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0 17:15최종 업데이트 20.12.3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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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영정들 ⓒ 노동건강연대

 
"2018년 12월 10일 태안화력에서 김용균 노동자가 사망한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가 몇 명이나 일하다 사망했는지 알 수 있나요? 비정규직 노동자 죽음이 심각하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요."

"2020년 일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 100명만 재해 경위 등 추려서 뽑아주실 수 없나요? 누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요."


"올해 충남지역에서 사망한 노동자 숫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충남에서 일하다 죽은 뉴스가 많은 것 같아서 뭐라도 해보려고 하는데 현황 파악조차 어려워서요."


노동건강연대에는 산재 사망 자료를 요청하는 각종 문의가 옵니다. 기자, 노동조합 그리고 각종 현안으로 기자회견을 하는 단체 등 문의처도 다양합니다. 

노동건강연대가 대단히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정부가 산재 사망 자료를 꽁꽁 감춘 채, 분기별로 간단한 통계만을 발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 감염자의 숫자나 역학조사 자료가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듯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에 대한 정보와 대처가 공유된다면 매일 7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바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동자가 어떻게 일을 하다 죽었는지 유가족조차 모르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입니다. 한 언론사의 1면을 빼곡하게 채웠던 산재 사망자들의 이름이 사회에 주었던 울림이 정부에는 닿지 않고 있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매일 아침,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소식을 찾습니다. 언론보도, 각 정부 기관의 발표, 시민사회단체나 노동조합 그리고 익명의 제보 등을 모아 매달 오마이뉴스에 '이달의 기업살인'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합니다. 

매일 사망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정리한다고 해서 매해 일을 하다 사망하는 2400명 모두가 구의역 김군이나 태안화력 김용균처럼 사회적으로 공분을 사고, 법이 바뀌고, 많은 이가 추모하는 죽음이 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기사나 정부 기관의 자료에 10줄도 되지 않는 짧은 글로 남은 'A씨'와 'B씨'의 죽음이 말하는 바를 사회에 전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20년 월별 산재 사망 노동자 ⓒ 고정미

 
산재 사망이 한 개인의 불행한 사건이 아니라, 기업이 책무를 다하지 않아 일어난 '고의적인 살인'이자, 한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기억해야만 하는 사건'임을 알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020년 12월 24일까지 노동건강연대는 매일 2.2명, 총 815명의 이야기를 찾았고, 오마이뉴스를 통해 이를 전했습니다. (관련 연재 : 이달의 기업살인 http://omn.kr/1pufk)

노동자의 추락사는 중력의 탓이 아니다

2020년에도 예년과 다를 바 없이 많은 노동자가 사망했고, 가벼이 넘길 죽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김용균 노동자가 죽었던 태안화력에서 또다시 노동자가 사망했고, 창사 이래 500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사망한 현대중공업에서는 올해 상반기 내내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하반기에는 포스코에서 거의 매달 산재로 노동자가 사망했습니다. 회사가 조 단위로 매출을 올리는 동안 가장 밑단에서 위험을 견디며 일하던 하청노동자들이 죽어갔습니다. 숫자와 장소는 다르되 노동자 사망의 사태는 달라지지 않은 2020년이었습니다.

11명, 10명, 10명, 8명, 20명, 14명, 10명, 20명, 23명, 14명, 21명...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이달의 기업살인'에 적힌 추락으로 인한 산재사망자의 숫자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 해도 161명의 노동자가 추락으로 사망했습니다. 

4월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두 자릿수의 추락사망사고가 일어났고, 이는 올해 사망한 전체 노동자의 사고유형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추락사가 사고유형 중 유일하게 2위가 된 4월은 3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이천 한익스프레스 산재 참사가 있었던 달입니다. 추락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산재 사망사고로, 비교적 예방하기 쉽고 선진국에서는 잘 발생하지 않아 '재래형 재해'라 불립니다.

