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 19:43최종 업데이트 20.12.11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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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하라" 플래카드가 걸린 농성장 ⓒ Milenio 뉴스

 
다시, 철길이 열리고 열차 통행이 허락됐다.

2020년 11월 30일 늦은 밤 멕시코 중서부 미쵸아칸(Michoacan) 주 칼촌친(Caltzontzin) 지역 선로에 놓였던 장애물들이 치워지고 열차 통행이 재개되기까지 꼬박 59일이 소요되었다. 마침 이 선로는 멕시코 내 자동차, 철강, 수출 위주 농업 생산으로 특화된 중부내륙과 태평양쪽 제1항구인 라사로 카르데나스(Lázaro Cárdenas)를 연결하는 것이었으니, 59일간 수출입을 위한 운송이 막히면서 발생한 손실은 막대했다.


멕시코 상공회의소와 이 구간 운송을 담당하는 캔자스시티 서던 멕시코(Kansas City Southern Mexico) 철도회사가 밝힌 바에 의하면, 선로가 막힌 59일 동안 총 1만2천 개의 컨테이너가 운송 제한을 받았고 그로 인해 철도 회사가 입은 손실만 1500만 달러, 수출입 차질로 인해 발생한 피해액은 11억 달러에 달한다.

물론 이 금액은 선로가 막히면서 산업 부문에서 발생한 피해액일 뿐,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비용까지 더해진다면 피해 액수는 계산이 불가한 수준이다. 시위를 벌인 주체가 그 지역 교원들이었고 그들의 시위와 파업이 이어지는 기간 내내 유치원,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까지 수업이 전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59일 교사 파업

멕시코에서 교사들의 파업은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파업에 대한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없는 학생들의 수업권과 결부된 사안이기에 여느 노동자들의 파업과는 다른 무게를 갖는다. 그럼에도 갈수록 파업은 장기화되고 격해진다. 교원들의 파업이 이루어지는 지역에서는 연간 학생들의 수업 결손이 100일 이상 이어지기도 한다. 주로 교원들의 파업이 이루어지는 지역은 이번에 선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인 미쵸아칸 주를 비롯 게레로 주, 오아하카 주, 그리고 치아파스 주다. 멕시코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는 주들이기도 하다.

교원들의 시위와 파업 이유는 두 가지다. 밀린 급여를 지급하라는 것과 '농촌사범학교'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라는 것이다. 공립학교 교사들의 급여가 제 때 지급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굳이 앞에 '농촌'이란 말을 붙인 사범학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쉬이 이해될 리 없지만, 지난 세기 이후 100년 이상 멕시코 교육이 가져온 병폐의 단면들이다. 물론 그간의 정치적 부패와 사회적 부조리도 엮여 있다.

오늘 당장, 멕시코에 정확히 몇 명의 교사와 몇 명의 학생이 존재하는가 묻는다면, 교육부장관 혹은 대통령이라도 그에 대한 답을 명쾌히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국가에 의한 근대 교육이 시작된 지 한 세기를 넘어서고 있지만, 교사와 학생에 대한 통계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이 상황이 '밀린 급여'를 이해하는 시발점이다.

공립학교 교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국가가 정확한 교원 통계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은 멕시코 특유의, 혹은 왜곡된 교원 급여 지불 방식을 만들어 냈다. 바로, 교원노조를 통한 일괄지급이다. 정부는 교원 급여에 대한 연간 예산을 교원노조로 내려 보내고, 교원노조에서 교사들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오랜 시간 교원노조를 통해 급여 지급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교원 전원이 노조에 자동 가입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140만 명 혹은 160만 명으로 '추산'되는 모든 교원들이 급여의 1%를 노조회비로 선납해왔으니 멕시코에서 교원노조가 갖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간 전 산업부문을 통틀어 라틴아메리카 최대 노조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돈 모이는 곳에 늘 부패가 있는 법, 그 많은 수의 교원 급여가 들어오고 또한 그 많은 수의 교원 급여가 매달 1%씩 적립되었으니 그 곳의 부패 또한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1990년부터 23년간 교원노조 위원장을 지내온 엘바 에스테르 고르디죠(Elva Esther Gordillo)가 2013년 정부의 교육개혁을 바로 눈앞에 둔 시점에서 체포되었을 때, 검찰에 의해 밝혀진 그녀의 행적은 차라리 기행이라 할 만큼 놀라웠다.
 

