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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도 그렇지만, 대한민국 법 질서 내부의 혼란도 그렇다. 법 질서를 수호하는 담당자들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대한민국을 한층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의 검찰 집단행동은 언뜻 보면 검찰개혁과 무관한 것처럼 비칠 수도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에 관한 입법 작업은 이미 끝났다. 공수처 설치에 대해 최후까지 저항하는 쪽은 검찰이 아니라 야당인 국민의힘이기 때문에, 검찰은 더 이상 검찰개혁의 저항세력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엄밀히 말하면 공수가 뒤바뀐 검찰개혁 2라운드다. 1라운드가 검찰개혁 입법을 위해 국민들이 궐기하는 동(動)이었다면, 2라운드는 검찰이 '동'에 대해 반발 혹은 반격을 가하는 반동(反動)의 양상을 띠고 있다.

검찰이 띄운 2라운드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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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입법을 저지할 권한이 없다. 그래서 1라운드를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검찰이 법무부·검찰·법원을 무대로 제2라운드를 일으킨 것이다. 1라운드가 국민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거리와 광장에서 벌어졌다면, 2라운드는 국민들의 역할이 극도로 제한되는 법무부·검찰·법원에서 벌어지고 있다. 검찰이 1라운드보다 유리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제2라운드의 특징적 양상은 검찰이 법무부장관을 통한 민주적 통제를 차단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상으로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대한 거부 같지만,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와 대통령을 경유한 민주적 통제에 대한 저항이 제2라운드의 가장 큰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지난 1일 직무복귀 직후 윤석열 검찰총장은 전국 검찰 직원들에게 "국민의 검찰이 되도록 다함께 노력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대한민국정부 수립 72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국민의 검찰이 되자'고 외치는 것은 이제까지는 국민의 검찰이 아니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동안 민주적 통제를 잘 받아왔고 스스로를 국민의 검찰로 잘 인식해왔다면, 이제 와서 그런 당연한 발언을 구태여 할 필요도 없었을 터다.

그동안 상당수 검사들은 자신들이 국민들을 상대로 생사여탈권을 행사한다고 생각했을 뿐, 자신들이 국민들의 하인이자 공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검사들한테는 재벌이나 고위층은 물론이고 일반 서민들까지 섞여 있는 국민들로부터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약간은 '역겨울' 수도 있다.

추미애 장관이 물러나고 윤석열 총장이 위치를 지키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민주적 통제를 추구하는 제2, 제3의 조국이나 제2, 제3의 추미애가 등장하는 한 지금 상황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자기 돈이 아닌 국민의 세금으로 생활하고 자기가 만든 나라가 아닌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복무하는 검찰이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하는 이상, 지금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일본검찰이 걸어온 길

민주적 통제에 저항하며 집단행동을 하는 검찰의 모습은 20세기 초반의 일본 검찰을 상당부분 연상케 한다. 그 시기 일본 검찰은 내각을 장악한 정치세력들과의 대결에서 밀리지 않고, 사법대신(법무부장관)의 지휘권을 무력화하고 '검찰 왕국'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검찰 왕국'은 당시 일본에서 실제로 사용됐던 표현이다. 2005년에 <일감(一鑑)법학> 제10권에 실린 김원치 전 창원지검장의 논문 '일본 검찰의 운영 상황과 정치와의 관계에 관한 소고(小考)'는 "재야 법조에서 이러한 검찰의 권한 강화를 빗대어 '검찰 왕국' 또는 '검찰관 사법'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사법과 재판에 대한 검찰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다 보니 '법관 사법'이 아닌 '검찰관 사법'이라는 용어도 나오고 '검찰 왕국'이란 표현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원래의 일본 검사총장(검찰총장)은 상징적 존재였다. 일선 검사들을 지휘하는 실권은 공소원(고등법원) 검사장에게 있었다. 이런 구조 하에서 사법대신이 공소원과 지방 검사국을 직접 지휘했다.

사법대신의 관할 하에 분권적 양상을 보였던 일본 검찰이 검사총장을 중심으로 중앙집권적 조직으로 변신하게 된 것은 1900년대 및 1910년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이 시기에 일본 검찰은 일련의 정치 스캔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정치인들과 거래도 하고 대결도 하면서 내각을 붕괴시킬 정도의 힘을 갖게 됐다. 일본이 대외 팽창을 하는 동안에 내부의 제도적 안정이 이뤄지다 보니, 그것을 기반으로 검찰이 정치적인 힘을 가질 수 있게 됐던 것이다.

