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전작에 이어 갤 가돗이 주연을 맡았다.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전작에 이어 갤 가돗이 주연을 맡았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원더우먼>(2017)은 <아쿠아맨>(2018)과 더불어 그동안 마블에 밀려 바닥까지 떨어진 DC코믹스의 자존심을 세워준 회심의 일격이었다. 흥행, 평단의 좋은 평가 뿐만 아니라 기존 히어로물들이 가지고 있는 남성 중심의 전형성에서 탈피하는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면서 워너+DC로선 코믹스 히어로물 재건의 발판이 되어주었다. 물론 DC는 같은 해 <저스티스 리그>의 참패로 뒷걸음질 치긴 했지만.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20년 12월,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수많은 대작들이 개봉 연기를 택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속편격인 <원더우먼 1984>는 해를 넘기지 않고 극장에 영화를 걸기로 결정하며 일단 정면 도전에 나섰다. 역시 같은 워너 제작 <테넷>과 더불어 올해 코로나 사태 이후 개봉된 '유이'한 블록버스터 영화라는 점에서 관객들이 거는 기대감은 제법 컸다. 일단 2시간 30분에 달하는 제법 긴 러닝타임만 보더라도 압도적인 볼거리와 이야기를 담았을 거라는 예측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연 <원더우먼 1984>는 여러 부분에서 빈 구석을 드러내는 작품이었다.

​평이한 이야기 구성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히어로물의 미덕 중 하나는 화려한 액션의 연속이다. <원더우먼> 1편만 하더라도 아마조네스 군단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다양한 전쟁터를 배경으로 다이애나(갤 가돗 분)을 비롯한 수많은 출연진들이 훌륭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고대 검투술부터 현대 전투 육박전, 여기에 각종 CG가 어울어진 마법 같은 능력이 등장해 관객들로 하여금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여기에 원더우먼과 미군 장교 스티브(크리스 파인 분)의 로맨스까지 곁들여지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잘 버무려냈다.

​하지만 2편 <원더우먼 1984>는 전체적으로 어수선한 구성이 혼란을 준다. 기존 DC 확장 유니버스(DC Extended Universe)에 기반을 뒀던 1편은 <배트맨 대 슈퍼맨 : 저스티스의 시작>(2016)과 <저스티스리그>(2017) 사이의 연결고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반면 이번 작품은 <원더우면>의 속편이라는 것 외엔 기존 DC 세계관과의 연계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대형 시리즈의 정통성을 계승한다기 보단 그냥 낱개의 오락물처럼 느껴진다. 기존 시리즈들과 연관된 복선 같은 요소가 없다보니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이 평이한 오락물의 범주를 넘어가지 못한다.

어디서 본 듯한 내용들의 반복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가장 큰 약점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내용들이 자주 반복된다는 점이다. 등장 인물이 소원을 빌었는데 그로 인해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 변해버리는 건 1980~1990년대 할리우드 가족 코미디 속에서 흔히 사용되어온 문법 중 하나다(빅, 라이어 러이어). 평범한 여성이 갑자기 악녀로 변해 주인공과 혈투를 펼친다던지(배트맨2, 배트맨 & 로빈) 과학자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빌런이 되는 것(배트맨 포에버, 배트맨 & 로빈, 아이언맨3) 역시 기존 DC를 중심으로 히어로물에서 자주 차용되어온 설정들이다. 여기에 수10년 전 죽은 줄 알았던 핵심인물이 돌아오고(캡틴 아메리카 : 윈터솔져), 1980년대를 배경으로 독특한 영상미를 추가시키는 대목(엑스맨:데이즈 오브 퓨쳐 패스트)도 마찬가지다. 

​영화 곳곳에 익숙한 그림들을 차례로 배치해뒀지만 정작 <원더우먼 1984>만의 독창적인 요소는 딱히 찾아보기 어렵다. 위에서 언급된 설정들이야 타 영화에서도 자주 사용하는 내용들이라지만 재창조나 신선한 시도가 전혀 없이 그저 관행적인 방식에서 활용하다보니 <원더우먼 1984>로선 갑작스레 능력을 잃어버린 초인마냥 갈피를 잡지 못한다. 여기에 영화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막판 사건 해결 방법은 허탈하기만 하다. 

전작 대비 심심해진 액션​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영화 '원더우먼 1984'의 한 장면.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3년 전 1편의 호쾌한 액션과 비교해봐도 <원더우먼 1984>은 뭔가 심심하게 느껴진다. 쇼핑몰에서 절도범을 상대하고 이집트에서 장갑차 추돌 장면 등이 등장한다지만 1편의 그것과는 큰 차이를 드러낸다. 최후의 결전 역시 비장함이 지배했던 전편에 비해 현저한 열세 속에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영화 시작 10분가량을 장식하는 아마조네스 군단의 회고담은 굳이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만큼 사족에 불과하다. 2시간 정도면 충분히 풀어낼 수 있는 내용을 억지로 늘리는 듯한 전개는 지루함을 선사한다.  

​다이애나의 숙적으로 등장하는 빌런 역시 마블은 둘째 치고 기존 DC 영화 속 악당들과 비교하면 능력치, 개연성에서 열세를 드러낸다. 평범한 사기꾼(페드로 파스칼 분)이 예측 불허 능력을 얻게 해주는 스톤을 찾아나서는 과정의 불분명함, 연구소에서 왕따 신세인 보석 연구 학자(크리스틴 위그 분)의 돌변만으론 '매운 맛' 악당에 익숙해진 관객들 입장에선 한낮 '잡범'으로 느껴질 수 있다.

난해 영화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조커> 같은 문제작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마블 대항마로서 가능성을 보여줬던 <원더우먼>은 2편을 통해 '1984'라는 연도 표기 만큼의 퇴보를 보여줬다. 우리가 기대했던 DC표 히어로물은 이게 아니었는데.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원더우먼1984 DC 히어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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