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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에 국정감사가 있다면, 지방의회에는 행정사무감사가 있습니다. 각 지역에 있는 도의회, 시의회, 구의회, 군의회 등은 매년 1회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9~14일 기간 안에 감사를 실시해야 합니다. 지방자치법 제41조(행정사무 감사권 및 조사권)가 그렇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간이 짧아서인지 각 지자체가 너무나 투명한 행정을 하고 있는 탓인지 아니면 의원들이 공부를 안 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각 지방의회 행정사무감사와 관련해 국회의 국감처럼 눈에 띌 만한 내용이 잘 안 보입니다. '행정사무감사가 시작됐다' '며칠간의 행정사무감사가 종료됐다'는 단편적인 언론 보도가 많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구광역시의회 배지숙 의원(달서구, 국민의힘)이 재단법인 대구오페라하우스(아래 대구오페라재단) 행정사무감사에서 제기한 문제는 그런 점에서 중요하고 의미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너도나도 만들고 있는 산하 독립 재단에 경종을 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경
 대구오페라하우스 전경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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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오페라재단은 대구오페라하우스 관리·운영 등을 목적으로 대구시 조례에 근거해 설립됐습니다. 국내 최초 오페라전용극장으로 2003년 개관한 대구오페라하우스는 대구시가 삼성그룹 계열사였던 제일모직으로부터 기부채납 받아 운영해오다가 10년 뒤인 2013년 재단법인에 위탁했습니다. 재단은 기획공연, 대구국제오페라축제, 교육사업, 신인발굴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재단 설립 목적은 ▲ 오페라 관련 조직 일원화로 인력·사업의 효율적 운영 및 내실화 ▲ 분산된 노하우 및 전문성 집결을 통한 '오페라 도시 대구' 위상 제고 ▲ 민간 전문인력에 의한 수준 높은 콘텐츠 개발 ▲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사업효과 극대화라고 합니다. 즉, 대구시 차원에서 오페라 역량을 더 키우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구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는 지난 11월 19일 대구오페라재단을 대상으로 행정사무감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날 감사에서는 대구오페라재단을 둘러싸고 여러 문제가 제기됐는데, 핵심은 특정 에이전트와의 계약을 용역계약으로 판단할지, 보상금 등으로 판단할지에 대한 논란이었습니다.

배 의원 감사 내용과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대구오페라재단은 2017년 한 에이전트를 통해 베를린 유명 극장과 1억1000만 원짜리 공연 계약을 맺었습니다. 지휘, 연출, 배우 출연료 등이 포함된 금액입니다. 1년 뒤인 2018년에도 이 에이전트를 끼고 오스트리아의 한 페스티벌(3억 원)과 계약했고, 지난해에는 베를린의 극장과 다시 계약(3억5천만 원)을 합니다.

공개 입찰 없이 수의계약... 감사 자료도 누락

쟁점은 왜 지방계약법에 따른 공개 입찰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그 내용을 행정사무감사에 제출하지 않았냐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시의회의 요구가 계속되자 뒤늦게 관련 자료를 냈습니다. 아래 대화를 한번 보시죠.

배지숙 의원(아래 배 의원) : "오페라하우스가 행정사무감사에서 누락한 것 중에 A 해외 에이전트와의 계약이 있습니다. (...) 우리 행정사무감사에는 500만 원 이상의 용역계약은 반드시 별도로 기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본 계약은 행감자료에서 찾아볼 수 없었고, 총 7억6000여만 원이나 되는 용역계약에 대해 왜 행정사무감사 자료에서 누락한 것인지..."

최상무 대구오페라재단 공연예술본부장(아래 최 본부장) : "저희가 용역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배 의원 : "여기 보면 사업자등록증, 세금계약서 등의 용역과 관련된 기본자료와 함께 고액의 공공기관 용역에서만 구입하는 정부수입인지, 지역개발공채, 기업세금납부확인서 등의 자료도 다함께 제출이 됐습니다. (...) 오페라재단의 계약부서에서 이 계약이 고액의 계약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용역계약에 필요한 서류들을 다 준비하고 제출받은 겁니다."

최 본부장 : "말씀드린 대로 용역이 가능하다면, 특히 이런 기업이 대구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기업이 대구에 있거나 대한민국에 이런 기업이 2개 이상 있으면 너무나 좋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업이 많지 않기에..."

대구시에 따르면 A에이전트의 본사는 오스트리아 빈에 있으며, 국내에 지점이 있다고 합니다. 용역계약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한동안 계속되다가, 허무하게도 대구시가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너무 쉽게 결론이 났습니다.

