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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니까 금방 배가 고파지고 밥맛도 좋네."

전화 너머로 밝고 명랑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사실 연필로 꾹꾹 눌러 쓴 글이 담긴 노트를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았습니다.

"요즘 자서전을 쓰고 있어. 기억이란 걸 갖게 된 일곱 살 때부터 쭉 써 내려가는데, 재미있다. 한 권 마치고 두 권째 들어갔다."  

엄마는 올해 일흔일곱 살인데 소리 내서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낭독가입니다. 내용이 어렵거나 한 번에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읽고 또 읽어, 결국엔 알고 넘어가야 속이 뻥 뚫린다고 합니다.

중요한 문장은 자로 똑바로 그으면서도 읽기도 합니다. 감동 받은 부분은 별표를 해 놓습니다. 강원도 영월에서 일하는 제가 방학을 맞아 집에 가면 엄마는 한 번씩 낭독을 해 주십니다. "나만 알면 아까워, 같이 나누자" 하며 책을 내민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저도 그 뒷부분이 궁금해 한 권을 뚝딱 해치우고 돌아옵니다.

그런 엄마가 집 근처 동네 서점 역곡 용서점 필사반에 가입해 일 년 넘게 필사하며 문학의 재미에 빠져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남의 글이 아닌 자신의 글을 쓰고 있는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속이 좀 풀리네, 아버지 보고 '나한테 그때 왜 그랬어요, 왜 그렇게 때렸어요? 학교에도 안 보내줬잖아요' 답을 듣든 말든 쓰고 나면 속이 후련해져."

어머니는 고명딸이었는데, 오빠와 남동생 그리고 조카들은 다 학교를 보내줬는데 자신만 초등학교도 넣어주질 않았다고 한탄하셨습니다. 그게 다 민족의 비극, 내전과 외전의 결합체, 6·25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전쟁이 일어났고, 피난 갔다가 3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고 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가방 메고 학교에 가는데 어머니는 집안 심부름을 하며 아버지가 하는 모자 세탁 일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이거 어떻게 할 거야?"
"책 낼 거야. 다 쓰면."

 
 한 글자마다 정성이 가득한 어머니의 자서전
 한 글자마다 정성이 가득한 어머니의 자서전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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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를 펼쳐 보았습니다. 삐뚤빼뚤한 큰 글씨도 문제였지만 받침도 엉망이고 주어와 술어도 맞지 않은 부분이 여럿 보였습니다. 이걸 출판사에서 받아 준다고 해도 누군가가 타이핑을 해야 할 텐데 그 일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엄마, 내가 타이핑 해 줄게요."
"그래? 나야 좋지."


그렇게 집으로 가져온 엄마의 노트를 꺼내기까지는 열흘이 넘게 걸렸습니다. 숙제를 가져온 것 같아 선뜻 펼치기 싫었습니다.

"내가 해야지, 누가 하겠어."

타이핑을 곧장 치기는 무리였습니다. 한 번 쭉 읽고 소제목을 단 다음에 컴퓨터 작업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안 가서 엉엉 목 놓아 울었습니다.
 
 손자들 앞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머니
 손자들 앞에서 이야기꽃을 피우는 어머니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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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에 전쟁이 나서 피난을 가고 그때부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어느 순간에도 유머와 명랑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해이하게 놓지 않고 단단히 쥐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끊어진 배움의 끈을 다시 이으려고 여기저기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나 좀 다니게 해 주세요" 하며 교무실 문을 두드리는 그 모습에서 오열했습니다. 한 권을 다 읽고 나서 어머니께 전화했습니다.

"와, 기억력 좋다. 어떻게 그걸 다 기억해."
"그러게, 신기해. 기억이 다 나네."


글 쓰는 엄마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연이은 가정사로 연달아 기운이 빠진 우리 집안을 다시 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동안 이해 안 되고 유치하고 이기적이었던 어머니의 말과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알면 사랑하게 된다지요, 글을 쓰며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어머니가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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