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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 은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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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계란을 살 때 '난각번호'라는 것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복잡한 숫자 맨 뒷자리에 있는 한 자리의 숫자 1,2,3,4. 난각번호 '1'은 자연방목한 암탉이 낳은 알이고, 난각번호 '4'는 좁은 케이지 안에 갇힌 암탉이 낳은 알이라는 뜻이다.

'난각번호'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동물의 사육환경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무지'와 '무관심'이 만나, 나에게 계란은 그저 간편한 단백질 보충원이자, 코로나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음식 재료에 불과했다.

그러나 코로나로 촉발된 환경의 중요성과 자연의 경고는, 우리의 육식문화를 진지하게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했고 그저 습관적으로, 맛있다는 이유로 먹었던 '고기'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 요즘 들어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채식주의자 선언'에 귀 기울이게 된 까닭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만나게 된 이 책,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는 나에게 육식문화에 대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의미의 경각심을 던져주었다. 작가 조너선 사프란 포어는 공장식 축산을 동물복지 차원에서 비판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동물권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기후변화의 주범이 되며, 나아가 팬데믹을 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9년에 출간된 책임을 감안하면 지금의 코로나를 '예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쯤 되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의 정보를 꿀떡꿀떡 먹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단지 좁은 케이지 안에서 알만 낳다 죽는 닭이 불쌍하다는 단편적인 생각만 했던 내게 작가는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양계 산업에서는 16주~20주가 되어 암컷이 성숙하면 암컷들을 바로 우리에 넣고 조명을 어둡게 합니다. 완전히 깜깜하게 해 놓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다음 아주 저단백질 사료만 먹입니다.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이는 거죠. 이런 식으로 2~3주쯤 갑니다. 그다음 하루 열여섯 시간, 스무 시간씩 불을 켜 줍니다. 그러면 새들이 봄이 온 줄 알지요. 사료도 고단백질로 줍니다. 새들은 곧장 알을 낳기 시작합니다. (중략) 조명, 음식, 먹는 때를 조절함으로써 산업은 새들이 1년 내내 알을 낳게 만들 수 있답니다. (중략) 그렇게 첫해를 보내고 나면 다음 해에는 새들이 그만큼 알을 많이 낳지 못하기 때문에 도축당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에 나는 바로 '난각번호 1번'을 떠올렸다.
'그래도 나는 자연방목한 닭에서 나온 달걀을 먹잖아, 그러니 적어도 공장식 축산을 지지한 것은 아니야.'

그런데 아마도 나처럼 이렇게 자기 위안을 삼는 사람들이 있을까 봐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한다. '방목이란, 고기용으로 키우는 닭이 '야외'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문이 달린 나의 싱크대 밑에 닭 한 떼를 몰아넣고 키워도 '방목' 라벨이 붙을 수 있다고.  

고기를 먹으면서 회피했던 진실들 

그는 공장식 축산에 있어 '방목과 신선함'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장난을 신랄하게 비판한 후 닭의 유전자 변형으로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알을 낳기 위한 닭과 고기를 얻기 위한 닭으로 나뉘어진 축산업은, 단기간에 '육계'의 평균 무게를 65퍼센트 올리고, 출하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60퍼센트 단축했다. 이는 '인간의 아이가 그라놀라 바랑 플린스톤 비타민만 먹으면서 1년에 130킬로그램 성장하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돌쟁이 아이의 몸무게가 13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니! 넓은 곳에서 뛰어놀지 못하고, 알만 낳거나 사육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쓰러운데 이건 그냥 살코기를 키우는 것과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동물의 사육이 이렇게 비상식적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작가는 숨 돌릴틈 없이 우리의 시선을 도축장으로 돌린다.
 
"도축장에서 노동자들은 살아 있는 닭의 목을 자르고, 눈에 담배를 박고, 닭의 얼굴에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리고, 거칠게 닭을 짓밟는다. 동물은 도축되기 전에 인도적 차원에서 의식을 잃게 만들어야 하는 규정이 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도축장은 거의 없다. (중략) 피부와 깃털에 묻은 배설물이 탱크 속에 남아 새들의 피부는 온갖 균에 오염된다. (중략) 이 탱크의 물은 온갖 오물과 박테리아가 떠 있는 '똥물'이다. 죽은 닭들은 무게를 늘리기 위해 이 똥물을 흡수한다."

놀라웠다. 잔인한 도축 과정과 더불어 이토록 비위생적인 고기 생산 과정이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는 게 더욱 충격적이었다. 온갖 정보가 오픈되어 있는 이 스마트한 시대에 말이다.

널리 알려진대로 높은 지능을 가진 돼지와, 포유류나 영장류와 맞먹는 인지능력이 있다고 밝혀진 닭들이 이 모든 과정을 겪어내는 공포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그들의 도축은 가능한 잔인하게 이루어졌으며, 그 과정 어디에서도 법이 보장하는 '인도적 측면'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책을 덮고 '채식주의'를 선언한 이유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3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채식주의자'로서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 듯했다.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채식주의자'가 되라고 강요할 수 없다면, 먹을거리로서 제 몸을 제공하는 동물들에게 행복한 삶과 편안한 죽음을 주는 것에 함께 힘써 달라고 거듭 강조한다.

동물복지 차원에서의 채식주의라.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이었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껴본 적도 없었고, 내 앞에 놓여진 고기의 원래 모습에 대해서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눈앞에 고기는 그냥 영양가 높은 단백질일 뿐이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사람들의 무관심이 그토록 잔인한 도축을 용인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그저 미안해진다.

"나는 앞으로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동물을 먹는다는 것', 굳이 채식주의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제는 예전처럼 쉽게 동물을 먹을 자신이 없어진 나의 느닷없는 선언이었다. 나의 난데없는 선언에 가족들은 당황해했지만, 이왕 칼을 뽑았으니 두부라도 썰어야겠다는 심정으로 나는 씩씩하게 '채식주의자 선언'을 만천하에 공표했다.

이제 첫걸음을 뗀 나의 채식주의가 어떤 과정을 밟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동물 복지' 그 당연한 권리를 동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이제부터 나는 진지하게 '채식주의'에 도전해 보려고 한다. 비록 아직은 고기 금단현상 때문에 하루종일 초식동물처럼 풀을 씹고 있지만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민음사(2011)


태그:#채식주의, #동물복지, #난각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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