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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과 함께 공동기획으로 12월 7일부터 31일까지 4주 동안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8편의 이야기 글('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을 선보인다.[편집자말]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3월 26일 오후 노원구 상계동 중앙시장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3월 26일 오후 노원구 상계동 중앙시장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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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같이만 하면 된다."

노회찬이 떠난 하루 뒤, 노회찬도 자주 출연한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온 이준석(바른미래당 전 노원병 당협위원장)이 한 말이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말은 이랬다.

이준석 : "상계동에서 정치하는 사람들 같은 경우는, 저는 기호 3번 의원 선거 출마했잖아요. 그런데 노회찬 대표 그때 기호 한 4번쯤 됐을 거예요, 진보신당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통합진보당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저한테 선거 뛸 때마다 하는 조언이 뭐냐 하면요. '노회찬 같이만 하면 된다'라는 얘기가 거의 숙어처럼 돼 있어요, 상계동에서는."

김현정 : "노회찬 같이만 하면 된다."
이준석 : "항상 저는 많은 사람들한테 (노회찬 의원이) 어떤 식으로 활동했다는 것을 들었고.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보면 아직까지 노회찬 대표의 영향력이 상계동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김현정 : "떠난 지 한참 됐는데도?"
이준석 : "정의당이 구의원 당선된 곳이 많지 않은데 이번에 저희 지역에 노회찬 의원 보좌관 출신 주희준 선배라고 계시는데 그분이 당선되셨어요. 구의원에. 그래서 사실 노회찬 의원이 상계동에 끼친 영향은 크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다. 어제 제가 카페에서 커피 마시다가 이 비보를 속보로 들었는데 어느 누구도 안타까워하지 않은 사람 없고. 어느 누구도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 없고. 이게 저는 그분이 살아온 삶을 간단히 나타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2008년 18대 총선과 '호빵맨' 노회찬

2008년 4월 9일 18대 총선을 앞두고 노회찬은 고민에 빠진다. 관악과 노원 가운데 어디로 출마할 것인지 결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2007년 11월 무렵 노회찬은 결론을 내리고 12월에 이사를 한다. 1995년 12월부터 거주해온 강서구에서 노원구 상계동으로. 당선가능성은 두 곳 모두 유력한 것으로 나온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노원구 상계동이 서민들이 더 많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지금껏 서울 안에서 진보정당의 후보가 의석을 차지한 경우는 1950년 사회당 조소앙 의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당시 민주노동당 상황은 12월 대선 이후 분당으로 치닫고 있었다. 어떻게든 분당만큼은 막아보려 했던 노회찬은 결국 2008년 2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떠나고자 한다"며 이렇게 심경을 토로한다. 사실상의 탈당 의사를 밝힌 것이다.
 
2008년 2월 5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월 3일 임시 당대회 결과를 비판하며 "민주노동당의 창당 정신을 새로운 시대적 가치와 접목시키겠다"면서 탈당을 시사했다.
 2008년 2월 5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2월 3일 임시 당대회 결과를 비판하며 "민주노동당의 창당 정신을 새로운 시대적 가치와 접목시키겠다"면서 탈당을 시사했다.
ⓒ 이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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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3일 임시 당대회에서 노동자 서민은 없었다. 노동자 서민의 상식에 입각해 당을 운영하라는 소박한 요구는 '동지에 대한 의리'보다 우선할 수 없다며 묵살되었다."
"저는 민주노동당의 자주파와 결별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라 제가 지금 결별하려고 하는 것은 민의에 귀기울이지 않는 오만과 성역을 인정하자는 잘못된 생각과 결별하자는 것이다."


