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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를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는 꿈(Dream)입니다. 그러나 그 꿈은 취약성(Vulnerability)이라는 단어를 동반합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꿈을 이루기 위해 일정 부분 신체적 또는 정서적으로 공격받거나 피해를 입을 가능성과 권리를 침해당할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감수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자발적 취약성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제도와 사회문화적 배경이 강제하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는 게 맞습니다. 이주노동자의 취약성을 당연시하는 이들은 너무 쉽게 이렇게 말합니다.

"돈 벌러 왔으면 그 정도는 고생해야지." "돈 벌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지." "돈 벌러 와서 이것저것 따지면 쓰나. 참 유별나네."

만일 그러한 고생과 위험을 자신의 가족이 맞닥뜨리고 있다 해도 당연하다고 말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한다고 유별나다 할 수 있을까요? 그 누구라도 돈 벌려고 목숨을 저당 잡히는 상황을 당연하다 해서는 안 됩니다. 

고용노동부, 최저기준에 미치지 않는 숙소 방치 

그렇지 않아도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을 보호해 줄 제도나 사회안전망에 대한 정보 습득에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의지하고 믿을 만한 관계들로부터 단절됨으로 인해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을 지지해 주는 가족, 공동체, 국가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지난 2020년 12월 20일,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가까운 날씨였던 포천 지역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헹이 사망한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건 전날 누전차단기가 반복해서 내려가자 고인 동료들은 추위를 피해 다른 방으로 갔습니다. 반면 혼자 잠을 잤던 고인은 그 다음날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경찰 발표처럼 지병이 있었다 해도 저체온이 건강 상태를 급속하게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경찰이 주장하는 바처럼 간경화에 의한 사망이라 해도 건강검진 한 번 받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을 살피지 않으면 이와 같은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헹씨 죽음은 이주노동자 건강권과 주거권,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는 고용허가제 등 불합리한 제도를 살피고 뜯어 고치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속헹은 5년 가까이 한국에 체류하면서 쉬지 않고 직장생활을 했지만 단 한 번도 건강검진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업자등록이 아닌 농업경영체 등록 확인서만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농업인들은 직장건강보험을 가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장건강보험 가입대상자가 아닌 4인 미만 농업이주노동자들의 경우 지역건강보험에 의무 가입하도록 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야 하는 보험료는 평균 급여에 비해 과다하게 책정돼 있습니다. 보험료를 납입하지 않을 경우 체류 기한 연장을 불허하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부당한 처우를 감내하고 있습니다. 고인 역시 지역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급격히 악화된 몸을 돌볼 수 없었습니다. 

국내 입국 전에 건강검진을 통해 문제 없이 입국할 수 있게 된 이주노동자들은 하절기 14~15시간, 동절기에는 평균 12시간 노동에 최대 월 2회 휴무만 허락하는 근로계약을 체결합니다.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그러한 근로계약을 묵인해 왔습니다. 올 하반기부터 5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고 하지만, 농업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입니다. 과도한 노동시간과 병원에 갈 시간도 부족한 휴무로 인한 피로 누적은 아무리 젊은 사람이라 해도 건강을 해치게 합니다. 그렇게 건강이 나빠진 가운데 기숙사는 영하의 날씨에 툭하면 누전되어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대책위 기자회견 국가인권위 긴급구제신청에 앞서
▲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대책위 기자회견 국가인권위 긴급구제신청에 앞서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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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는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사업장의 31.7%가 노동부가 정한 외국인 기숙사 최저기준에 미달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7월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1만 5773개 사업장 중 5003개 업체는 고용허가를 주지 말았어야 하는 사업장이었습니다. 2020년 여름 수해 이재민의 80%가 비닐하우스에 거주하던 이주노동자였던 사실을 떠올려 보면 비닐하우스 이주노동자 사망사고는 충분히 예방 가능했습니다. 

수많은 이재민을 발생시켰고, 화재 등의 반복된 사고에도 고용노동부는 기숙사 최저기준에도 미치지 않는 숙소를 방치했습니다. 난방 장치 고장이 아니더라도 해당 비닐하우스는 외부 노출된 배분전반에 먼지나 빗물로 인한 누전 등으로 화재에 취약한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무런 방화설비가 없었다고 고용노동부 현장 조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비닐하우스 사망사고는 명백하게 고용노동부의 직무유기에 의한 사고임을 말해줍니다. 