교원들의 시위와 파업 이유는 두 가지다. 밀린 급여를 지급하라는 것과 '농촌사범학교'에 대한 지원을 지속하라는 것이다. ⓒ Imagen 화면캡처

 
교원노조 위원장의 기행

그녀의 공식 급여는 매달 미화 2500달러 정도였지만, 노조위원장으로서 그녀가 쓰는 활동비는 매달 120만 달러에 이르렀다. 게다가 그녀가 23년 간 유용한 돈은 2억 달러에 달했다. 일반 서민들은 '큰 선생님'으로 불렸던 그녀가 유용했다는 2억 달러가 과연 얼마나 큰돈인지에 대한 감조차 잡지 못한 채 어리둥절했다. 그런 국민들 앞에 검찰이 불러주는 그녀의 죄목들이 줄줄이 열거되었다.

쇼핑은 반드시 미국 최고급 백화점인 니만 마커스에서만 했고, 쇼핑을 할 때는 오직 그녀만을 위해 백화점 문을 걸어 닫게 했다는 기행까지 죄목으로 속속 소환되었다. 게다가 미국 캘리포니아 고급 비치에 여러 채의 주택을 그녀 이름으로 소유하고 있었고,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에서 발견된 계좌에서도 1억 2천만 유로가 확인되었다.

굳이 노조비가 아니더라도 최소 140만 명 최대 160만 명의 교원을 노조원으로 거느린 그녀에게 돈을 들고 줄을 선 정치인들이 수두룩할 터. 매 선거마다 그녀는 교원노조가 지지하는 후보를 공식화했다. 물론 그 후보가 선거에 이기고 정권을 잡는 동안에는 온갖 희한한 명목의 상여금이 교원들에게 지급되었다. 그러니 교원노조에서 몰표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교원노조는 경제적, 그리고 정치적으로 공룡노조가 되어갔다. 교원노조 위원장이 여당과 야당을 두루 섭렵해가며 상원의원 혹은 당대표까지 지낸 것 역시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자국의 교원 숫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겠다는 것은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제도혁명당 후보 엔리케 페냐 니에토(Enrique Peña Nieto)의 공약이기도 했다. 더불어 노조법으로 보장된 '교사직의 세습'을 차단하겠다는 약속까지 내걸었으니 공룡노조와 한판 승부를 벌이겠다는 선전포고이기도 했다.

믿기 힘든 일이겠으나, 멕시코에서 교사직은 수십 년 간 매우 당연히 자식에게 승계되었다. 부모가 퇴직을 하면 자식이 그 자리에 들어오는 식이었다. 굳이 정년퇴직까지 가지 않더라도, 자식이 직업을 필요로 하는 나이에 이르고 보면, 부모들은 퇴직을 준비했다. 물론, '빽'이 있다면 굳이 부모가 퇴직하지 않더라도 자식이 그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 꿰차거나 혹은 새로 티오를 만들어 들어오는 일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교사직을 이어받을 자식이 없을 경우 교사권의 전매 또는 대여가 가능했다. 지역에 따라 집값이 달라지듯, 교사권의 전매와 대여 또한 지역에 따라 값이 달리 정해졌으니 그 기준은 각 지역 급여의 높낮이였다. 그간 교원노조 안에서 걷힌 노조원들의 회비를 기준으로 추산했을 때, 가장 많이 내는 지역은 250페소, 그리고 가장 적게 내는 지역은 68페소였다. 이를 바탕으로 2013년 당시 환율로 계산한다면 급여가 가장 높은 지역은 미화 2000달러 정도였고, 가장 낮은 지역은 600달러 정도였다(페소 가치가 절하된 2020년 기준은 1200달러에서 350달러 수준이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교사직의 승계, 전매, 임대와 같은 모든 절차들이 교육 당국과 전혀 상관없이 교원노조 안에서 처리되었다.

