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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의 회동에 이어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연쇄에서 발언 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7월 8일 오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의 회동에 이어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연쇄에서 발언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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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자극하지 말라'며 북한 정부가 해외공관에 지시하고 정세를 관망하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만약에 벌어질 상황에 대비해 위기관리를 하고 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8일 한국 방문도 그런 상황관리의 측면을 띠고 있다.

비건 부장관은 현지시각 12월 1일에는 이고리 모르굴로프 러시아 외무차관 및 아키바 다케오 일본 외무성 차관과 전화통화로 한반도 문제를 논의했다. 임기 만료를 1개월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지만, 미국 행정부는 권력 공백기의 돌발변수 돌출을 막고자 초당파적 행보를 분주히 하고 있다.

향후 코로나19가 진정되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궤도에 접어들면, 북미 핵문제 역시 포스트 코로나 국면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미국이 코로나 피해를 가장 큰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이로 인한 미국의 위상 약화가 이 문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유도할 가능성도 없지 않게 됐다.

안 그래도 2019년 하노이 노딜을 계기로 트럼프식 해법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새로운 방도를 모색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세 차례나 만났는데도 별다른 진전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Journal of North Korea Studies(북한학지)' 제6권에 실린 이종서 중원대학교 연구원의 논문 '유럽연합의 대북정책'은 이렇게 말한다.
 
"그 결과 최근에는 과거 6자회담의 실패를 교훈 삼아 '신6자회담' 또는 아시아 및 유럽 국가가 참여하는 '북핵 다자회담+α'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북한 비핵화를 비롯해 다양한 한반도 문제, 구체적으로는 서해 NLL, 이산가족, 국군포로, 한국전쟁 참전자 유해 발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북한 경제재건 등(의) 원활한 해결을 위해 새로운 행위자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북미 양국은 물론이고 중재국인 한국도 돌파구를 뚫지 못하다 보니 새로운 행위자, 새로운 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선수 교체'는 결국에는 중재자 교체를 뜻할 수밖에 없다. 북미관계가 풀리지 않으니 한국의 위상이 도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북미관계에서 한국의 중재자 지위가 위협받을 여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의 위상 약화는 북한의 입지를 상대적으로 높여서 핵문제의 조기 타결을 촉진하는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미국의 약화가 북한의 강화로 이어지지 못할 경우에는 핵문제가 오히려 지지부진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되면 '북·미 교체'를 요구할 수는 없으니 '중재자 교체'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재자 교체?  

이제까지 북미 양국을 중재한 나라들 중에서 수확을 가장 많이 거둔 나라는 한국이다. 한국의 중재 하에 북·미 정상은 싱가포르·베트남에 이어 판문점에서도 회담을 가졌다. 6자회담 개최국이자 중재국인 중국은 그런 일을 해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한국의 위상이 도전받을 가능성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능성은 남북관계 때문에도 더 많이 생기고 있다. 북한은 북미관계를 잘 중재하느냐보다는 남북관계를 잘하느냐를 기준으로 남한을 평가하고 있다. 외교부보다는 통일부를 기준으로 한국을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2년 동안 하지 못한 일을 당장에 해낼 능력과 배짱이 있는 것들이라면 북남관계가 여적 이 모양이겠는가"라는 6월 13일자 김여정 제1부부장의 막말은 북한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냈다. 북미관계 교차 못지않게 이런 북한의 태도도 한국의 중재자 지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한국의 입지가 불안하다 해서 중국이 중재국 지위에 도전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시도가 나올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이고 바이든 행정부도 중국을 적대시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이 과거의 지위를 되찾기는 용이하지 않다. 무엇보다 2003~2008년의 6자회담 실적이 중국의 능력 부재를 잘 증명했다.

한국이 도전을 받고 있고 중국의 중재력은 이미 실효된 상황에서 향후 거론될 유력한 후보는 27개 회원국을 보유한 유럽연합(EU)이 될 수도 있다. EU는 한반도 문제와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하면서도 북한 문제에 대해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미 간에 훈풍이 부는 동안에도 EU는 북핵에 대해 원론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과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중간 시점인 2018년 10월에 유럽 순방을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제재 완화를 촉구했을 때도 EU 국가들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원칙만 재확인했다. 51개국이 모인 벨기에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에서는 CVID를 촉구하는 10월 19일자 의장성명도 도출됐다.

