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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2개월 정직 처분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0.12.16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2개월 정직 처분에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힌 윤석열 검찰총장이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0.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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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유의 검찰총장 징계'라는 표현이 언론지면을 장식했다. 이 단어를 제목에 넣은 기사 수는 상당히 많다. 

초유의 사건인 것은 맞다. 1957년 2월 15일부터 시행된 검사징계법에 근거해 검사징계위원회 심의 및 대통령 재가를 거친 검찰총장 징계는 2020년 12월 16일이 '초유'다. 그러나 이 모든 조건이 충족된 징계는 윤석열 총장이 처음은 아니다. 법률적인 의미에서 검찰총장 징계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실질적 의미의 검찰총장 징계는 이전에도 있었다.

전두환 들뜨게 한 검찰... 전두환에 잘려나간 총장 
 
 허형구 17대 검찰총장. 사진은 1989년 2월 145회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의에 답변하는 허형구 법무부장관.
 허형구 17대 검찰총장. 사진은 1989년 2월 145회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의에 답변하는 허형구 법무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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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두 번째 검찰총장 허형구. 그는 신헌법이 발효된 지 4개월 보름 뒤인 1981년 3월 10일 제17대 총장에 취임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 옷을 벗었다.

"저질연탄 사건을 파헤친 뒤 '검찰이 별것 아닌 사건을 확대해 갓 출범한 정부의 공신력을 실추시켰다'는 동력자원부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취임 9개월 만인 81년 12월 옷을 벗었다." - '검찰총장 영욕의 수난사', <한겨레>, 1993.9.14.

검정색 연탄이 지금의 도시가스 같았던 그 시절, 허형구 검찰은 삼표·삼천리·대성 같은 제조업체들이 불량 재료를 넣어 폭리를 취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훗날 국회부의장이 되는 박주선 검사, 대법관과 총리 내정자가 되는 안대희 검사가 수사팀인 서울지검 특수1부에 있었다.

1981년 10월 8일 서울지검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여론은 검찰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연탄 제조업체들의 묵은 비리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전두환도 여론 반응에 고무했다. 검찰 성과가 정권의 캐치프레이즈인 '사회정화운동' '정의사회 구현'에 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도 이 사건을 사회정화·정의사회와 연관시켰다. <동아일보>는 '공직자 정화작업 1년 사정협의회'라는 기사를 통해 "원인을 따져보면 구조적인 문제점이 아직도 사회의 내부 깊숙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정의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개혁 작업과 더불어 이들 구조적인 문제점 해결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1981.10.20.).

전두환은 사회적 관심을 이 문제에 집중시키기 위한 행보에 착수했다. 그는 삼천리 연탄공장을 직접 시찰했다. 또 김석휘 서울지검장에게 전화를 걸어 '수사지휘권'까지 행사했다. 당시 검찰청법에도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법무부장관만이 행사할 수 있었지만, 전두환은 총리,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을 뛰어넘어 서울지검장을 직접 지휘했다.

박주선 당시 검사의 진술에 따르면, 전화기를 든 전두환은 "이런 사건의 배후에는 반드시 공무원이 있다. 그러니 공무원 수사도 해라. 압수수색도 좀 하고 그래라"고 격려성 지시를 내렸다('검찰 징벌 인사와 전두환 시절 저질연탄 사건의 추억', <한겨레>, 2021.1.16.). 검찰은 의욕적으로 수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며칠 가지 못했다. 칭찬받던 검찰 수사가 갑자기 '표적 수사'니 '먼지떨이 수사'니 '반인권 수사'니 하는 공세에 직면했다.

문제의 발단은 동력자원부 석탄국장 구속이었다. 검찰이 윤석구 국장을 구속시키면서부터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대학등록금이 40만 원 안팎이던 이 시절에 석탄국장이 연탄업체들로부터 받은 뇌물은 1940만 원. 그가 구속되자, 뇌물 공여자들이 대한광업진흥공사 이사장 이규광을 찾아갔다. 이규광은 대통령 부인인 이순자의 작은아버지다. 이후 청와대에서 열린 검사장 오찬 자리에 느닷없이 이순자가 출현했다고 한다. 그는 "죄도 없는 사람을 검찰이 억지로 잡아넣었다"며 검찰 간부들에게 핀잔을 주고 나갔다.

