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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빈 강정. 청년정치를 보며 든 생각이다. "청년에 의한, 청년을 위한, 청년의 정치"라는 말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청년정치는 공허하다. 청년의 미래를 위한다거나, 청년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거나, 청년정치가 필요하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그럴듯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위한 내용은 없다. "생물학적 나이가 2030인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한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

청년정치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청년이 직접 정치를 하거나', '청년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다. 전자는 생물학적 나이가 청년인 정치인이 정치를 한다는 의미이다. 후자는 생물학적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청년을 대변하고 그들의 삶을 바꿔낼 수 있는 청년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나는 후자에 비중을 두고 싶다. 생물학적 나이만 충족시킨 청년이 정치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 청년정치인이 청년들의 삶을 더 어렵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을 위한 정치'가 청년정치라면 나이와 세대에 대한 소속은 필수조건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러니하지만 기성 정치인이 청년들보다 더 훌륭한 청년정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청년이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는' 전자의 의미만 강조하며 청년이 정치를 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간혹 보인다. "기성정치는 늙고 낡았으니 청년들이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 기성정치를 물갈이해야 한다"는 식이다. "2030이 전체 인구에서 28%를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비율은 1%다. 그러니 청년들의 국회의원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청년 직접정치론'의 핵심 논리다. 이처럼 청년을 대변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니 청년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잘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왜 대신해서 해야 하나

청년들이 직접 정치를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년이 지금 당장 기성세대를 몰아내고 정치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부족하다. 늙은 사람 대신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왜 청년이 정치를 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성세대보다 정치를 잘할 수 있는지, 어떻게 기성세대보다 청년들을 잘 대변할 수 있는지, 무엇을 청년들이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그냥 '청년이 해야 한다'라는 거대한 담론 하에 고민 없이 외치는 구호만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청년 직접정치론자들이 기성세대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긴 한다. 하지만 기성정치인 개인에 대한 문제 혹은 기성정당에 대한 문제들에만 국한되어 있을 뿐이다. 2030세대가 정치의 주역으로 나선다면 그런 일이 안 벌어진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기성정당의 틀에 들어가서 정치를 하려고 하는 자들이 기성정치인들과 다른 정치활동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는 이유가 궁금할 따름이다.

어느 곳에서도 청년세대가 기성세대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찾아볼 수가 없는데 결론은 항상 청년들이 해야 한다는 쪽으로 흐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당 내에서 '청년정치vs.기성정치'의 구도로 싸움을 펼치지도 않는다. 그저 순응적인 태도로 기성세대가 물러나주길 기대하면서 어딘가에선 청년정치가 필요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뿐이다. 당 내에서 자신 있게 나서서 기성정치인을 호명하며 "여러분들이 시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은 이제 다 보여준 것 같다. 우리가 대신하겠다"며 싸우는 청년정치인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더 잘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왜 대신해서 하겠다고 하는가? 나 역시 청년들의 정치가 필요하다 생각하고 청년들이 정치와 시민사회에 잘 적응해나가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청년참여연대를 함께 만들었고 26살부터 5년 동안 정의당 중앙당 당직자로 활동하며 청년정치인을 육성하는 교육프로그램의 토대를 구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더 현실을 적나라하게 바라보게 된 지금, 실질적인 정치적 기반 없이 청년정치를 바라봤던 생각들이 공상이었음을 깨달았다.

정치는 젊다고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치는 젊다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치인은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다. 비록 면허증은 없지만 정치는 고도의 정치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일엔 수없이 많은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다. 대의를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 나갈 줄도 알아야 하고, 대의를 위해 한 발 물러설 줄도 알아야 한다. 청년이 해선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청년도 할 수 있지만 청년이라고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도, 무조건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청년들을 위한 정치를 잘할 수 있는 정치인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이 청년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백배 천배 낫다. 정치인의 나이가 어떻든 준비되지 않은 정치는 당원들과 시민들에게 해를 끼칠 뿐이다. 청년들의 정치가 기성세대의 정치와 다른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지 못한다면 청년들이 기성세대 대신 정치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청년들이 내실을 다지고 실력으로 자리를 차지해서 기성세대를 밀어내는 것 이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

창조적 파괴로 청년정치를 바로 세워야

청년정치엔 창조적 파괴가 필요하다. 공허함이 가득한 담론으로써의 청년정치는 오히려 청년들의 정치와 미래를 가로막을 뿐이다. 청년정치에 대한 기존의 허술한 관념을 부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청년정치는 청년을 위한 정치, 청년의 삶을 바꾸는 정치다. 이를 위해 청년들의 세력화가 필요하고 그 세력화를 위해선 인력풀을 다채롭게 구성해야 한다. 지금처럼 내용 없이, 기반 없이 막연하게 '청년정치'만 외친다면 강준만 교수의 표현대로 청년들의 이미지만 차용하는 '기성정치의 비비크림'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청년정치의 속 빈 강정을 채워야 한다.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할 여유가 없다. 채워야 한다. 아니. 채워야 산다. 이 연재글은 청년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나의 20대에 대한 반성문이다. 이어지는 기사들이 그 빈 공간을 메우는 보충재 역할을 할 수 있길 기대한다.

태그:#청년정치, #허상, #청년, #반성,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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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언저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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