EU가 이란 핵 다음으로 북한 핵에도 관심을 쏟는 것은 미국처럼 EU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입장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북핵이 유럽 안보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7년에 <세계지역연구논총> 제35집 제3호에 실린 박영민 대진대학교 교수의 논문 '유럽연합의 북핵 인식과 변화'는 "EU가 북핵 문제에 능동적 태도를 보인 배경으로 두 가지 요인을 지목할 수 있다"면서 여타 지역에 비해 EU의 핵안전 규범이 더 강력하다는 점을 첫째 요인으로 언급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둘째, EU의 북한 핵문제에 대한 대응이 관여정책의 맥락으로부터 제재로 이행하게 된 것은 유럽 안보환경의 변화와 이에 대한 대응 차원(의 일)이다. 즉 북한 핵기술 및 핵물질의 유럽 내 유입 가능성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다. 북한의 핵물질이 다른 테러 지원국이나 테러단체에 유입된다면 유럽 안보는 중대한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U가 2006년 제1차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대북 강경책을 고수한 것은 북핵이 세계질서를 위협하고 유럽의 위상을 떨어트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와 같이 테러단체에 유입돼 유럽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슬람 테러로 곤경에 빠지고 있는 유럽으로서는 그런 가능성을 더욱 더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같은 EU의 우려는 미국 못지않은 대북제재를 내놓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에 < EU 연구 > 제50호에 실린 고주현 연세대 연구교수의 논문 'EU 규범권력과 대북한 관여정책'는 2016년 제4차 북한 핵실험 이후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EU 이사회는 유엔 제재에 추가적으로 수입·금융·운송 분야에 대한 포괄적 제재를 단행했다. 2016년 9월 5차 핵실험으로 유엔 결의 2321호가 채택되고 2017년 9월 6차 핵실험으로 결의안 2375호를 각각 채택했다. EU 역시 북한이 지속적인 핵실험을 강행할 때마다 유엔 결의안에 따른 추가 제재를 EU 차원에 편입시키는 동시에 독자적 제재안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중국·인도·파키스탄 핵개발에서 나타났듯이 미국은 자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면 핵개발을 용인하곤 한다. 하지만, EU는 27개 회원국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이들의 핵정책에는 그런 개별적 이해관계가 반영될 소지가 적다. 그래서 미국과 달리 EU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일관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서도 EU는 북한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곤 한다. "북한은 EU로부터 1995년부터 수교 당시인 2001년까지 약 2억5천만 유로(약 2억7300만 달러)에 달하는 지원을 제공받았다"고 위 박영민 논문은 말한다.

또 EU는 북한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 1998년부터 2015년까지 평양과 브뤼셀을 오가며 14차례나 정치대화를 했다. 핵문제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 식량문제까지도 이 자리에서 논의했다. 이렇게 일관된 원칙을 견지하면서 정치대화도 하고 경제지원도 하고 대북제재도 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EU에 대해 적지 않은 호감을 갖고 있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한결같이 북한에 대해 '감정'이 있다. 북한 역시 그런 감정이 있다. 북한은 한·미·일뿐 아니라 중·러도 기본적으로 불신한다. 이와 달리 북한은 EU 국가들에 대해서는 그런 감정이 없다. EU 역시 마찬가지다. 유엔과 별도의 대북 제재를 내놓는 EU에 대해 북한이 커다란 악감정을 갖지 않은 이유는 그런 데 있다.

그래서 북한은 EU와 가까워지고 싶어 한다. 2018년에 <아태연구> 제25권 제2호에 실린 정일영 서강대 책임연구원의 논문 '북한의 대(對)유럽정책'은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동맹이 강화되는 상황에서도 유럽 특히 EU와 소속 국가와의 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고 본문에서 말한 뒤 결론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이 여전히 유럽과의 관계 발전을 원하고 있는 만큼 북핵문제가 일정한 진전을 이루고 동북아 정세가 완화되는 국면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 북한 인권문제의 해결,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형성 등을 이슈로 양자 간 정치대화가 재개될 수 있을 것이다."
 
EU의 도전에 대처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018년 4월 27일 오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환영만찬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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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비건 특별대표가 한·일·러와 의견을 교환하는 방법으로 대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만약 유럽연합까지 가세하게 되면,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더 많은 곳과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

유럽연합이 가세하면 미국의 단독 행동이 더 억제돼 한반도 평화에 조금은 더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사공'이 너무 많아지면 한반도 문제가 한민족이 아닌 주요 국가들의 이해관계에 의해 좌우되기 쉽다. 유럽연합이 한국을 제치고 중재자 역할까지 맡게 되면 그럴 가능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통일까지 염두에 두고 북미관계를 중재하지만 EU는 그럴 필요가 없으므로, 한국의 중재와 EU의 중재는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이 건설적 역할을 하도록 하되 그들의 중재자 역할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려면, 한국이 북미관계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자기 목소리와 자기 입지를 튼튼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중재자 지위는 북미관계 교착뿐 아니라 남북관계 중단 때문에도 위협받고 있으므로, 한국의 목소리와 입지를 남북관계에서 든든히 하는 방법으로 도전에 대처할 수밖에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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