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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가 직접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핀란드에서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산타가 직접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
ⓒ 핀란드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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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다. 새하얀 설원이 끝없이 펼쳐지는 핀란드 북극 툰드라 지역의 '로바니에미'에는 산타 마을이 있어 산타클로스와 순록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는 한국인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산타클로스의 본고장 핀란드에 사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추억할까? 네 명의 핀란드인을 만나 크리스마스 전통과 풍습, 올해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어떤지 이야기를 들었다.

내 산타는 내가 고른다

뚤라 까사넨씨는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딸 가족, 손주, 친구들을 만날 수 없어 크리스마스 트리나 산타도 별도로 준비하지 않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소녀 시절을 떠올리며 "이브날 가족들과 사우나를 마치고 가문비나무 향이 그윽하게 나는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앉아 선물과 카드를 열어보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고 회상했다.

뚤라씨는 작년에 장식한 크리스마스트리 사진과 집에 온 귀여운 손주들과 함께 찍은 산타의 사진들을 찾아 보여주며 "핀란드의 산타는 직접 집을 방문해 아이들을 만나서 선물을 주고 가는 세계 유일의 산타"라고 말했다.

뚤라씨의 말처럼 핀란드에서는 이브 날 간밤에 산타가 굴뚝으로 들어와 선물을 몰래 주지 않고 산타가 가정을 직접 방문해 아이들을 만난다. 이는 핀란드식 풍습인데 산타 알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핀란드에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산타복장을 하고 미리 주문받은 시각에 집 앞에 놓인 부모의 선물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산타 알바가 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산타가 마스크를 쓸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들과 온라인으로 비대면 산타 만남 주문도 가능하다는 광고들도 보였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핀란드에서는 보통 산타 알바 한 명이 이브 하루 동안 10~20여군데 가정을 방문한다고 한다. 산타 알바는 한 집당 15분에서 20분 정도를 할애하는데 그 비용은 회당 평균 10만 원 안팎이다.

전문업체를 통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나 연기자들을 방문 산타로 부를 수도 있는데, 노래나 음악도 연주하고 이벤트까지 벌여주는 산타의 최고 가격은 200유로로 한화로 26만 원이 넘는다. 대부분 현금 지불이라 꽤 짭짤한 시즌 소득원이다.

산타 알바가 하루만에 한달치 월급 이상을 벌자 3~4년 전에는 여기에 세금을 부과할지 말지가 언론에서 크게 이슈화됐다. 세금을 관할 감독하는 행정 관청의 선임 전문가인 타넬리 랄루까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일 년에 단 하루 일하는 산타 알바들이 받은 현금을 신고하고 세금을 제대로 냈는지를 추적 확인하는 것은 본인들의 업무나 프로젝트의 주요 우선순위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다"고 밝히면서도 회당 200유로 이상인 경우에는 택스카드에 수입을 기록할 것을 권고했다.

스톡만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쇼윈도
 
핀란드 헬싱키 스톡만 백화점 앞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쇼윈도를 구경하는 사람들
 핀란드 헬싱키 스톡만 백화점 앞에서 크리스마스 시즌 쇼윈도를 구경하는 사람들
ⓒ 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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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을 넘긴 안네 헤밍씨는 크리스마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헬싱키 '스톡만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쇼윈도(요울루 이꾸나)'라고 했다. "스톡만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보지 않고는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맞이한 게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안네씨는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시즌만 시작되면 스톡만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보기 위해 부리나케 달려가서 넋을 놓고 구경하던 추억을 회상했다.

스톡만 백화점은 1949년 이래 매년 새로운 캐릭터와 테마로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선보여 왔다. 종종 남녀노소 줄을 서서 봐야 할 정도로 큰 구경거리였다.

1862년 설립돼 북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60여 년의 역사를 간직한 스톡만 백화점은 몇 년 전부터 재정난을 겪다가 올해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악화로 결국 매각에 들어갔다.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둔 시점에서 발표된 매각 소식은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쇼윈도를 각별히 기억하는 안네씨 같은 핀란드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새해 행운을 비는, 흰쌀 죽에 숨겨진 아몬드 찾기

까이야 또르켈리씨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태어난, 백발이 성성한 여든이 훌쩍 넘은 노모다. "핀란드는 러시아에 맞서 싸운 패전국으로 전쟁이 끝난 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때는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이라 평소와는 달리 크리스마스에 접할 수 있었던 풍성한 전통음식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고 회상했다.