이순자의 반격은 검찰 수사 중단으로 이어졌고, 불똥은 허형구 검찰총장에 튀었다. 허형구는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이때 검사징계법이나 검사징계위원회 같은 것은 가동되지 않았다. 전두환·이순자의 의지만 작동했을 뿐이다.

박정희 옭죄던 이태희... 옥살이까지 
 
 제8대 검찰총장 이태희.
 제8대 검찰총장 이태희.
ⓒ 대검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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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봄,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계획을 눈치 챈 것은 중앙정보국(CIA) 한국지부장이나 장면 총리, 장도영 육군참모총장뿐만이 아니었다. 제8대 검찰총장 이태희도 음모를 알고 있었다.

조갑제 <조선일보> 출판국 부국장이 1998년 8월 18일 치 <조선일보> 기사 '[박정희 생애] 제8부 격랑 속으로 (53)'에 정리한 바에 따르면, 이태희 총장은 1961년 5월 12일 서울지검을 동원해 쿠데타 자금책인 김덕승을 체포했다. 이태희는 13일에는 경찰이 입수한 군부대 동향을 근거로 장면 총리에게 쿠데타 음모를 보고했다.

박정희의 목을 조이던 이태희는 5월 16일 행방을 감췄다. 이날 발행된 <경향신문>은 기사 '동요 말고 직장 지키라'에서 "이 검찰총장은 16일 아침 전국 각급 검찰에 무전을 통해 검찰 직원들은 동요 말고 직장을 지키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그런 그의 행방이 묘연해졌던 것이다.

군사정권 하의 서울시경찰국은 검찰총장을 지명수배했고, 군인과 경찰들은 검찰총장을 추적했다. 당국은 11일 뒤에야 이태희를 만날 수 있었다. 그해 5월 29일 치 <동아일보>는 "5.16 군사혁명 이후 행방을 감추었던 전 검찰총장 이태희씨가 27일 밤 서울시경에 자수하여 즉시 구속되었다"고 보도했다.

1999년 10월 29일 자 <동아일보> 부고 기사인 '이태희 전 검찰총장 별세'는 "50년대 서울지검장·부산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을 역임했으나, 61년 5.16 이후 군부에 의해 반혁명세력으로 몰려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총장 이태희는 군사정권에 의해 해임 수준을 뛰어넘어 감옥살이까지 했다. 검사징계법과 검사징계위원회는 이때도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래로 내려간 검찰총장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김익진 제2대 검찰총장(왼쪽 하단).
 대검찰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김익진 제2대 검찰총장(왼쪽 하단).
ⓒ 대검찰청누리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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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 때의 제2대 검찰총장 김익진의 사례는 점입가경이다. 그는 이승만 정권의 용공조작, 간첩조작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정권이 잡아다주는 '빨갱이'를 법원으로 끌고 가서 유죄 구형을 하는 '권력의 시녀'가 되길 거부했다.

한국전쟁 직전인 1950년 4월, 이승만과 연계된 사조직이 무고한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무고한 사건이 적발됐다. 대한정치공작대 사건이 그것이다. 이때 김익진은 '사건을 건드리지 말라'는 이승만의 수사지휘를 받았지만, 개의치 않고 수사를 진행했다.

김익진은 서울지검을 독려해 대한정치공작대원 108명을 검거하고, '현행법상 불기소처분이 불가능하다'는 회답을 경무대(청와대)에 보냈다. 전쟁 사흘 전인 6월 22일, 김익진은 서울고검장으로 '좌천'됐다. 해임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해임보다 더 강력한 징계였다. 이 징계 역시 이승만의 뜻에 따라 이뤄졌다.
 
 법무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2차 징계위원회 심의를 하루 앞둔 14일 오전 서울 대검찰청의 모습.
 지난 14일 오전 서울 대검찰청의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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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진·이태희·허형구는 '정직 2개월'보다 훨씬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징계의 절차적 하자를 따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징계의 배후자들에 대한 기피 신청권도 주어지지 않았다. 집권자의 필요와 취향에 따라 징계가 이뤄졌을 뿐이다.

2020년 12월 16일의 일은 '초유의 검찰총장 징계'가 아니다. 그것은 초유의 '합법적인' 검찰총장 징계로 바뀌어야 한다. 합법적인 징계가 이제야 나온 것은 대한민국 검찰제도가 뒤늦게 정상 궤도에 올라섰음을 보여준다. 어찌 보면 대한민국 검찰의 '지각 성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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