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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주변에서 특이한 현상들이 자주 벌어지고 있다. 전통적인 국제관계와 미묘한 차이를 보이는 새로운 현상들이 그것이다.

2016년 7월 8일,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겠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그해 11월 22일, 한·일 양국이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를 체결했다. 이듬해 3월 7일,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개시했다'는 공식 발표가 있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1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16년 7월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겠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그해 11월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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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 배치가 개시되기 전인 2017년 1월 9일, 폭격기·조기경보기·정보수집기 등으로 구성된 중국 공군기 10여 대가 제주도 남서쪽 이어도 주변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했다. 영공보다 넓은 방공식별구역을 침해한 행위라서, 한국군은 공군기의 긴급 발진을 하고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수준의 대응밖에 할 수 없었다.

중국 공군의 침범은 그 당시 있었던 미국 항공모함이나 자위대 함대의 전진 배치를 견제한다는 의미도 있었고, 남중국해나 조어도(센카쿠열도) 문제와 관련해 미·일을 견제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KADIZ의 주인인 한국과 관련된 메시지도 적지 않았다. 지소미아와 사드 배치로 한국이 미·일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성격도 컸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은 한국이 단호하게 대응하기 어렵도록, 메시지만 전달하고 교묘하게 치고 빠졌다.

단호한 대응이 어렵도록 만드는 교묘한 도발은 작년에도 있었다. 2019년 7월 23일, 중국 폭격기 2대와 러시아 폭격기가 한국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중·러 합동군사훈련을 벌인 것이다. 양국 공군기들은 동해상의 KADIZ와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을 넘나들었고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는 독도 상공을 침범한 뒤 한국 공군의 대응 사격을 받고 빠져나갔다.

한·미·일 공조체제를 시험해보는 측면이 강했던 이 도발은 공조체제 내부의 한국과 미·일의 간격을 넓히려는 의도도 없지 않았다. 한·미·일 공조체제로는 더 이상 한국 안보를 지킬 수 없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의도도 담겼다고 볼 수 있다.

북한도 유사한 형태의 도발을 하고 있다고 해석될 만한 사건이 있었다. 작년 6월 16일의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폭파가 그것이다. 이 사건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에 따라 남북협력이 진척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기도 했고, 남한이 민족공조와 한미동맹 사이에서 명확한 선택을 내리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의 표시이기도 했다.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2시 50분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 폭파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북한이 지난 16일 오후 2시 50분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7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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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북한의 도발은 남한의 대응을 곤란케 하는 것이었다. 남한 자금이 들어간 건물을 폭파했지만, 그 건물은 휴전선 이남이 아닌 휴전선 이북의 북한 영역에 있었다. 민족공조의 취지를 훼손시킬 만한 과도한 도발이었지만, 남한 입장에서는 대응 수단을 찾는 게 용이치 않았다.

이런 도발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경쟁자의 기를 꺾기 위한 목적으로 일부러 팔꿈치를 툭툭 치고 지나가거나, 회사나 학교의 긴급공지를 경쟁자한테만 연락해주지 않는 일들이 그것이다. 분명히 적대적 의사를 담은 도발이지만, 가해자는 '고의가 아니라 실수였다', '나쁜 의도가 없었다', '뭐 이 정도 갖고 그러냐?'며 상황을 피해 나가곤 한다.

상대방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고자 상대방이 준 선물을 상대방이 보는 데서 훼손하는 경우에도 딱히 대응이 어렵다. 훼손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미 자기 소유가 된 것을 훼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단골 거래처와의 거래관계를 변경할 목적으로 일부러 '재고가 없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자기 물건을 자기가 안 팔겠다는 것이므로 상대방은 딱히 대응하기가 힘들다. 상대방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면서도 상대방의 반발을 피하고자 할 때 위와 같은 수단들이 사용된다.

중국·러시아의 방공식별구역 침범이나 북한의 연락사무소 폭파 등은 대한민국의 주권 혹은 그에 준하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사안들이다. 하지만 그 도발의 방식이 한국의 대응을 곤란케 했다. 이 같은 도발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최근 10년간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 주요 국가들이 이런 방식을 '애용'하고 있다고 해석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회색지대 전략'을 아십니까 