그러니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정부가 취임 닷새 만에 교육개혁을 발표하고 가장 먼저 교원 명부 확보에 손을 댄 사실이 결코 이상하지 않았다. 다만 충분한 사회적 합의의 또 다른 한편에선 70년간 여당으로 군림하던 제도혁명당이 야당으로 추락한 지난 12년 동안 새롭게 등장한 여당에서 두루 요직을 거쳤던 노조위원장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아닐까 하는 가십이 떠돌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2012년 12월 1일 취임하고 같은 달 6일에 법안을 발의하여 2013년 2월에 통과되고 같은 해 9월 대통령령으로 공포되기까지 교육개혁의 기반은 일사천리로 갖춰졌다.
 

선로를 막고 59일간 시위를 벌인 교원들. 시위와 파업이 이어지는 기간 내내 유치원,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까지 수업이 전면 중단됐다. ⓒ Elsoldemorelia 보도

 
교사 세습, 교사권 전매, 정치권 결탁

그러나 아쉽게도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정부와 교육당국은 완성된 교원 명부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상당수 교원들이 정부가 제시한 플랫폼에 등록하면서 교원 수에 대한 윤곽이 잡혀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완성 단계엔 이르지 못한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교원노조가 교원 급여 지급을 전담하던 시절 실재하지 않으나 급여수령자 명단에만 존재했던 수십만 명의 '유령 교원' 상당수가 정리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름만 올려둔 채 꼬박꼬박 급여를 받아가던 이들 중에는 고위 공직자들의 자녀들은 물론이요 어느 주지사의 배우자도 포함되었다는 뉴스들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다만 급여 산정은 아직 체계를 갖추지 못한 채 선거 때마다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의 선심성 정책에 휘둘린다. 기본급은 연방정부에서 내려오지만, 각종 명목의 수당과 상여금은 교원노조가 지방정부와 교섭을 통해 받기 때문에 선거 때마다 각 후보들과 합종연횡해가며 몰표를 주기도 하고 선로나 도로를 점거하고 갈등 구조를 보이기도 한다.

밀어준 후보가 정권을 잡게 되면 젖과 꿀이 흐르고 넘치는 시대를 향유하지만, 때로는 배반과 배신이 난무하면서 선거 전 약속된 각종 보너스들이 고스란히 '밀린 급여'로 남게 되고 급기야 교원 파업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철도를 점거한 채 59일 동안이나 시위를 벌였던 교원들의 '밀린 급여를 지급하라!'는 외침도 그 한 단면일 뿐이다. 게다가 주에 따라 차이를 보이나, 여전히 기본급도 연방정부에서 지방정부로 내려온 후 교원들에게 지급되기 때문에 중간에 예기치 못한 혹은 결코 바라지 않았던 '배달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연방정부와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지방정부라면 이런 사고가 더욱 빈번하다. 몇 달씩 급여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사들도 생존이 걸린 문제인지라, 학생들의 수업권을 볼모로 잡고 파업을 감행한다.

이러한 시위들 대부분은 교사급여 순위 중 바닥권에 머무는 주에서 발생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작년 11월 교사 급여가 상당히 높은 할리스코(Jalisco) 주에서도 7만 명의 교사들이 밀린 급여를 이유로 파업하면서 주 전체 7200개 학교에서 수업이 중단된 바 있다. 돈이 모이는 곳이라면 배신과 배반과 배달사고쯤은 늘 있는 법이니까.

밀린 급여, 교대생들의 식자재 절도

장장 59일간 선로를 막아선 채 시위를 주도한 교원들은 전국교직원노조(Sindicato Nacional de Trabajadores de la Educación)에서 갈라져 나온 전국교직원조정회(Coordinador Nacional de Trabajadores de la Educación) 소속이다. 소수 노조고 제2노조 격이지만 제1노조에 비해 좀 더 과격하고 주로 빈곤율이 높은 주에서 활성화되어 있다. 또한 농촌지역 교원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한마디로 급여 순위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밀리는 교원들이 주축이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농촌사범학교' 출신들이다.