다가오는 18대 총선과 관련해서는 "지역의 동지들과 의논해서 결정할 예정"이라며 "현 시점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4.9 총선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사실 당선 가능성으로 보면 민주노동당 당적과 현역 의원이라는 프리미엄을 갖고 출마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회찬은 결국 탈당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3월 16일 진보신당이 창당되고, 노회찬은 심상정·이덕우·박김영희·김석준과 함께 공동대표에 취임했다. 노회찬은 노원구 상계동 '노원병 선거구'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다. 노회찬은 출마의 변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호빵맨'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노회찬.
 2008년 18대 총선 당시 "호빵맨"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노회찬.
ⓒ 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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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년 동안 광야에 선 심정으로 한 순간 한 순간 긴장을 놓지 않고 보수정치와 맞서 진보정치의 최전선을 지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대중과 소통하는 진보정치로 진보정당운동을 진보시키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을 통한 지난 8년의 진보정치 실험은 실패했습니다. 낡은 운동권 정파의 자기만족적이고 관성화된 실천을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유능한 진보정치, 진보하는 진보정치를 국민들에게 보여드리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살을 에는 듯한 그 실패의 아픔을 외면하거나 모른척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아픔을 감싸고 치료해 새 살을 돋게 만들기 위해 진보신당의 창당에 나섰습니다. 누구를 탓하거나 책임을 떠넘기는 게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진보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겠다는 각오와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러한 각오와 다짐으로 저는 진보신당 총선승리의 한 획을 긋기 위해 서울 노원병에 출마하고자 합니다. 2004년 진보정당 원내진출의 새 역사를 만들어낸 것처럼 이번 18대 총선에서 '진보정치 서울에서 원내진출'이라는 '정치혁명'을 만들어 내겠습니다. 그 정치혁명의 바람이 전국의 진보신당 돌풍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노회찬의 캐릭터는 명랑만화 주인공 '호빵맨'이었다. 선거운동원들은 호빵맨 가면과 차림새로 지역을 돌았다. 은 이마와 늘 홍조가 도는 툭 불거진 광대뼈. 생긴 것도 생긴 것이지만, 그의 지지자들에게 '호빵맨 노회찬'은 더 의미가 있다. 

"노회찬씨는 진보정치인 가운데 노동자 서민과 괴리감이 없는, 가장 대중적인 인물이기도 합니다. 쉽고 핵심을 찌르는 말로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호빵 속 달콤한 팥소와 같잖아요."(<경향신문>, 2008.4.26.).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이금희 아나운서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노회찬.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이금희 아나운서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노회찬.
ⓒ 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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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 이후 '지못미' 현상과 낙선 인사: "나에게 묻는다"

유세기간 동안 여론조사에서 박빙이긴 하지만 13전 13승을 기록했던 노회찬. 결전의 날인 4월 9일의 실제 개표 결과는 낙선이었다.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와의 경쟁 결과는 40.1% 대 43.1%, 3만2111표 대 3만4554표였다. 낙선 이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몇몇 낙선자들에 대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현상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근태와 심상정 그리고 노회찬이었다. 

노회찬 사무실은 선거 이후에도 한동안 북적거렸다. 노원 주민은 물론 강남구와 서초구 주민들까지 사무실을 찾아 "안타깝다"는 격려의 말과 회식비까지 건넸다. 노회찬의 홈페이지에는 "지켜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제 생각엔 당신은 이미 성공한 정치인입니다" "우리 동네지만 화가 나네요" 등의 글이 쏟아져 일시 정지될 정도였다. 

이에 대해 노회찬은 "노원구 주민들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격려해주시는 국민들에게 감사한다"면서 "노원 주민들께 약속한 대로 노원에서 다시 진보정치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선거운동 때와 같이 상가 방문, 지하철 퇴근인사 등 '낙선사례'를 시작한다(윤태곤 기자, "노회찬·심상정·김근태 '지·못·미~'": 낙선 후 지지 쇄도…'제2의 노무현' 현상?, <프레시안>, 2008.4.11.).
 
2008년 18대 총선 당시 노회찬 후보 사무실에 걸린 현수막.
 2008년 18대 총선 당시 노회찬 후보 사무실에 걸린 현수막.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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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인사 중에 만난 상계동의 한 주민은 "승리와 패배를 떠나 노원을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서민들 모두의 바람이 집값 올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라. 정말 노원의 서민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쓴소리를 겸한 아쉬움의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이 주민은 노회찬과 진보신당을 지지했던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나는 사실 정치에 그다지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내가 노회찬을 지지했던 이유는 시민기자로 취재 활동을 하며 장애인 행사, 호주제 폐지 등 국민의 민의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 노회찬 의원의 모습을 늘 보았기 때문이다. …

서민 밀집지역이라 나처럼 자신들의 처지를 알고 노회찬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뜬구름을 잡아 솜사탕을 만들어 주겠다는 달콤한 공약에 대부분 서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잊었고 귀마저 무뎌진 까닭이다."(이명옥, 18대 총선이 상계동 주민에게 던진 두 가지 직격탄: 노회찬 후보의 낙선과 KBS 스페셜의 아쉬움, <오마이뉴스>, 2008.4.14.).


