는 건, 채식이라는 이미지를 상품화시키기 위한 자본의 저열한 술책일 뿐이다. 거듭 말하지만, 채식은 단지 식습관이 아닌 문화의 문제다. 예컨대, '비거니즘'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뜻을 넘어 인간과 동물이 공존해야 한다는 지향이 내포되어 있다.

육식 권하는 미디어
  
 어느덧 TV의 대세가 된 예능 프로그램은 한술 더 뜬다. 소개된 맛집은 대개 고깃집이고, 게임에 참여한 연예인들이 가장 바라는 선물은 단연 마블링 뚜렷한 소고기다.
 어느덧 TV의 대세가 된 예능 프로그램은 한술 더 뜬다. 소개된 맛집은 대개 고깃집이고, 게임에 참여한 연예인들이 가장 바라는 선물은 단연 마블링 뚜렷한 소고기다.
ⓒ comedy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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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를 보자. 온통 육식을 권장하는 광고가 차고도 넘친다. 한쪽에서는 북극곰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공익 광고를 내보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명 연예인들이 불판 위에서 고기를 굽고 있는 외식업체의 광고가 이어진다. 둘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는 듯 말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는 광고는 애초 그렇다 치자. 어느덧 TV의 대세가 된 예능 프로그램은 한술 더 뜬다. 소개된 맛집은 대개 고깃집이고, 게임에 참여한 연예인들이 가장 바라는 선물은 단연 마블링 뚜렷한 소고기다. 먹고 난 뒤 리액션은 빠질 수 없는 모든 예능의 ABC가 됐다.

이른바 '먹방' 예능에 길들어진 아이라면 채식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요즘 아이들에겐 교사의 열 마디보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한 마디가 훨씬 더 큰 교육적 효과를 발휘한다. 예능 프로그램에 죽고 못 사는 그들이 채식이 대세라는 말에 콧방귀를 뀌는 건 당연지사다.

문제의식이 희박한 건 언론이라고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의 개인당 육류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바지만, 아직도 OECD 평균보다는 적다고 제목을 뽑는 곳이 있다. 이미 일본과 중국에 앞선 상황인데, 이조차 세계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일까.

채식이 대세라는 말에 솔깃하기 전에, 자신의 앎과 삶이 일치되는지 성찰하고 작은 것부터 실천하려는 마음가짐이 먼저다. 예능도 값싼 웃음에 만족하기에는 판이 너무 커져 버렸다. 공공을 위한 도구로써 시청률에 걸맞은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조만간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다고 해도, 코로나 이전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한다. 채식주의자는 코로나 이전의 세계를 '육식 과잉의 시대'로 정의한다. 곧, 코로나를 경험한 인류에게 채식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여긴다. 채식이 대세라는 말을 난 그렇게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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