중력이 있는 한 물체는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랜 기간 중력을 이기고 하늘과 우주로 향했고, 천문학적인 기술과 자본을 투여해 그것을 성취했습니다. 하지만 중력으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방법은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최소 한 달이 걸리는 일을 절반에 마무리하도록 노동자를 압박하는 기업에 책임을 묻지 않았고, 매번 추락사로 노동자가 죽어도 기업과 최고책임자에게 책임을 묻는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노동자의 추락을 막지 못한 이유는 '중력'이라는 자연적 조건이 아니라, 죽음을 막지 못하는 법과 제도를 용인했던 정치사회적 조건 때문입니다. 정부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노동부는 2019년 116명의 산재사망사고를 줄였다고 발표하며, 감소의 이유를 건설업 추락사 예방을 위한 노동부의 선택과 집중 전략때문이라 말한 바 있습니다. 이는 추락사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임을 스스로 이야기한 것이니다. 추락을 용인하는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합니다. 2020년, 그 해답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입니다.

가장 많은 곳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곳으로
 

고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가운데), 고 이한빛 PD 부친 이용관씨(맨 오른쪽),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17일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28일, 매일노동뉴스는 노사정 그리고 시민사회 100명이 뽑은 올해의 노동 관련 인물로 고 김용균과 김미숙 어머니를 뽑았습니다. 각각 23표와 24표를 받아 작년에 이어 연속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영광을 누릴 틈은 없었습니다. 2년 전,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을 위해 국회와 거리를 누볐던 김미숙 어머니는 2020년이 저물어가는 오늘도 국회 본청 앞 농성장에서 고 이한빛PD 아버지 이용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 이상진, 정의당 국회의원 강은미와 함께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19일째(29일 기준) 단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18년에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이 올해 1월 16일 시행됐지만, 산재사망은 감소하지 않고 매일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매번 반복하지만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하고 또다시 같은 방식으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필요합니다. 

노동자가 가장 많이 죽는 기업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매번 사고를 일으키지만 개선되지 않는 기계와 회사를 바꾸고, 익숙하고 많은 죽음을 막는 것은 기업에 책임을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가장 익숙하고 많은 떨어지고, 끼이고, 넘어지고, 부딪히는 사망사고와 직장내 괴롭힘, 과로로 인한 사망과 자살을 막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

가장 익숙하고 많은 죽음 외에 우리는 2020년 두 건의 사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고 김재순과 고 속헹의 죽음입니다. 고 김재순은 지난 5월 22일 광주의 폐기물처리 업체인 조선우드에서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습니다. 속헹은 며칠 전 12월 20일에 본인이 일하던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습니다. 김재순은 지적장애인 노동자로, 위험한 회사를 떠나 다른 회사로 가고 싶었지만 내재된 취약성으로 인해 같은 회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고,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이주여성노동자였던 속헹은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회사에서 일해야만 했습니다. 이주노동자가 회사를 옮기기 어렵게 만들어놓은 제도 속에서 추위에 떨다가 사망했습니다.

일하다 사망해도 이름조차 남지 않는 노동자들의 다수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가장 낮은 노동환경에서 일합니다. 추락, 끼임, 넘어짐 그리고 컨베이어벨트, 화학독성물질보다 무서운 것은 '장애인노동자'라서, '이주여성노동자'라서 견뎌야 하는 회사의 악조건과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그들의 '신분'입니다. 

취약성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만난 위험을 피하지 못하게 만들고, '사망'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당연한 것처럼' 이어집니다. 우리는 가장 취약하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장애인 노동자', '이주(여성)노동자'를 바라봐야 합니다.

매일 똑같은 뉴스를 검색합니다. 오늘은 부산이고, 내일은 서울일 뿐입니다. 누구는 건설업에서 일하다, 누구는 엘리베이터를 고치는 일을 하다 죽습니다. 모두를 기억할 수 없다고 해도 기록해야 합니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지 않으니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오늘도 노동건강연대는 일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을 기록합니다. 한 명 한 명의 기록이 흩어지지 않고 또 다른 사고를 막기 위한 기초자료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노동건강연대는 일을 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2020년, 그리고 그 이전에 사망한 모든 노동자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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