"여의도동 1번지에 있는 꽤 많은 분을 초대 손님으로 모셨는데, 내 기억으로는 유일하게 진짜"였던 노회찬의 선거현장을 같이 뛰어다닌 이금희 아니운서는 "낙선 사례를 혼자 하게 할 수 없어 아침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달려갔다"며 "하루종일 시장으로, 아파트로, 거리로 다니는데, 나는 울었지만, 그는 울지 않았다"라고 훗날 회고한다(<중앙일보>, 2018.9.8.). 

2008년 4월 13일 방영된 <KBS 스페셜: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연출 임기순, 글 주은경)은 두 달 동안 노회찬 후보의 총선 도전 과정과 서민밀집 지역인 상계 사람들의 삶과 지역 민심을 밀착 취재한 것이었다. 살아온 길이 너무나도 다른 두 후보를 '서민적 이미지의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와 '귀족적 이미지의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를 대비시키며 제작진은 이렇게 마무리 멘트를 한다. 
 
'KBS 스페셜: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 방송 갈무리.
 "KBS 스페셜: 노회찬과 상계동 사람들" 방송 갈무리.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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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후보는 상계동 사람들에게 선택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얻은 40%의 지지는 그에게 희망의 자양분이 됐다. 상계동 서민들과 함께 하는 민생정치를 실현해보겠다는 그의 꿈은 당장은 좌절됐다. 그러나 그는 지금 다시 상계동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4년 후의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선거에서 진보 성향의 많은 후보들이 고배를 마셨지만, 대표적인 서민의 동네 상계동의 선택은 각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노회찬이라는 사람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지역주민의 전반적인 정서와는 상관없이 조직과 바람에 의해서 표심이 좌우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 4년 임기 내에 될지 안 될지 모를 무책임한 뉴타운 공약으로 표심을 유혹한 자들만이 득을 본 꼴이 됐다." 


선거 며칠 뒤 노회찬은 <난중일기>에 '나에게 묻는다'는 제목의 글을 올린다(2008.4.18.). 꽤 긴 글이지만 당시 노회찬의 심경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에 거의 그대로 옮긴다.
 
2008년 4월 9일 오후 2시께 선거사무실에 들른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가 사무실을 방문한 초등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2008년 4월 9일 오후 2시께 선거사무실에 들른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가 사무실을 방문한 초등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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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경 KBS 라디오 박에스더 인터뷰를 기다리던 중 아주머니 한 분이 사무실로 찾아오셨다. 나이 40세. 두 아이의 엄마라며 부천시 원미구에서 2시간 반 걸려 난생처음 상계동에 왔다면서 상계동이 이리 먼 줄 몰랐다고 한다.

가지고 온 분홍보자기를 풀더니 다양한 떡들이 정성스레 담겨져 있는 대나무 바구니를 열어 보인다. 40년간 떡집을 운영해온 70세 시어머니가 연로해서 오늘 떡집 문을 닫는 날인데 마지막 떡을 나에게 주려고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시어머니와 함께 만든 작품이라 한다. 어젯밤 MBC 백분토론도 보았다면서 힘을 내라고 한다. 다음 선거 때는 가게문을 닫고서라도 며칠간 상계동에 와서 선거운동 하겠다고 한다. 전화인터뷰를 마치고 나가보니 어느새 후원당원으로 등록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박규님 동지가 맛을 보라며 떡을 한 접시 담아주는데 집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새벽부터 저 떡을 빚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정성이 천근만근 무게로 가슴을 누른다."

"어제 밤엔 퇴근한 직장인 부부가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둘다 후원당원으로 가입하면서 힘내라고 말한다. 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 거리에 나서면 많은 사람들이 선거운동 마지막날보다 더 적극적인 표정으로 먼저 인사를 해온다.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나, 찍었는데....꼭 될 줄 알았는데....'이다.