2020년 산재사망 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은 최악의 살인기업특별상에 고용노동부를 선정했습니다. 2019년 산재 사망의 12%인 104명의 이주노동자가 사망했지만 그 구조적 원인인 고용허가제를 폐지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의 심장마비, 원인불명의 급작사는 산재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에서 현실은 더 심각합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중앙행정부서가 최악의 살인기업특별상을 받았는데도 책임 있고 실질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삽니다

2019년 겨울 이주노동자쉼터에 '하우스'가 불에 탔다면서 찾아온 여성 이주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푸스프였습니다. 예전에도 실직했을 때 쉼터에서 생활했던 그는 하우스 화재로 옷도 다 타 버려서 겨울철에 입을 옷이 없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런데 푸스프가 말하는 하우스는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식물을 키우는 비닐하우스였습니다. 설 연휴에 화재를 당했던 그는 하우스가 마련되기 전까지 쉼터에서 출퇴근했습니다. 쉼터에서 며칠 출근하다 농장으로 돌아간 푸스프는 지금 사람이 살려고 지은 집이 아닌 비닐하우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대책위가 국가인권위에 긴급구제신청을 하며 기자회견을 하던 자리에서 한 활동가가 울음을 삼키며 했던 말이 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사람이 삽니다. 지금도... 살려주십시오."

비닐하우스에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살려 달라는 소리조차 못 내고 한 사업장에서 일하도록 강요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주노동자들은 늘 편견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혐오 표현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비난은 대체로 타자에 대한 근거 없는 공포, 의심에 근거합니다. 그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은 사회적 분노를 전가할 대상이자 손쉬운 희생양이 됩니다. 이러한 두려움과 민족적 고정관념은 출입국 추방과 단속 정책의 근거가 되며, 폭력적인 통제, 비인간적인 입법을 통해 타자를 배제하고 억압하는 시도로 귀결됩니다.

쉬운 예로 이주노동자들에게 열등한 지위, 직업을 할당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들 수 있습니다. 사업장 이동을 제한하고, 저임금 비숙련 업종에만 취업하도록 하는 등 특정 종류의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고, 같은 급여나 존중을 받지 못하게 하며, 코로나19라는 지구적 재난상황에서 재난지원금 정책에서 배제시켰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주민으로 대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언론에서는 농촌 일손이 없다고 하고, 구직 중인 이주노동자들은 다들 여기저기 알아본다고 하는데, 며칠은 기본이고 한 달 넘게 허탕 치기도 합니다. 겨울이면 일하다가 동상에 걸려 그만두고도 금세 일자리를 찾으러 나가는 이주노동자들을 보는 일은 일상입니다.

날이 추워지면서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들은 점점 일자리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어떻게든 일하고 싶어 하는 이주노동자들은 고용센터가 알선해 준 업체를 찾아가 보지만, 사장은 일을 시켜 보지도 않고 경험이 없다거나 원하는 국적이 아니라거나, 성별 혹은 나이 등을 이유로 거절하기를 예사로 압니다. 
 
동상 걸린 이주노동자 농장에서 일하다 동상 걸린 이주노동자
▲ 동상 걸린 이주노동자 농장에서 일하다 동상 걸린 이주노동자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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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사장은 일 잘하는 사람을 골라가며 고용할 수 있는 반면, 이주노동자들은 최악의 조건에서라도 어떻게든 일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인생에서 가장 축복받아야 할 순간마저 절망이 되기도 합니다. 

루슬란, '사자'라는 뜻을 갖고 있어서 나니아연대기의 우슬란을 떠오르게 하는 우즈베키스탄 이주노동자 이름입니다. 한국에서 두 해를 일하고 결혼을 위해 휴가를 청하자, 회사는 휴가 대신 퇴사를 요구했습니다.

지난 주말에 축하받아야 할 결혼 때문에 실직한 루슬란은 달콤한 신혼방을 뒤로 하고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아야 했습니다. 코리안 드림을 위해. 이주노동자를 설명하는 단어인 꿈이 취약성을 동반하는 현실은 바뀌어야 합니다. 차별적 정책과 그러한 제도를 방관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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