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의 스틸컷.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의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요즘 같은 때에는 어딜 가도 몸부터 긴장하게 된다. 이럴 때 영화 언론시사회를 가면 영화에 대한 궁금증이나 기대보다 마스크는 잘 썼는지가 우선순위가 된다. 걱정과 불안함이 머리에 둥둥 떠다닐 무렵, 어둠 속에서 펼쳐지는 환한 스크린이 몸을 녹게 한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17일 개봉)는 네 남매가 모두 모여 엄마의 생일잔치를 준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장남인 장피에르(장 폴 루브)는 격려와 응원을 아낌없이 나눠줄 줄 아는 사람이다. 소설가를 꿈꾸는 둘째 여동생에게 소질이 있다고 말해주고 소심한 셋째 남동생의 연애를 걱정해주고 관심을 둔다. 사진가를 꿈꾸지만 생활비가 부족한 넷째 여동생을 위해서 선뜻 돈을 빌려주고 작은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해준다. 아버지가 없는 빈자리를 조용하면서도 따뜻하게 채워준다. 

그렇게 가족에게 힘을 주지만 가족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남매들끼리 좀 더 뭉치자고 말했지만 귀찮다는 말이 들려오거나 여동생과 말다툼을 하다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엄마에게 욕을 먹기도 한다. 하필이면 이럴 때 장피에르에게 젊은 시절 함께 연극을 했던 옛사랑에 연락이 온다. 청준시절 이루지 못한 꿈과 이루어지지 않은 옛사랑을 떠올리며 감정이 북받친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스틸컷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노력했는데 아무도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가 인간은 외롭다. 장피에르도 그랬던 것 같다. 삶의 허무함과 후회, 아쉬움을 얼굴과 눈빛 깊이 가득 머금은 장피에르의 얼굴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장피에르가 어두운 밤 한 곳을 응시하는 장면은 1분이라는 꽤 짧지 않은 시간동안 계속된다. 가족을 위해 한마디를 더 건네고 미소를 보냈지만 그 이상의 부담감도 짊어져야 했을 그의 어깨가 무거워 보인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영화에 나오지 않은 장피에르의 앞선 긴 인생을 조금이나마 유추해본다.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의 한 장면.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의 한 장면. ⓒ ㈜영화사 진진

 
하지만 나에게 이 영화는 따스함을 안겨줬다. 안부를 묻는 가족이 있고 뭐라도 함께 하려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영화에는 임신에 실패해도, 사진가를 꿈꾸지만 생활비에 허덕여도,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망설일 때가 있어도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생의 큰 슬픔을 겪어도 다시 일어서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이들 말이다.

겨울이다. 겨울엔 역시 차가워진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줄 영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심지어 올해는 안녕하지 못하고 서로 멀리 떨어져 안부를 물어야 하는 '지독한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럴 때일수록 더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이 시대를 겪어내는 수많은 '장피에르'의 마음속에 사뿐히 내려앉을 수 있는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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