정미정 대구시 문화콘텐츠과장 : "일단 저희는 이게 수의계약으로 본 걸로 판단이 되고 있는데, 일단 자료 자체를 등재하지 못한 거는 잘못된 부분으로 인정을 하고..."

정리하면, 대구오페라재단은 에이전트와의 계약이 용역계약에 해당하는데도 불구하고 총 7억6천여만 원에 대해 공모입찰 없이 임의로 상대를 선정하는 수의계약을 맺었으며, 행정사무감사 시 500만 원 이상의 용역계약은 반드시 별도로 기재하도록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누락했으며, 시의원의 자료 제출요구에도 쉽게 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독립된 재단, 필요할까
 
배지숙 대구시의원(국민의힘)
 배지숙 대구시의원(국민의힘)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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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구오페라재단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법적 문제는 전혀 되지 않지만, 정말 중요한 질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배 의원 : "우리 대구오페라재단 정도의 명성과 또 공신력이라면 에이전트 없이도 얼마든지 공공기관과 계약이 가능하고, 또 우리 국제공공계약의 관례상 독일의 그런 지방정부와의 공공계약은 바로 다이렉트로 가능하다는 자문을 제가 구했습니다."

대구오페라재단이 에이전트를 통하지 않고 유명 오페라극단과 직접 계약해야 되지 않냐는 질문인데, 이에 대한 재단 측의 대답을 들어보겠습니다.

최 본부장 : "2017년도에 대구가 유네스코음악창의도시로 11월 1일 (선정) 됐습니다. 제가 3월 유럽에 갈 때 볼로냐 극장과 페자로 시가 음악창의도시라서 볼로냐 극장의 감독·극장장과 이미 구두로, 전화로 약속을 하고 찾아갔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가서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있지도 않았고 3시간이나 기다렸는데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에 갔을 때 2개의 기획사를 만나러 가서 대구오페라하우스의 본부장이라고 이야기했는데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국에서 유일한 오페라전용극장을 짓고, 여기에 더해 독립된 재단을 만들고, 대구시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문가들로 운영한다 하더라도, 공연 섭외는 에이전트를 통하지 않으면 힘들다는 말입니다(참고로 오페라재단 지원 예산은 매년 수십 억 규모입니다. 2020년의 경우 운영지원 61억 원, 오페라축제 20억5천만 원으로 계획됐지만 코로나19의 여파로 6억 원만 지원됐습니다).

대구시에 확인한 결과, 재단이 모든 계약을 에이전트를 통해 하지는 않았습니다. 문제가 된 건 해외공연의 경우입니다. ▲ 2017년 직접계약 3건, 기획사 계약 1건 ▲ 2018년 기획사 계약 1건 ▲ 2019년 직접계약 2건, 기획사 계약 3건이었습니다.

과거 대비 기획사 계약 비중이 높아졌다는 부분에서 '독립재단을 둘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민간 전문인력에 의한 수준 높은 콘텐츠 개발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사업효과 극대화가 목적이었던 오페라 재단이, 너무 쉽게 에이전트를 통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비단 대구 지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11월 12일 충청남도의회 백제문화제재단 행정사무감사 내용을 보면, 재단 예산 81억 원 중 70%에 달하는 54억 원을 민간단체인 공주·부여선양위원회에 지원했습니다. 결국 재단의 대부분 사업과 예산을 선양위원회에 지원했다는 것인데, 홍보비 등을 제외하고는 백제문화제재단에서 직접 시행하는 사업이 너무 적다는 부분에서 지적을 받았습니다.
 
대구오페라축제 한 장면
 대구오페라축제 한 장면
ⓒ 대구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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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백제문화제재단과 대구오페라재단의 공통점은 하나의 행사를 잘 하기 위해 출발한 독립재단이라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행정사무감사에서 똑같이 존재의 이유에 대한 문제제기를 받았습니다. 기껏 세운 독립재단의 결과가, 경영평가 꼴찌(오페라재단은 10개 중 8위), 부정 채용의혹, 임금과다 지급(백제문화제재단), 계약절차 위반 의혹 및 자료제출 불성실 등 다양한 문제 발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충청남도에도 대구시에도 문화재단이 있습니다. 문화재단에서 별도의 조직으로 관리하면 어떤 문제라도 있을까요? 독립재단을 만들기는 쉬워도 통폐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혈세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시와 도의 강력한 의지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대구시에 따르면, 행정사무감사가 끝나고 나서 대구오페라재단의 수의계약 관련해 감사관실에서 감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조만간 결과가 나옵니다. 감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태그:#대구오페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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