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벌써 12월 말이라니...'라는 말이 무심결에 튀어 나오는 요즘입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신음한 2020년이지만,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위로를 받았던 순간이 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외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영화나 드라마, 노래 등 대중문화들이 많은 힘을 줬을 듯한데요. '2020 날 위로한 단 하나의 OO'에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 순간을 살펴봅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엄마는 다혈질이셨다. 세상 다정하다가도 거슬리는 게 생기면 불같이 화를 냈다. 아버지는 건설일을 하셨는데 자주 집을 비우셨고 한 달에 한두 번 오실 때도 있었다. 그러니 엄만 줄줄이 연년생인 삼 남매와 늦둥이 동생을 혼자 돌봐야 했고, 중풍으로 누워 있는 할아버지 병수발까지 했다. 게다가 우리 집은 4명의 고모, 그러니까 '삼대독자인 아버지'의 누나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돌이켜 보면 엄마는 누구의 기에 눌려 사시는 분은 아니셨지만, 그렇다고 심기가 무탈했을 리는 없다. 그 불편한 심기는 때때로 가장 약자였던 우리에게 날아들곤 했다.
 
언니와 내가 보기엔 엄마의 화는 원칙이 없었다. 별거 아닌 일에 우릴 쥐잡듯하다가도 정작 큰 잘못을 했을 때는 그냥 넘어갈 때도 있었다. 체벌의 수위는 잘못의 크기보다는 항상 엄마 기분에 맞춰져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의 기분부터 살피는 눈치만 늘었다. 특이한 것은 성적에는 연연해하지 않으셨을 뿐더러 궁금해하지도 않았는데, 공부한답시고 켜 놓은 전기세에 유독 민감해서 밤늦게 공부하면 혼났다. 그러니 우린 엄마 눈을 피해서 공부해야 하는 신세였다. 다행히 나는 공부와 무관한 아이라서 행복했다.
 
엄만 우릴 체벌할 때 항상 빗을 들었다. 하루는 집에 돼지 저금통이 없어졌는데, 엄마는 우리 세 남매를 일렬로 세우고 화난 얼굴로 빗을 들었다. 범인 색출 방법은 불문곡직,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누군가 이실직고할 때까지 손바닥을 맞는 것이다. 나는 억울했다. 나는 용돈이 생기면 바로바로 사회에 환원하는 스타일이지, 애초에 이자도 안 붙는 저금통 따위에 돈을 넣지 않는다. 손바닥이 불날 지경이 되자 내가 그런 것 같기도 하면서 정신이 혼미했다. 그 순간 엄만 못마땅한 얼굴로 우릴 해산시켰다.
 
엄마가 밥을 하러 부엌으로 간 사이 우리는 뜨거워진 손바닥을 찬 벽에 대고 솔직한 얘길 나눴는데, 우리 중에 범인은 없었다. 아마도 우리 집에 놀러 온 다른 아이가 가져간 듯하다. 하긴 언니도 오빠도 저금통을 훔쳐다가 뭔가를 살 위인들은 못 됐다. 그럴 가능성이 가장 있는 사람은 돈 쓰길 좋아하는 나였지만, 맹세컨대 나는 아니다. 하여튼, 우리 삼 남매는 우리 말을 믿지 않은 엄마를 원망했다.
 
슬픈 돌림노래
 
 영화 <힐빌리의 노래> 스틸 컷

영화 <힐빌리의 노래> 스틸 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후 나는 결혼을 했고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엄마로 살아 보니 엄마를 이해할 것 같기도 했고(내 화에도 원칙이 없음을 깨달음), 가끔은 아니기도(불문곡직 때리지는 않음) 했다. 아이들을 20년 넘게 키우는 동안 나로 살기와 엄마로 살기가 엉키는 바람에 나도 심기가 무탈치 못한 날이 많았다. 어느 날, 난 자괴감에 빠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언니도 그렇다고 했다. 이 무슨 슬픈 돌림노래인가?
   