'농촌사범학교'는 멕시코의 교원양성 시스템의 독특한 제도 중 하나로, 초등과 중등교육을 담당하는 교원들을 도시와 농촌지역으로 나누어 이중으로 양성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나온 제도다. 도시에 위치한 일반사범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은 도시에서 임용이 되고, 농촌사범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졸업생들은 농촌지역에서 임용이 되는 시스템이다.

20세기 초반 멕시코 혁명 직후 농촌지역까지 교육 기회를 확대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고 오랜 시간 중졸 학력이 입학 조건이었으나 최근에는 고졸로 상향되었다. 교육 과정에서는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졸업 후에는 농촌 지역 교사로 임용이 되지만, 2013년 페냐 니에토의 교육개혁과 함께 정부 지원이 축소되고 지역별로 폐지 수순을 밟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 또한 미완으로 남게 되어 농촌사범학교들이 존재하되 방치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여전히 매년 학생들이 들어오고 전원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지만, 시설 운용을 위한 정부 지원은 95% 이상 삭감된 상황이다. 그러니 농촌사범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인프라를 관리하고 식사를 해결해야 상황에 처하면서 수시로 이들에 의한 트레일러 납치 등과 같은 집단 절도가 발생하기도 한다. 주로 음료수나 식재료를 운반하는 트럭들이 포획 대상이다. 물론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그들의 항변은 정부의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란 결론에 닿는다.
 

43명 교대생 실종 사건을 다룬 CNN 뉴스. ⓒ CNN 화면캡처

 
가장 큰 피해자는 학생들

2014년 세계 언론을 통해 '43명 교대생 실종 사건'으로 익히 알려지고 또한 교황과 유엔까지 직접 나서 사건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지만 여전히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 채 미제로 남아 있는 사건의 희생자들도 농촌사범학교인 아요치나파(Ayotzinapa)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교육을 받던 중이었다. 이들이 졸업하고 교사가 되었다면 매달 6000페소 혹은 7000페소(미화 300~400달러)를 급여로 받으면서 여전히 열악하기 그지없는 여느 시골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수도 멕시코시티나 북쪽 미국과 가까운 국경 도시에서는 같은 나이 또래의 교사들이 그들이 받을 수 있는 급여의 두서너 배를 받는다지만 시작부터 교육 기회조차 달랐던 이들에게는 다른 세상의 일일 뿐이다. 다만 밀린 급여를 지급하라며 선로를 점거한 교원들은 그들의 가까운 미래다. 그들이 교원들과 같이 선로를 점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들이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30일, 연방정부와 지방정부는 교원들의 밀린 급여를 지급할 것을 약속했고 교원들은 선로 위에 놓인 바위와 농성천막을 걷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정부가 연내 밀린 급여를 지급하기로 한 날짜들이 다가오고 있지만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다시 잡음이 인다.

밀린 급여의 지급에 대한 책임과 선로 관리 및 보수에 대한 책임을 두고 공방이 오간다. 교원들은 언제라도 시위와 함께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굳이 선로 점거가 아니더라도 고속도로도 있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더 확실한 방법으로 고속도로 요금소 점거도 있다. 이미 이곳저곳에서 교원과 농촌사범학교 학생들에 의한 요금소 점거 뉴스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 와중에 어느 누구도 수업권을 박탈당한 학생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이들의 죄라면 그저 멕시코 어느 가난한 농촌 지역에서 태어난 것뿐. 이곳 멕시코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운 시절이라지만, 연간 100일 이상 수업권을 박탈당하는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는 지금 현재 선로를 점거한 그들의 선생님이나 선배들보다 더욱 험난해 보인다. 그러니 누가 봐도 이들에게 공평하고 정의로운 교육의 기회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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