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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시인의 학교詩끌'은, 학교가 폭력으로 시끌시끌하다는 뜻, 시(詩)로 학교를 끌어당기거나 끌어준다는 뜻, 결국에는 좋은 의미에서 학교가 시끌시끌했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글이 학교폭력 예방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려는 모든 분께 진심으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기자말]
텅 빈 교문 앞에 덩그러니 서 있어 보았다. 교문으로 쏟아져 들어가던 햇살 같은 학생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문득 그런 풍경이 그립게 느껴진다.
 텅 빈 교문 앞에 덩그러니 서 있어 보았다. 교문으로 쏟아져 들어가던 햇살 같은 학생들을 보기가 힘들어졌다. 문득 그런 풍경이 그립게 느껴진다.
ⓒ 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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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제대로 등교도 못하는 시절에 학교폭력이 정말 문제가 되나? 학생도 없는 학교에 무슨 '학교 폭력'이 있을까?'

코로나19 대책 회의가 있어 중학교에 방문한 어느 날, 복도에서 학폭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학교폭력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셨다. 한창 비대면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때라서 학교폭력이 조금은 줄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사실, 학교폭력은 학교 밖에서 더 많이 일어납니다."

나도 알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그랬던 것 같다. 요즘 학생들, 코로나로 집에만 있으니까, 폭력도 좀 잠잠하지 않을까. 코로나로 힘든 시절이지만, 그래도 학교폭력은 좀 줄지 않았을까. 이런 바람이 있었던 것인데, 그러나 여전히, 폭력은 학생들 가까이에 있다. 학교의 통제 바깥에서 더 극심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폭력에는 예방 백신도 없고 치료제도 영영 없을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수치상으로는 학교폭력이 줄었다지만

계속 되는 학교폭력 뉴스들이 있다. 최근 한 청년이 10년 가까이 이어진 폭행과 괴롭힘으로 결국 목숨을 잃었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된 폭행이 성인이 된 현재까지 이어져 한 소중한 생명을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다. 그 남성은 자기 인생 전체에 드리워진 그 폭력을 걷어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얼굴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 악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그 폭행의 장면을 그냥 지켜만 보던 2명의 친구들도 있었다고 한다.

일명 '기절 놀이'에 의한 학폭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의 목을 졸라 정신을 잃게 만든 뒤, 그대로 바닥에 놓아버려서 뇌진탕으로 인한 뇌출혈이 발생했다. 멀쩡했던 한 학생의 인생이 망가졌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폭력들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많을까를 늘 생각해본다. 무관심과 방관으로 인해서 지금도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시간의 흐름에 묻히고 있을까.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들이 이 정도인데, 아직 드러나지 않거나 은폐된 사건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유튜브 채널 '취재대행소 왱'에서는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정말로 학교폭력이 줄었는가를 알아봐달라는 취재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학교 구성원들은 학교폭력의 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 유튜브 채널 <취재대행소 왱> 영상의 한 장면 학교 구성원들은 학교폭력의 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 취재대행소 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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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117 학교폭력신고센터에 접수된 신고 건수는 1만 2622건이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한달 동안 평균 2000건의 신고가 접수된 셈인데, 지난해 달마다 평균 5000건에 달하는 학폭 신고가 있었던 것에 비하면 절반 이상 줄어둔 수치라고 볼 수 있다. 학교가 문을 닫았으니 그만큼 신고 건수가 줄어든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학교폭력이 교실 문턱을 넘어선 지는 이미 오래된 일. 스마트폰 보급률이 확대되고 SNS 이용이 늘면서 학폭은 시공간을 초월한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의 형태로 진화했다."
- 유튜브 채널 '취재대행소 왱' '코로나19로 학교폭력은 줄었을까?' 중에서
         

일부 언론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폭력이 감소했다고 보도했지만, 이들이 근거로 삼은 것은 단순히 경찰에 접수된 학교폭력 신고 건수에 불과하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학교폭력 사건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이버 불링으로 인한 학교폭력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물리적 폭행으로 인한 학교폭력 사건보다 사이버 불링으로 인한 학교폭력 사례들이 더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물리적 폭행만큼이나 사이버 불링 또한 피해 학생을 그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게 만든다. 특히나 사이버 불링은 마치 시공간의 한계가 없는 감옥을 연상시킨다. 그렇기에 요즘의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은 안전하게 피신할 곳이 없다. 각자의 집 안에서도 학교폭력이 일어난다.

