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라라랜드> 포스터

<라라랜드> 포스터 ⓒ 판씨네마㈜

 
시끄러운 경적소리로 메어진 꽉 막힌 도로 위, 답답하기 그지없는 일상에서 마법 같은 일이 펼쳐진다. 생판 남인 운전자들이 자동차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한바탕 뮤지컬을 펼치기 시작한다. 도로 위에서 인생의 잊지 못할 추억, 앞으로의 꿈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이곳이 아까까지 생동감이라곤 찾아볼 수 없던 장소가 맞나 싶을 지경이다.

12월 31일 재개봉한 영화 <라라랜드>(2017)의 오프닝 < Another Day of Sun >은 현실과 영화적 과장이 넘나드는 축제와 인생 예찬의 파노라마를 장장 5분간의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 화려하게 펼친다. 영화의 첫 시퀀스는 작품 전체를 함축하는 주요한 부분인 경우가 많다. 이 작품이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을 처음부터 배치하지 않고 도로 위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의 노래에 힘을 준 이유는 <라라랜드>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데미언 셔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이자 음악영화인 <라라랜드>는 그의 성공적인 데뷔작이자 또 다른 음악영화인 <위플래시>와는 전혀 다른 색깔을 지닌 작품이다. 전작 <위플래시>가 완벽의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감내해야할 고통과 좌절, 그리고 지극히 냉혹한 현실의 무게를 담아내고 있다면 <라라랜드>는 영화의 태그라인처럼 꿈꾸는 바보들을 위한 영화, 낭만을 위한 서정시이다.

그러나 <라라랜드>를 특별한 영화로 만드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꿈과 사랑 둘 중 하나에 가까워질수록 다른 하나는 버려야하는 양자택일의 잔인한 강요이다. 두 사랑스러운 연인의 네 계절 동안의 꿈같던 이야기가 현실과 조응함으로 더욱 애틋해지는 이유는 상실의 고통은 필연이라는 감독의 시선이 전작과 마찬가지로 번뜩이기 때문이다.
 
운명은 항상 필연처럼
 
 <라라랜드> 스틸 컷

<라라랜드> 스틸 컷 ⓒ 판씨네마㈜

 
미아는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배우 지망생으로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다 할 배역을 따내지 못한다. 세바스찬 또한 전통 재즈를 사랑하는 피아니스트지만 아직 마땅한 직업이 없다. 둘의 목표는 다소 허황되다. 한 명은 한물간 전통 장르를 부활시키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이모와의 옛 기억을 발판삼아 수많은 캐스팅에 도전한다.

자칫 현실 감각이 없어 보여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설정이지만 관객들은 두 주인공을 응원하게 된다. 그건 미아와 세바스찬이 고군분투하며 꿈을 좇는 이유가 순수하기 때문임을 알고 있어서다. 반대로 얘기하면 둘을 제외한 등장 인물은 속물적 가치를 중시한다. 세바스찬과 교제하기 전 미아의 애인은 그녀 인생의 목표를 펼칠 장소인 극장이 최근 지저분해졌다며 비난하는 말을 한다. 미아를 만나기 전 세바스찬이 일하던 레스토랑의 주인(J.K. 시몬스)은 그의 선곡을 깡그리 무시하고 '징글벨'만을 치기를 원한다.

영화의 삽입곡 < Someone in the Crowd >에서 미아의 친구들은 그녀에게 유명하고 능력 있는 남자를 파티에서 만나면 인생이 필 수도 있다고 말하지만, 미아는 성공이 아닌 꿈을 위해 살아가는 인물이므로, 아무리 애써도 현실주의자들로 가득 찬 군중(Crowd) 속에서 자신을 이끌어줄 누군가(Someone)를 찾을 수 없다.

