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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OO'라는 반품숍이 생겼다. 처음에 나는 뭘 파는 곳인지 몰랐는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샘 말을 듣고 함께 장을 보러 갔다. 우유와 음료수가 반값 이하였고 소고기 400그램이 만원도 되지 않았다.

괜찮을까? 문제가 있어서 반품이 들어온 것 아닌가? 그렇다면 판매를 할 수 없지 않나?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사는 걸 보면 괜찮겠지. 백화점에 납품하는 빵이나 요구르트, 치즈 같은 것도 있었고 처음 보는 반조리 제품도 많았다. 이날 나는 양배추, 사과, 우유, 음료수, 소고기와 꽃을 샀다.    

너무 싸다 싶었던 양배추는 속이 완전히 말라있었지만 소고기는 먹을 만했다. 4000원을 주고 산 꽃은 꽃병에 꽂아놓으니 몇 만 원짜리로 보여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 불편한 기분은 뭐지? 퇴근하면서 아파트 입구에 있는 마트에 들러 맥주를 사는 일이 많았다.

"요게 혼자 한 잔 하기 괜찮죠?"

계산대에는 맥주 한 병과 불막창이 놓여 있었고 사장님이 동조자의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그렇게 자주 샀나? 매일 먹지 않으려고 한 병씩만 사다 보니 매일 술을 사는 굴레에 갇혀버렸고 그러니 나를 사장님이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동네 술꾼으로 소문날까 봐 다음 날은 막걸리로 샀다. 혼선을 주기 위해서다.
   
원래 있던 마트 바로 뒤에 'OO네 마트'가 개업했다. 아파트 하나를 두고 두 개의 마트가 경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경쟁이 당연한 시대에 살고 있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나도 모르게 오래된 마트를 자꾸 흘끗거리게 되었다. 새로 생긴 마트에서 아파트 주민을 마주칠 때마다 한 사람만 왕따 시키는 것 같았다.
    
'OO네 마트'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했다. 정육코너도 있고, 야채와 과일의 종류도 많았다. 전화번호를 등록했더니 3일이 멀다 하고 세일문자를 보내왔다.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영업하는 기존의 마트와는 경쟁이 안 되었다. 밖에서 봐도 물건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게 보이던 마트는 끝내 문을 열지 않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 결국...

"늦게 열어. 저녁 6시에 문 닫고."

딸이 말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내부의 집기들이 빠져서 텅 비어버린 마트를 발견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상가 앞을 한참을 서 있었다.    

소풍을 가는 딸아이에게 싸줄 김밥 재료를 사두지 않았을 때 퇴근하는 길에 들러서 살 수 있는 곳이었고 두부 한 모, 콩나물 한 봉지를 사서 아침 반찬을 해결해준 곳이었다. 초밥이가 꼬맹이였을 때 외상으로 과자를 사 먹은 걸 나중에 내가 돈을 낼 때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비발디 아파트 앞에 있는 '비발디 마트', 오래 알고 지낸 이웃을 인사도 없이 떠나보내는 기분이었다.    

요즘 코로나 19 때문에 식당, 커피숍, 술집이 문 닫은 곳이 많다. 영업을 하더라도 손님이 없어서 휑한 곳이 많은데 유일하게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 '다이소'와 '오픈박스'다. 가성비의 끝판왕 다이소에 가면 문구, 주방용품의 너무 싼 가격에 깜짝 놀랄 때가 많다. 이 정도 가격이 되려면 인건비가 낮은 나라에서 OEM 방식으로 제조를 했을 테고, 그 공장의 근무 환경이 열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다이O와 오픈OO에 일하는 직원들을 보면 힘들어 보였다. 진열해야 할 물건의 양과 종류가 어마어마하고 응대해야 할 고객도 너무 많아 보여서다. 이 분들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택배기사님들을 볼 때와 비슷하다.

어떤 사람의 노동을 바탕으로 한 안위가 마냥 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면 얼마간은 무거운 마음을 덜 수 있겠지만 노동 강도에 비례해 그분들이 정당한 임금은 받는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불편한 마음은 그것 때문이었다.     

아니,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오랜 단골이었던 마트 대신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새로 생긴 마트를 가는 나 때문이다. 가성비가 높다는 이유로 택배 주문을 하는 나 때문이고, 힘든 노동을 사람을 외면하는 나 때문이다. 정가대로 사면서도 더 저렴한 곳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손해를 보는 기분을 느끼는 나 때문이다. 비발디 마트가 사라진 지 일 년이 지나서야 불편함의 정체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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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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