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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박지영(가명‧22)씨는 오늘도 배달 대행 앱인 '배달의 민족'을 보며 식사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 확산세가 거세지며 음식점들의 대부분이 배달 또는 테이크 아웃(take-out)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집콕 생활로 배달 대행 어플과 이커머스(E-Commerce)는 우리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만약 그가 시각 장애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코로나19 발생 이후 우리의 일상은 변화했고, 여러 가지 대책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방역수칙의 많은 부분이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등록현황에 따르면 전국에 등록된 시각장애인은 25만 명, 청각‧언어장애인은 39만 명에 이른다. 비장애인의 편의성에 맞춰진 방역시스템은 장애인을 소외시킬 뿐 아니라 그들의 기본권까지 침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12월 1~2일 이틀에 걸쳐 성북구와 노원구의 카페 및 음식점을 직접 방문하여 취재한 결과, 22곳의 매장 중 입 모양이 보이는 투명 마스크, 일명 '립뷰(lip-view) 마스크'를 착용한 직원은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손동작뿐 아니라 표정과 입 모양을 보고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마스크로 인해 얼굴이 가려질 경우 소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부 차원에서 각 지자체에 립뷰 마스크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일상 속에서 장애인에 대한 배려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스타벅스 안안점?성신여대점의 거리두기 표시 스티커
 ▲스타벅스 안안점?성신여대점의 거리두기 표시 스티커
ⓒ 김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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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부착한 거리두기 표시 스티커도 문제였다. 이용객들이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이동하도록 동선을 표시하는 용도이나, 시각장애인의 경우 바닥에 붙인 스티커로는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할 확률이 높다. 또한 생성된 QR코드를 15초 내에 인식시켜야 하는 전자출입명부나, 촘촘하게 칸이 나눠져 있는 수기출입명부 역시 시각‧발달장애인이 쉽게 이용할 수 없다. 키오스크에 음성해설 시스템이 없어 시각장애인이 주문을 할 수 없는 매장도 다수였다.

대형 복합 쇼핑몰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안내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쇼핑몰 입구에 설치된 무인 체온측정기 주위에 안내 직원이나 점자 블록이 없어 시각장애인의 경우 스스로 체온을 측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해당 쇼핑몰의 입구는 세 곳으로, 모두 무인 체온측정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안내 직원은 한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방역을 위한 도구가 장애인들에게는 일상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복지관 운영은 축소되고 비대면 교육 지원시스템도 미비

다중이용시설이 아닌,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지역 복지관의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시각장애인 복지관에 문의해본 결과, 운영은 하고 있으나 식당 이용이 제한되고 5인 이하의 소규모 프로그램만 진행되고 있었다.

장애인의 사회활동에 있어 복지관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도 일괄적으로 시설 모임 인원을 축소하는 기존 방역 대책은 장애인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장애인은 비장애인에 비해 사회적으로 고립될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복지관의 운영 제한은 장애인들이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비대면 교육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장애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의 변재원 활동가는 "시각장애인 및 청각장애인 학생의 경우 온라인 비대면 교육 콘텐츠의 접근이 쉽지 않다"며 "발달장애인 역시 돌봄교실 등의 공백으로 인하여 적합한 수업환경이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코로나19 방역 대책으로 인해 대중교통보다 개인 이동이 중시되면서 장애인의 이동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문제도 제기됐다. 서울시는 지난 12월 4일, 오후 9시 이후 대중교통의 운행을 30%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변 활동가는 "축소된 대중교통수단은 장애인의 외출 기회를 제한하며, 대중교통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장애인 콜택시 등의 특별교통수단의 이용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시각편의시설의 홍서준 연구원은 최근 대중교통의 대체재로 활성화된 전동킥보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 점자블록 위에 무단으로 주차되어 있는 전동킥보드에 걸려 넘어지며 부상을 입기 쉽고, 인도 위에서 질주하는 킥보드와 부딪힐 경우 자칫하면 머리를 다쳐 생명을 위협하는 일까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체계적인 복지 매뉴얼이 급선무… 정부 차원의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코로나19 이후, 이처럼 장애인이 방역체계에서 배제된 채 위험 속에 고립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가적인 재난 상황 속에서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속 복지체제 구축은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아닌 정당한 권리가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홍 연구원은 "전동킥보드 규제완화에 대한 안전대책 마련이 시급하며, 비대면 시대에 장애인들이 관계 단절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여가 및 문화 서비스를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변 활동가는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경우 비대면 수업을 보장하기 위해 수어 통역, 텍스트 지원 등이 이루어져야 하며, 정신장애 및 발달장애인 등을 위해서는 돌봄 및 지원 체계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당국이 장애인의 니즈에 맞는 사회복지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체계적인 복지체제 운영을 위한 매뉴얼을 제작하여 전국적으로 통일된 프로세스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장애인을 위한 통합적인 지원체계가 지자체와 정부 수준에서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국가에서 정부 차원의 장애인 대상 복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호주는 '장애인들을 위한 코로나19 정책을 발표하고 정책 실현을 위한 자문위원회를 설립하여 작년 4월부터 구체적인 정책을 시행 중이다. 또한 장애인을 위한 코로나19 교육 및 다방면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여 장애인의 정신건강을 위한 복지 서비스 등을 도입했다.

캐나다는 장애인을 포괄하는 코로나19 방역 정책을 수립함과 동시에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개별 지원 사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포괄 지원 교부금을 배부하는 등 장애인 교육을 위한 긴급 대책을 도입했으며, 그 밖에도 장애인 복지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지원 사업 등의 다양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이제는 장애인들의 필요를 반영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야 하며, 이는 정부 차원의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경험할 모든 재난 상황에서도 사회적 약자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1년이 다 되어가는 코로나 19 상황으로 인해 우리의 생활 모습은 이전을 다시 떠올리기 힘들 정도로 달라져 있습니다. 거리두기로 인해 생활 패턴은 밤 9시 이전으로 앞당겨졌으며, 어딜 가나 명부를 작성하고 체온을 측정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 가운데 과연 소외되는 사람들은 없는지 의구심이 들어 취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거리두기 단계 격상으로 인해 장애인을 직접 만나 밀착취재를 하지 못했지만, 비장애인의 달라진 일상과 관련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장애인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과 우리 사회가 놓치고 있는 점을 되짚어 보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대학 수업 조별 과제로 12월부터 취재를 시작해 완성된 글입니다. 작성 당시와 현재의 거리두리 단계 변화로 인해 사실 묘사 부분에 있어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태그:#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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