그럴 때마다 참으로 송구스럽기 그지없다. 나의 낙선으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한 분들 앞에서 나는 피해자 앞에 선 가해자일 뿐이다. 기쁜 마음으로 기대를 갖고 투표했다가 결과에 실망한 분들이 심경의 일단을 털어 놓을 때마다 나는 영락없는 죄인이다. 일주일째 낙선인사를 다니고 있지만 낙선인사란 낙선자가 위로받기 위한 인사가 아니라 사과하는 인사라는 것을 첫날부터 알게 되었다."

"선거결과가 발표되자 인터넷에서 일부 격앙된 네티즌들이 노원구 주민을 원망하기도 한다는 얘길 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던지는 돌을 맞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집값상승과 뉴타운에 대한 기대감으로 상대후보를 찍었다는 분들에게도 아무런 유감이 없다.

먹고 살기 막막한 상태에서 부동산가격상승이 그나마 위안을 주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여겨지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나 이분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이런 분들에게 우리는 언제 한번 제대로 된 희망과 대안으로 다가선 적이 있는가? 얼굴이 잘생겨서 상대후보를 찍었다는 아주머니의 발언은 오히려 희망을 주지 못하는 진보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에 다름 아니다."

"투표를 거부한 50%에 가까운 유권자들의 질책은 그중 가장 두려운 대목이다. 투표 기권을 나태한 시민의식의 소산으로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누가 되더라도 나아질 것이 없다는 절규 앞에서 진보정치는 과연 당당할 수 있는가?

시인 안도현이 우리에게 물었다.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오늘 나는 나에게 묻는다.

<너를 거부한 사람들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라. 너는 그들에게 한번이라도 희망이 된 적이 있느냐> 같은 물음을 제대로 된 진보정당으로 거듭나려는 진보신당에게도 던진다."


한 번도 가본 일 없는 낯선 길 앞에 서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3월 26일 오후 노원구 상계동 중앙시장 인근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3월 26일 오후 노원구 상계동 중앙시장 인근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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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선본 식구들은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숙고의 시간을 갖는다. 낯선 곳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노회찬의 당시 심정은 아마도 2004년 17대 국회의원 당선 직후 아내 김지선에게 보낸 편지글의 내용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광야에 섰습니다. 험한 세월 모진 풍파 모두 뒤로 하고 한 번도 가본 일 없는 낯선 길 앞에 섰습니다....다시 비바람 거센 광야에 섰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새로운 길은 어쩌면 더 큰 희생, 더 큰 시련, 더 많은 고통만이 예정된 고난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숙고와 논의 끝에 함께 다다른 결론은 '마들'(노원구 상계동)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겠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 지역정치를 제대로 일구는 연구소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내부 논의와 함께 외부의 아이디어와 자문도 계속 구했다.

내부에서 논의된 1차 결과는 "평등·평화·생태·연대의 진보적 가치를 기본으로 좋은 사회(Good Society)를 만들기 위한 정책연구와 실천" "주민들과 소통하고, 주민들과 함께,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지역을 건강하게 바꾸어 나가는 생활정치 실현"이라는 목표 아래 한 장의 그림으로 모아졌다.
 
마들연구소의 기본 철학.
 마들연구소의 기본 철학.
ⓒ 노회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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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자문은 여러 차례 이뤄졌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히 외부 전문가 여섯 분과 노회찬 및 연구소 사람들(박규님, 오재영, 유성재, 조현연, 김의열 등)이 함께 자리를 한 2008년 9월 초 두 차례의 의견 수렴의 시간은 연구소의 지역 활동을 설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의견 청취 및 이야기 주제는 노회찬과 마들연구소 활동 및 진보신당의 지역 뿌리내리기 등 새로운 지역정치활동의 모형 창출과 관련한 것이었다.

9월 3일(수): 조효제(성공회대, 사회학) 신정완(성공회대, 경제학), 구갑우(북한대학원대, 정치학), 
9월 5일(금): 은수미(한국노동연구원, 사회학), 이기호(한신대, 정치학), 조국(서울대, 법대)


기억에 남은 이야기, 그리고 구체적인 연구소 차원의 지역 사업 프로그램을 작성하는데 도움이 된 의견을 몇 가지 범주로 나눠 정리해보면 이랬다.