2006년에 <법학연구> 제16권 제3호에 실린 정웅석 서경대 교수의 논문 '일본의 검찰제도에 관한 연구'는 "검찰은 1900년대 초기의 대규모 부정사건과 공안사건을 통하여 내각을 붕괴시킬 정도의 수사를 거듭하면서, 일본 사회에서 '일본 양심의 상징이며 정의의 구현자'로 인식되던 예심판사의 권한을 형식화하고 실제로는 수사의 주체로 활약하여 사실상 형사사법의 전 분야를 총괄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내각의 존폐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되면서, 검사가 판사의 권위를 넘어서는 위상을 확보하게 됐던 것이다.

일본 사회를 일변시킨 메이지 유신은 부산 남쪽 규슈섬 남부에 있었던 조슈번, 규슈섬 바로 위쪽의 야마구치현에 있었던 사쓰마번의 하급 무사들에 의해 주도됐다. 이들과 이들의 후예 혹은 우호세력에 의해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의 일본 정치가 운영됐다.

사무라이와 그 후예들이 포진한 내각을 상대로 생사여탈권을 행사할 정도로 일본 검찰은 막강해졌다. 긴 검(劍)으로 상징되는 사무라이와 그 후예들을 상대로 검찰이 맞짱을 뜰 수 있는 단계로 발전한 것이다. 검사(檢事)가 검사(劍士)로 변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일본 검찰은 1920년대부터 사법대신을 무력화시키는 논의를 발전시켰다. '사법대신은 검찰총장을 통해서만, 그리고 구체적 사건에 한해서만 검찰에 개입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면서 '내각으로부터의 검찰 독립'을 꾀했다. 검찰총장이 구체적 사건과 관련해 검찰총장을 경유해 검찰을 지휘할 수 있도록 규정한 현행 대한민국 검찰청법 제8조의 역사적 기원이 바로 여기 있다.

그런데, 법원 
 
 7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2020년 하반기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의 내부판사회의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모여 사법행정과 법관독립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지난 7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2020년 하반기 전국법관대표회의가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각급 법원의 내부판사회의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모여 사법행정과 법관독립 등을 논의하는 자리다.
ⓒ 전국법관대표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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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검찰은 법무부장관의 관여를 무력화하는 방법으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막아내려 하고 있다. 대통령-총리-법무부장관 라인이 아니고서는 국민의 의지를 검찰에 전달할 수 없는 현재 구조 하에서, 사무라이 출신 정권과 맞짱을 떴던 20세기 초반 일본 검사(劍士)들과 비슷한 모습이 한국 검사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법 질서 수호자인 법원마저도 특이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검찰에서 시작된 혼란상이 법원으로도 감염될 가능성이 미세하게나마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7일 전국법관대표회의는 대검찰청의 법관 불법사찰 문제에 대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의결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며 '재판의 독립을 위해 전국법관대표회의 차원의 입장 표명은 신중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정치적 중립을 명분으로 판단을 자제한 것이다.

법관대표회의가 재판 기구는 아니다. 그러므로 상정된 안건을 재판하듯 다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건에 대해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적 중립을 위해 입장 표명을 자제한다'에 담긴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판단에 필요한 자료가 부족해서 혹은 판단을 내릴 만한 위치가 아니라서 판단을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대립, 여당과 야당의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판단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법원 존재 의의가 떨어지다

법관의 정치적 중립은 사실과 증거에 입각한 재판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다. 정치적 논란을 우려해 판단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논란에 개의치 않고 사실과 증거에 입각해 판단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이다. 정치적 문제를 판단하지 않는 게 정치적 중립이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공정하게 판단하는 게 정치적 중립이다.

법관은 자신의 판결로 인해 어느 쪽이 정치적 이익을 입을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신의 판결로 인해 어느 한쪽이 이익을 얻는 모습을 보기 싫어한다면, 법원의 존재 의의는 저절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법원이 그런 태도를 견지하면 정치적 분쟁에 휘말린 세력들이 법원을 찾아갈 이유가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법원의 존재 의의는 자연히 약해지게 된다.

2017년에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탄핵심판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법적으로 일단락시켰다. 만약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사안이라는 이유로 판단을 거부했다면, 촛불혁명이 물리적 혁명으로 발전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결정은 정치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중립을 잃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전국법관대표회의의 결정과 유사한 결론이 법관 모임이 아닌 법원 재판정에서 나온다면, 한국의 사법질서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주권자의 통제에 도전하고 법원은 '우리는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는 식으로 대응하면, 지금의 사태를 합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은 그만큼 좁아진다. 이는 법 질서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에 이어, 미세하게나마 법원까지 이상 조짐을 보이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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