이 이야기를 다시 떠올린 이유가 있다. 바로 <힐빌리의 노래>라는 영화 때문이다. 주인공인 JD는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나 어려움 속에서도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성공해 회고록을 쓰는데, 이 영화는 그 회고록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개인의 성공 신화를 다룬 것은 아니다. 외조부모, 엄마, 누나를 통해 가족 간의 갈등과 용서, 그 화해 과정을 뻔하지 않고 심도 있게 다뤘다. 원작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대물림되는 빈곤의 구조적인 문제점, 복지정책의 사각지대, 지역 차별과 같은 정치적인 이야기는 담지 않아 핵심이 빠진 싱거운 영화라는 평도 있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사실적인 이야기에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더해져 몰입감은 컸다.
 
JD의 엄마 베브(에이미 아담스)는 싱글맘으로 JD와 린지 남매를 홀로 양육하고 있다. 베브는 시한폭탄 같다. 금방 다정하게 웃다가도 거슬리는 게 생기면 화가 폭주한다. 아이들에게 신체적인 폭행은 기본, 언어폭력, 살해위협, 그것도 모자라 수시로 자해도 한다. 설상가상 약물에 중독되어 격리시설에 입퇴소를 반복하고 여러 남자와 관계를 갖는 바람에 아이들은 해당 남자들 집으로 들어갔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베브는 대체 왜 이럴까?
 
어린 시절, 베브도 부모로부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학대와 방임 속에 자랐다. 마음속에서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해주고 싶은데, 하나부터 열까지 제 뜻과 반대로만 가는 인생에 그만 자포자기해 버린다. 사춘기 JD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고를 치고 학교에서도 유급당할 처지다. 이런 상황에 JD를 끌어주는 이가 있었으니, 외할머니다. JD를 지키려는 그에게 딸인 베브는 "YOU? (당신이?)"라며 비웃는데, 'YOU'라고 소리치는 베브의 눈에는 원망과 탄식이 가득했다. 외할머니는 그때 당신이 지켜주지 못했던 베브에 대한 후회와 자책으로 비록 가난하고 아픈 몸이지만 손자인 JD를 지키기 위해 이를 악문다.
  
 영화 <힐빌리의 노래> 스틸 컷

영화 <힐빌리의 노래> 스틸 컷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시간은 흘러 JD가 중요한 인턴 모집의 면접을 앞둔 날, 누나인 린지로부터 베브가 또 약물에 손을 대고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해준 것도 없으면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엄마라는 존재에 화가 나지만, 누나의 간곡한 요청에 고향으로 내려가는 JD. 영화는 1박 2일 동안 벌어지는 일들과 과거 기억들로 채워져 있다.
 
JD는 시종일관 막무가내인 엄마를 보면 화가 치미는데, 웬일인지 린지는 엄마를 이해하는 듯하다. 화가 나서 따져 묻는 JD에게 린지는 엄마가 어떤 학대를 받고 자랐는지 언급하며 "용서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도 없다"고 말한다. 뭔가 한 방 맞은 듯한 JD. 나도 덩달아 한 방 맞은 느낌이었다. 영화는 영원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가족이 마침내 손을 잡는 결말로 끝이 난다.
 
베브가 한 행동이 지나치게 느껴지긴 하지만, 그런 환경에 놓인 적 없었던 내가 함부로 재단할 수는 없다.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없으니까. 다만 생각한다. 내 불만과 불행을 가까운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행동으로 쏟아내고 있다면 그로 인해 가장 고통받는 사람의 얼굴을 애써서 떠올리기를. 그리고 그 절망의 눈동자를 때마다 기억하기를. 그건 바로 내 아이고, 내 부모고, 나 자신일 테니까.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가족끼리 집에서 부대끼는 시간도 길어져 가족 간의 갈등이 많아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렇게 지치고 힘든 시기에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웃기고 즐거운 영화를 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런데 이 괴로운 영화를 보면서 가족이란 무엇인지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괴롭다는 건 생각할 것이 많다는 것이고, 많은 생각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도 만드니까. 명언은 낯간지러워서 좋아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JD의 내레이션은 가슴에 와닿는다.
 
"내겐 구원이 필요한 일이 두 번 있었다. 첫 번째는 할머니가 구원해주셨고 두 번째로 날 구한 건 할머니의 가르침이다. 우리의 시작이 우릴 정의할지라도 매일의 선택으로 달라질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정폭력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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