첫째, 노회찬 개인과 관련:
- 진보적이면서도 대중적(서민친화적)인 이미지를 지닌 노회찬에게는 개인(인간) 그 자체가 가장 큰 자산이다. 통상 진보라 하면,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리고 칙칙한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 프로파일링을 통해 장점과 단점을 확인한 뒤 장점의 극대화 전략과 단점의 보완 전략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 노회찬 하면 이미지는 있지만 내놓을 만한 브랜드가 없다. 정치를 바꿀 수 있는 노회찬 만의 브랜드 만들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진보의 거처로서 지역,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지역'을 접근하는 것이 진보적이면서 대중적인 정치인 노회찬 브랜드 만들기의 핵심 착목 지점의 하나가 될 수 없을까? 지역을 통한 한국 사회의 기득권 구조의 거대 몸통 흔들기라고나 할까? 

- 전국적 지명도를 지닌 노회찬의 경우 중앙과 지역의 조화가 필요하다. 치밀한 계획을 통해 중앙정치 무대를 어떻게 흔들 것인지를 집중 고민해야 한다.
- 진보의 사람 키우기 주력해야 한다. 그 차원에서, 비록 무능하지만 그럼에도 사람에 대한 보수의 정치적 감각과 섬세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 진보의 윤리학이 부재한 지금 상황에서, 진보의 윤리학을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 예컨대 '이 땅에서 진보로 살기 위한 100가지 실천 방법' 같은 것. 
 
2011년 3월 16일 마들연구소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노회찬.
 2011년 3월 16일 마들연구소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 중인 노회찬.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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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지역과 관련:
- 제출된 사업계획서만 놓고 보면 연구소가 혼자 하는 느낌을 받는다. 자료로 제출된 연구소 프로그램의 경우 듣기보다는 선전전의 느낌이 든다. 제가 무엇인지 그들에게 먼저 들어라! 지역주민과 함께 하는 느낌으로 다가가는 것이 중요하다. 

- 연구소 활동이 선거용이 아니라 지속을 통해 진화 가능한 버전이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랬을 때 '지역을 새롭게 만든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지역 안에서 작은 국가를 만들기',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일명 '다윗 프로젝트'를 가동하면 어떨까 싶다.

- 지역의 눈높이로 지역 드러내기, 즉 전문가가 말하기에 앞서 지역 주민 스스로 말하게 함으로써 주민들이 희망하는 지역이 어떤 상인지를 먼저 그리게 해야 한다. 예컨대 뉴욕 맨해튼 1번가의 웬디라는 여성(아이콘 디자이너)의 활동에 주목해봤으면 좋겠다. 마을에서 아이들과 2년 작업으로 지도를 그리기(만들기)를 통해 세대별 지도 등으로 발전한 사례다.

셋째, 구체적인 사업과 관련: 
- '지역 터 잡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연구소의 모든 사업 이슈를 노원 지역과 연결할 필요가 있다. 진보신당 활동가를 비유하면 모두 일당백의 사람들이다. 문제는 중앙 마인드라는 것이다. 지역 활동에서 몸과 사고가 변하지 않는다면 문제다. 중앙이나 전국 차원의 통계 자료에 앞서 노원 지역의 통계를 우선하고, 그것을 전국 차원 또는 서울의 다른 구와 비교하는 것이 중요하다.

- 마들의 고유한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는 (쉽게 즐겁게 할 수 있는) 5개 이하의 사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명사초청특강'과 주민 요청을 연결, 주민들의 요구에 응답하면서 물결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 

- 명사초청 특강이 배운 사람들을 참여주체로 하는 것이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맞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작지만 오래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해외의 경우 지역에서의 '책읽기·책읽어주기' 프로그램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의미를 한 번 확인할 필요가 있다. 
- 교육문제에 집중할 필요, 특히 가정주부를 주된 참여주체로 한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 정치를 주제로 한 '청소년 참여체험학습'(정치교실) 프로그램을 추진해봄직하다. 즉, 아이들이 참여주체인 모의국회나 모의구의회 개최를 통해 아이들도 정치할 수 있다는 것으로 관념 전환과 함께, 정치를 먼 것, 나와는 무관한 것이 아니라 나와 아주 가까운 어떤 것으로 어렸을 때부터 학습할 필요가 있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노회찬하면 떠오르는 것, 여덟 장면: 기록으로 톺아보기 ⑤-2]로 이어집니다(바로 읽기 클릭)

태그:#노회찬, #마들연구소, #총선, #상계동, #노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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