비슷한 시기, 세바스찬도 나을 것은 없는 상황이다. 이사 온 뒤 찾아와 잔소리를 퍼붓는 누나에게 자신은 곧 재기할 것이라 호언장담하지만, 레스토랑에서 주인장의 명령을 또 어겨 직업을 잃고 만다. 세바스찬은 말 그대로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며 영화의 메인 테마 < Mia & Sebastian's Theme >를 연주했다. 영화 속 현실의 조명과는 별개로 암전효과가 두드러지는 본 장면은 미아가 마지막 오디션을 볼 때 부른 < The Fools Who Dream >과 묘한 병치를 이루는데 이를 미루어보아 레스토랑에서 그가 얼마나 진중한 심정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의 연주를 알아본 이는 미아뿐이었다. 그렇기 때문 이 둘은 강하게 끌린다. 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첫 만남 그리고 두 번째 만남에서 세 번째에 이르기까지 둘은 계속 어긋나며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미아와 세바스찬이 그리피스 천문대 공원의 야경에서 금방 완벽히 왈츠를 추는 게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둘이 아니라면 불가능 하다는 것을 관객과 두 인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인은 무엇을 포기했나?
 
 <라라랜드> 스틸 컷

<라라랜드> 스틸 컷 ⓒ 판씨네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제를 시작한 둘은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현실의 그림자는 곧 두 연인을 덮친다. 정기적 수입이 없는 세바스찬과의 동거를 미아의 부모님이 못마땅하게 여긴 것이다. 세반스찬은 곤란한 상황에 처한 미아를 위해 자신의 대학동기 키이스(존 레전드)의 밴드, 메신저스의 키보드로 들어가게 된다. 키이스는 재즈에 있어 세바스찬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세바스찬이 재즈에 있어 전통보수파 같은 태도를 일관한다면 키이스는 급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치관의 차이는 명백하지만 키이스 또한 세바스찬과 마찬가지로 재즈의 부활을 꿈꾸는 몽상가라는 점은 같다. 하지만 세바스찬은 이 시점 미아와의 관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하고 키이스의 꿈에 편입하기로 마음 먹는다. 메신저스의 투어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세바스찬은 오랜만에 미아를 만나 그녀가 준비하던 1인극을 포기하고 자신의 투어에 따라와주길 요구한다. 그 이유는 그녀가 그와 마찬가지로 꿈과 사랑 중 사랑을 택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아가 사랑했던 세바스찬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열정적으로 꿈꾸던 세바스찬이었지 현실과 타협한 그가 아니다. 이 외에 미아와 세바스찬의 관계는 한 가지 일방적으로 보이는 구도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주체와 객체로서의 위치다. 세바스찬은 미아에게 언제나 시선을 받는 대상이자 그녀를 이끄는 이정표였다. 재즈를 위한 헌신이라고 볼 수 있는 그의 피아노 연주를 미아는 항상 관람하는데 반에 세바스찬은 한 번도 미아가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한다.

이외에도 그는 그녀에게 <이유 없는 반항>을 보며 연구를 하자며 미아의 영역에 과감히 침입하지만, 세바스찬을 만나기 전 재즈에 관해 백지 상태였던 미아는 그에게서 재즈를 배워나간다. 이처럼 영화상 둘의 관계는 의도적으로 고정되어 있는데, 이 관점으로 본다면 결정적으로 둘을 갈라놓은 사건인 미아의 1인극을 세바스찬이 보러 갈 수 없었던 것 또한 이미 정해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둘 사이는 멀어지고 몇 년이 흘러 다시 겨울이 찾아온다. 두 사람은 각자의 목표를 이뤘고, 우연처럼 미아는 처음 자신이 그랬듯 재즈 음악 소리에 이끌려 세바스찬에게 도착한다. 그리고 객석에서 미아를 알아본 세바스찬은 마음을 다잡고 둘이 레스토랑에서 만났을 때 연주했던 < Mia & Sebastian's Theme >를 치기 시작한다. 음악은 곧 영화의 모든 수록곡을 어우르며 변주한 영화의 마지막 곡 < Epilogue >로 치닫는데 이 때 둘은 공상을 통해 끝까지 둘이 함께했을 경우의 행복한 상상을 펼친다.

그러나 둘의 공상 속에서조차 세바스찬의 꿈은 생략돼 있는데, 그 이유는 데미안 셔젤 감독의 꿈과 사랑에 대한 이분법적 사고가 영화를 진행시키는 원동력으로 존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라라랜드 재개봉 라이언고슬링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 기사를 전문으로 쓰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