이런 형태의 도발을 표현하는 학술 용어가 있다. '회색지대 전략' 혹은 '회색지대 위협' 같은 용어다. 금년 6월 <군사(軍史)연구> 제149집에 실린 김창곤 합동군사대학교 교관의 논문 '한반도 주변의 회색지대 위협과 대응 방향'은 "규정되기 어려운 모호한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경쟁들은 상당기간에 걸쳐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다음,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의 "전쟁과 평화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경향이 있다", "전쟁은 선전포고 없이 익숙하지 않은 형태로 시작되고 있다"는 발언을 인용한 뒤 "회색지대라는 용어는 2010년 미국의 QDR(Quadrennial Defense Review,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에서 최초로 공식 사용되었다"며 "공세적인 군사력 사용의 임계점 바로 아래에서 국가행위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다영역·다차원의 의도된 활동으로 정의된 이후 점차 개념이 확장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한마디로, 회색지대 전략은 전쟁을 전쟁 같지 않게 수행하는 전략이다. 장기적 목표 하에 수행하는 전쟁에 준하는 전략이지만, 집행 방식이 기존 전쟁과 너무 달라 상대방이 대응 방식을 찾기 곤란한 경우가 많다. 실질적인 전쟁이 수면 밑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상대방이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전략은 대규모 정규전을 벌이기 힘들 때 구사된다. 최근의 시대적 조류도 이런 전략을 부추기고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문화적 일체화가 심화되고 있어 웬만해서는 전쟁을 벌이기 힘들게 된 점, 세계 네티즌이라는 새로운 행위자가 강대국들의 행위에 이의를 거는 일이 많아진 점 등으로 인해 주요 국가들은 명시적인 공격 전략보다는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전략이 일본에 의해 한국을 상대로, 그것도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의 차원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이번 12월 9일부터 강제징용 판결에 의해 압류된 일본 제철의 한국 내 재산에 대한 현금화가 가능해지게 됐다. 이 사안에 대해 이미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 중인 일본이 현금화 가능 이후의 상황에서도 이 전략을 변형적으로 구사할 가능성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한국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령하자, 작년 7월 일본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부품에 대한 한국 수출을 규제하는 경제보복을 가했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한국 정부를 움직일 목적으로 가한 보복이다.

한국 사법부의 판결을 무력화시키려 하는 시도는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일이지만, 일본은 한국의 대응을 곤란케 하는 방법으로 도발을 가했다. 한국에 수출한 부품들이 북한 같은 적대국가로 넘어가 안보를 해칠 수 있으니 부품 판매에 제한을 가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 내 물건 안 팔겠다'는 식의 대응으로 한국의 반격을 차단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같은 일본의 대응에 담긴 회색지대전략에 관해 올해 6월 <한국군사> 제7호에 실린 반길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의 논문, '동북아 국가의 한국에 대한 회색지대전략과 한국의 대응 방안'은 이렇게 설명한다.
 
"사법 판단(사법부 판결)은 명백한 주권의 영역이다. 그런데 일본이 타국의 사법 판단에 반발하며 경제보복을 한 것은 우회적 방법으로 주권에 개입한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중국의 회색지대 강압을 그대로 모방한 사례이기도 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10년 일본은 중국의 희토류 수출중단이라는 회색지대 강압에 무릎을 꿇은 바 있다. 일본은 중국의 공세에 밀리는 수모를 겪었지만 동시에 회색지대 강압의 효과를 실감하기도 했다. 이에 일본은 중국의 전략을 모방하여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단행하는 회색지대 강압을 구사했다. 일본은 경제적 지렛대를 통한 회색지대 강압으로 군사적 충돌은 피하면서도 자신이 원하던 지소미아 GSOMIA를 지켜내는 효과를 거두었다."

 
일본의 회색지대전략, 그 다음은 

회색지대전략을 계속 묵인하고 넘어가면 도발이 장기화되고, 언젠가는 도발의 목표가 성취될 수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도발 주체의 의도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을 것임을 명확히 알려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이 구사하는 회색지대전략의 목표는 한국인들이 두 번 다시 강제징용을 거론하지 않고 자국의 과거사 약점을 드러내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같은 일본의 의도를 차단하는 길은 일본이 의도한 대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도록 시의적절한 견제 조치에 착수하는 것이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 도쿄 교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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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적절한 견제 조치가 한국 정부로부터 제때 나오지 않고 있다. 강제징용 배상금을 한·일 기업 및 국민 나아가 세계 시민의 성금으로 마련하자는 문희상 안이 나온 사실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회색지대 전략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박철민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비서관이 일본을 극비 방문해 '압류재산이 현금화되면 한국 정부가 손해를 보전해주겠다고 제안했다'는 내용이 일본 <문예춘추(분게이슌주, 일본 월간지)> 1월호에 실린 사실도, 한국 정부가 회색지대전략에 정면 대응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문희상 안과 박철민 제안의 공통점은 강제징용 판결을 무력화시키려는 일본의 최종 목표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압류 재산 현금화 이후의 상황에 맞서 일본이 또 다른 회색지대 전략을 내놓을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라도 일본의 숨은 전략을 폭로하는 등의 대응수단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까지의 상황이 일본의 의도대로 흘러온 측면이 적지 않으므로, 판을 바꾸는 시도가 한국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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