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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으로 가는 길. 눈이 많이 내린 지난 1월 7일 풍경이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 눈이 많이 내린 지난 1월 7일 풍경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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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눈길을 걸어 도착한 역사

모처럼 느림보(무궁화호) 열차를 탔습니다. 버스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하얀 눈이 수북하게 내린 걸 핑계 삼아 낭만을 한 번 찾아봤습니다. 지난 1월 7일 퇴근길이었습니다.

몇몇 사람은 부러워했습니다. 멋있다, 낭만적이다, 분위기 있겠다 등등. 부러 사서 고생한다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유행 따라 사는 것도 제멋이고,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열차역으로 가는 것도 '뚜벅이'를 했습니다. 함박눈을 맞으며, 눈길을 걸었습니다. 1시간 남짓 걸렸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30분이면 거뜬할 거리였습니다. 눈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좋았습니다. <기차와 소나무>, <남행열차>, <밤차> 등 기차를 주제로 한 노래를 흥얼거린 것도 재밌었습니다.
  
기차역으로 가면서 본 배추밭. 지난 1월 8일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에서다.
 기차역으로 가면서 본 배추밭. 지난 1월 8일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에서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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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열차를 탈 임성역 풍경. 열차가 들어오기 10분 전이다.
 느림보 열차를 탈 임성역 풍경. 열차가 들어오기 10분 전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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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열차를 처음 타본 게 국민학교 졸업 직후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초저녁에 광주역을 출발한 열차는 밤새 달리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이튿날 아침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광주에서 서울까지 10시간가량 걸렸던 비둘기호였습니다. 광주-서울은 으레 열차를 타고 오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열차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습니다. 열차가 한 번씩 멈출 때면 큰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짊어진 사람들이 타고 내렸습니다. 출세를 그리며 호밋자루와 삽자루를 팽개친 누나와 형들도 끼어 있었습니다. 차장의 검표를 피해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던 '공짜 승객'도 간혹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챙겨준 삶은 달걀을 소금에 살짝 찍어 먹는 맛은 정말이지 꿀맛이었습니다. 그 시절 열차는 단순한 열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녔습니다. 얼마나 목적지에 안전하게, 빨리 도착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열차를 타고 서울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열차를 타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린 이유였습니다.
  
임성역으로 들어오는 무궁화호 열차. 광주-목포 간을 운항한다. 지난 1월 7일 오후 6시 30분이다.
 임성역으로 들어오는 무궁화호 열차. 광주-목포 간을 운항한다. 지난 1월 7일 오후 6시 30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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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객실 내부. 승객들이 휴대전화를 검색하거나 잠을 자고 있다.
 열차의 객실 내부. 승객들이 휴대전화를 검색하거나 잠을 자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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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장수도, 국숫집도 없지만  

열차를 탄 승객들은 휴대전화를 검색하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했습니다. 신문이나 잡지를 뒤적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고속열차와 달리 열차 안에 비치된 책자도 없었습니다. 차창 밖은 온통 하얀 세상이었습니다. 열차는 하얀 들판에 깔린 레일 위를 덜커덩거리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철길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국도는 '살얼음판'입니다. 자동차의 바퀴가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빨간 신호등을 보고 멈춰서는 자동차는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조마조마하게 합니다. 도로 주변의 실개천까지도 꽁꽁 얼어붙은 겨울날입니다.

열차가 간이역에 멈추면 몇몇 승객이 내리고 탔습니다. 보따리 장사는 한 명도 없고, 대부분 통근족입니다. 과일이나 오징어를 들고 달려들던 옛 장사꾼들도 머리 속에서만 서성거렸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숫집도 추억 속의 풍경일 뿐입니다. 그 사이에 차창 밖이 어둑어둑해졌습니다.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가로등 불빛만이 반짝입니다.
  
열차를 타러 가는 길에 만난 눈꽃. 열차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열차를 타러 가는 길에 만난 눈꽃. 열차여행의 또 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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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역에 닿은 무궁화호 열차. 열차에서 내린 승객이 대합실로 향하고 있다.
 광주역에 닿은 무궁화호 열차. 열차에서 내린 승객이 대합실로 향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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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에서 내릴 때가 가까워집니다. 덜커덩거리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곤히 잠을 자던 승객들이 하나씩 눈을 뜹니다. 습관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고, 두리번거립니다. 저도 내릴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열차를 타고 더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어렸을 때 서울로 가던 열차처럼, 밤새 타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여건이 여의치 않습니다. 쫓기듯이 멈춰 선 열차에서 내렸습니다. 마음은 그대로 열차 안에 뒀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열차 여행이었지만, 만족도는 산보다도 더 크고 높았습니다. 그 마음으로 다시 집을 향해 걸었습니다. 또 눈이 내릴 날을 기다려 봅니다.
  
눈 내린 전남대학교 풍경. 광주역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대학 캠퍼스로 돌아서 가는 길이다.
 눈 내린 전남대학교 풍경. 광주역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대학 캠퍼스로 돌아서 가는 길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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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완행열차, #무궁화호, #임성역, #광주역, #통근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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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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