까이야씨는 흰 쌀죽(리시뿌로), 감자(뻬루나 라띠꼬)나 당근(뽀르까나 라띠꼬), 순무(란뚜 라띠꼬) 등을 이용해 만든 캐서롤(라띠꼬), 대구포와 같은 말린 생선을 며칠간 물에 불려 오븐에서 조리한 후 크림 소스를 곁들여 먹는 흰살 생선요리(리뻬아 깔라), 비트루트와 여러 채소가 들어간 로솔리 샐러드, 오븐에서 조리한 햄(요울루 낀꾸) 등 핀란드의 대표적인 크리스마스 음식을 소개했다.

핀란드에는 흰 쌀죽에 숨겨진 아몬드 한 알을 발견한 사람에게는 새해 행운이 깃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식구들 모두 흰쌀 죽을 열심히 뒤적이며 먹었다는 경험을 말하며 까이야씨는 해맑게 웃었다.  

크리스마스 캘린더의 추억

한넬레 비수리씨는 독일어 교사를 하다 은퇴한 독일계 핀란드인이다. 핀란드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기에 두 나라의 크리스마스 전통을 모두 골고루 익힐 수 있었다.

한넬레씨에 따르면, 독일과 핀란드의 공통적인 전통은 크리스마스 캘린더다. 본래 크리스마스 캘린더는 독일에서 시작돼 전 유럽으로 퍼졌다고 한다. 핀란드에도 1947년 걸스카우트협회에서 기부금 마련을 위해 첫 크리스마스 캘린더를 발행하였고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헬싱키 슈퍼마켓에 진열된 다양한 종류의 크리스마스 캘린더들. 사탕이나 초콜릿이 숨겨진 달력이 가장 일반적으로 팔리는 달력 중 하나이다.
 헬싱키 슈퍼마켓에 진열된 다양한 종류의 크리스마스 캘린더들. 사탕이나 초콜릿이 숨겨진 달력이 가장 일반적으로 팔리는 달력 중 하나이다.
ⓒ 권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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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캘린더는 아이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 필수품이 되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12월 1일부터 24일까지 날짜가 적혀 있는 칸을 매일 열어 확인한다. 그림이 그려진 전통적인 달력 외에도 작은 장난감이 담긴 달력, 사탕이나 초콜릿이 들어 있는 달력, 화장품, 메이크업 제품이 담긴 어른용 달력, 애완동물용 달력 등 다양한 종류가 출시돼 인기리에 팔린다. 

한넬레씨는 크리스마스가 오기 한 달 전부터 광장 곳곳에 열린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각종 수공예 장식품과 손뜨개한 울양말, 장갑, 향초들을 구경하는 볼거리 또한 큰 재미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은 더 이상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새로 구매하지 않고, 그동안 잔뜩 사모은 것을 창고에서 꺼내 지인들이나 친구들에게 빈티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다고 했다. 기자에게 이것저것 소장품을 꺼내어 보여주는데 오래된 물건이지만 일년에 며칠밖에 사용하지 않아 새 것 마냥 깨끗했다.

한넬레씨는 크리스마스 한 달 전부터 준비하면서 설렌 마음으로 기다리다가 온 가족이 모두 가족 묘지를 방문해 초도 피워놓고, 교회 예배도 가고, 사우나도 하면서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크리스마스의 평화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핀란드 곳곳의 실내외 크리스마스 마켓이 취소되었다. 현재 10인 이상 모임도 금지돼 많은 이들이 가족 모임, 연말 파티보다는 각자의 집에서 조용하고 조촐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다.

원래 핀란드에서는 '크리스마스의 평화(요울루라우하)'라는 말을 즐겨 쓴다. 연말연시에 왁자지껄한 요란스러움보다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 상태를 가장 이상적인 것으로 지향하는 핀란드인들.

내년 1월부터 핀란드에도 코로나19 백신이 공급된다는 소식에 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시작으로 코로나 사태가 하루 속히 마무리되어 크리스마스의 평화뿐만 아니라 두려움 없는 일상의 평화로움을 모두가 되찾을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희망한다.

태그:#핀란드, #산타,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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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중학생, 초등학생 두아이를 낳아 키우며 IITA 국제 통번역협회 인증 통역사, 방문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조용한 변방에 위치한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에서 교육, 문화, 사회 분야의 야생 블루베리같은 알찬 소식들을 찾아 고국의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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