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애비규환> 포스터.

영화 <애비규환> 포스터. ⓒ 리틀빅픽처스

 
대학생 토일은 고등학교 3학년생 호훈을 가르치다가 눈이 맞아 임신을 하게 되고 5개월간 숨겼다가 양가 부모님들께 알리며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세워 제출한다. 하지만 토일의 부모님 선명과 태효는 그녀를 지지해 주지 않고 큰 상처를 안기기에 이른다. 그런가 하면 호훈의 부모님은 토일의 임신을 축하하며 한참 모자란 아들을 데려가 결혼하라고 종용한다. 갈피를 잡지 못한 토일은 무작정 대구로 내려간다. 

대구는 토일이 태어나 어렸을 적 살았던 고향으로, 연락이 끊긴 친아빠 환규를 찾고자 내려간 것이었다. 최씨 성의 기술가정 선생님, 이 단서 하나로 대구의 학교들을 모조리 뒤지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환규와 맞딱뜨리게 되는데, 토일은 정작 고생 끝에 찾은 그를 두고 서울로 올라와 버린다. 그런데 서울에 올라와 보니 호훈이 사라진 게 아닌가?

호훈은 왜 사라진 걸까? 토일은 호훈을 찾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부모님과 함께 나서려던 찰나, 대구에서 올라온 환규와 맞딱뜨린다. 환규는 토일이 급하게 서울로 향하면서 놔두고 간 짐을 가지고 와선 슬쩍 보고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이왕 이렇게 된 지사, 토일을 필두로 선명과 태효 그리고 환규까지 함께 호훈을 찾아 나선다. 이 막장 가족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어벙한 예비 아빠, 서먹서먹한 현재 아빠, 무책임한 옛날 아빠

영화 <애비규환>은 센스 있는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참상'이라는 말뜻을 가진 사자성어 '아비규환'을 비튼 제목일 테다. 사자성어에서의 '아비'는 불교의 8대 지옥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지옥으로 '잠시도 고통이 쉴 날 없다'는 걸 뜻하고, '규환'은 불교의 8대 지옥 중 4번째 지옥으로 '고통에 울부짖는다'는 걸 뜻한다. 

그런가 하면, '애비'는 아버지의 낮춤말인 '아비'의 경북 지역 사투리로 영화의 주요 배경인 서울 그리고 대구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한국의 대표적 유교 도시인 대구, 그리고 유교에서 '죄악'과 다를 바 없을 이혼과 재혼과 혼전임신의 아이러니가 부딪힌다. 또한, 영화에는 토일을 둘러싼 애비들이 얼굴을 비추는데 호훈, 태효, 환규가 그들이다. 

두 여성의 선명한 성장

제목이나 캐릭터 등이 모두 애비들을 향하지만, 영화가 정작 보여 주려 하는 건 두 여성이다. 엄마 선명과 딸 토일, 그중에서도 특히 토일로 똑부러지는 계획으로 현재와 미래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성격과 능력을 선보이는 것이다. 그녀는 누군가 아니 대부분의 시선에서는 '망했다'고 생각할 만한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출산 후 5개년 계획을 세우고 옛날 아빠를 찾아가고 현재 아빠와 화해하고 예비 아빠를 찾고... 홀로 고군분투하며 퍼즐을 완벽하게 짜맞추고자 한다. 그 자체로 대단하고 대견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여기서 끝나면 너무 일차원적일 것이다. 완벽한 모습을 보이는 것만이 여성으로서 우뚝 서는 방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들이 100% 완벽하지 않아도, 그래서 망해 버려도, 대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분하거니와 불행하지 않고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성장하는 여성을 사려 깊게 바라보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여성의 유대 관계는 특별한가. 특별할 게 없지만 특별하게 만드는 게 세상이 아닐까. 세상의 편견 어린 시선, 그 때문에 엄마 선명은 이혼과 재혼으로 힘들어했고 토일은 혼전임신을 했음에도 완벽을 기하는 성격과 능력으로 애써 아닌 척하다가 어느 순간 두려움이 폭발해 버린다. 그런 그녀에게 힘이 되는 건, 비슷한 경험을 겪은 엄마다. 엄마 선명의 "이혼해서 불행한 게 아니라 불행해서 이혼한 거야"라는 한마디가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인생에 큰 결정을 한 후 잘못 되어도 불행할 필요는 없다는 성찰.

불행할 이유가 없다

영화는 그동안 수없이 봤던 전형적인 막장 가족의 틀을 가져왔다. 앞서 언급했던 바, 이혼과 재혼과 혼전임신 말이다. 거기에 예비 아빠가 될 작자는 비록 성년의 나이이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그 어딜 둘러 봐도 '고통'스럽지 않은 데가 없다. 그런데, 영화를 보며 고통스러울 새가 없다.

'톤 앤 매너'라고 하면 맞을까. 톤은 어조, 억양, 색조, 분위기 등을 말할 테고, 매너는 방식, 태도 등을 말할 테다. 이 영화는 세상이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막장 가족의 상황을 불행할 이유가 없는 분위기와 태도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게 왜 불행할 일이지? 그게 왜 좋지 않은 일이지? 그게 왜 막장이지?'라고 생각해 버리는 순간,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들이 된다. 

그래서 영화는 무겁지 않게 자못 코믹하고 통통 튀고 자유분방하게 외피를 구성한 듯하다. 여러 유명 영화의 명장면을 이 영화만의 톤 앤 매너로 오마주한 것들이 빛을 발한다. 그렇지만, 외피를 걷어 내면 남는 진지한 관찰과 통찰과 성찰은 지난 시대와 지금의 시대와 다가올 시대를 진지한 어조로 생각하게 만든다. 감독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진짜 의도를 어렵제 않게 전하는 데 성공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애비규환 아빠 엄마와 딸 여성 불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