더군다나 사이버 불링은 집단 괴롭힘을 가속시킨다. 사이버상에서 집단 괴롭힘이 일어날 경우 가해 학생의 머릿수에는 제한이 없다. 특정 단톡방으로 수백 명의 가해 학생들이 아무런 제약 없이 쏟아져들어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거기서는 피해 학생의 신체의 일부분이라든지 비밀스러운 정보들을 가해 학생들끼리 공유할 수 있고, 또 다른 가해 그룹의 단톡방으로 그것들을 자유롭게 배포할 수도 있다.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에게 밤새도록 전화를 해서 정신적으로 고통받게 하는 경우도 있고, 원치 않는 음담패설이나 허위사실에 기반한 인신공격도 가능하다. 비대면으로도 한 학생의 일상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다. 이런 피해 사례는 더 다양한 사이버 플랫폼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한 학생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동급생들이 고의로 악플을 달아서 유튜버로서의 정상적인 활동은 물론 일상 생활까지 파괴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어 일부 피해 학생들은 점차 증가하는 스트레스 때문에 학업을 포기할 정도로 우울증에 빠지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하기도 한다. 한 사이버 불링 피해 학생은 부모님 메일로도 장난 메일이 오고, 동급생들로부터 지속적인 메일 테러를 당하고 있어 그 메일함을 비우는 것도 이제는 버거울 지경이라고 말했다. 열어보면 상처뿐인 그 메일들을 지우는데 모든 희망을 다 써버렸나 보다. 최근 그 학생은 친구에게 자살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코로나에도 학교폭력 근절 시 낭독을 멈출 수 없는 이유

여러 지역으로부터 계속해서 들려오는 끔찍한 학폭 사건들, 한 청년의 사망 소식까지. 학교폭력 저항 시 운동을 게을리할 수 없는 이유가 자꾸 생겨난다. 나는 최근에 EBS <파란만장>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왕따가 어른이 되었을 때'란 주제 아래 내가 겪은 학폭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더 많은 분들이 인지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폭으로 인해 아팠던 과거를 꺼내어놓고, 시청자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시 한 편을 낭독했다. 지면(紙面)에서 지면(地面)으로 다시 걸어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10월, 학교 교문 앞에서, 등교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폭력에 저항하는 1인 시 낭독을 했었던 때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관련 기사 : '학폭' 피해자인 시인이 교문 앞에서 시를 낭독했습니다 http://omn.kr/1ozhe)

"밥을 먹다가 친구에게 끌려가 귀싸대기를 맞았다// 시작되었다// 해독 불가능한 언어가 귓속에 난무했다// 거기 모든 전쟁과 살인 폭행 자살과 관련된 모든 악한 자들의 악죄와 알 수 없어 알 수 없이 죽어 간 나약한 자들의 울음소리와 지금도 끌려가 끌려가고 있는 모든 잠정적 폭력의 피해자 피해자들의 절규가 있다고 믿는다"
- '양자역학의 세계' 일부분 (김승일 시집 <프로메테우스> 수록)


나는 폭력에 저항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폭력 없는 사회를 누구보다 희망하는 시인이 되고 싶다. 마음 아픈 학생들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는 한 명의 시인이 되고 싶다. 폭력의 피해당사자로서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는, 폭력의 바이러스를 심하게 앓았던 회복자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사회의 아픔을 함께 앓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까지 코로나로 인해 많은 것들을 잃어가고 있다. 학생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어떻게 되찾아줄 수 있을까 자꾸 생각한다. 어려운 시기에 새롭게 얻은 다짐이다. 올 한해에도 학교폭력 저항 시 운동을 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시 낭독을 했다. 

모두가 힘들었던 2020년이 저물어간다. 학생들이 코로나 없는 사회에서 안전하게 등교할 수 있는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더불어 학생들이 폭력 없는 사회에서 공부하며 아름답게 성장할 수 있는 날들이 하루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태그:#학교폭력, #코로나19, #방역, #학교, #시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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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이 없는 학교를 소망합니다. 제 첫 시집 『프로메테우스』를 학교에서 낭독합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피해학생들을 치유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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