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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어린 시절 내 표정은 대체로 뚱한 편이다. 무뚝뚝해 보이기도 하고, 불만 있는 것처럼 뾰로통해 보이기도 한다. 불시에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어려서부터 감정을 단속하느라 표정이 점점 굳어진 게 아닐까 싶다. 늘 긴장하며, 솟는 감정을 눌러야 했으니까.  

자랄 동안 자상하게, 따뜻하게 사랑받은 기억을 찾기 어려운 내게 아버지는 퇴직하고 나서야 전화를 자주 하셨다. 한 번 통화를 시작하면 한 시간이 넘을 때도 많았다. 주로 당신의 온갖 근심, 걱정과 푸념, 한탄을 늘어놓으셨다. 가능한 한 도움이 되고자 물심양면으로 애를 썼지만, 일방적인 아버지의 의견들을 감당하기 버거워 괴로운 때가 많았다.  

정작 내가 어려움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때에 아버지는 냉담했다. 서러움과 깊은 실망감으로 점차 아버지를 밀어냈다. 왕래를 줄이고, 전화를 줄이고... 막상 거리를 두자니 심적으로 힘들었다. 불효를 저지르는 못난 자식이 아닌가 하는 심리적 자책과 가끔씩 남동생이나 주변 친척들의 자식 도리 운운하는 타박을 듣는 것도 괴로웠기 때문이다. 마음과 관계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으며 스스로를 다독여 보지만 여전히 마음 한켠에 무거운 돌덩이 하나 얹고 사는 꼴이다.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표지 일부
 김영하 작가의 <오직 두 사람> 표지 일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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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엮일 때마다 마음속 돌덩이와 힘겹게 씨름하던 중, 나와 비슷한 처지의 딸을 알게 되었다. 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집 <오직 두 사람>에 실린 '오직 두 사람' 편에, 자신을 지배하는 아버지로부터 제때 벗어나지 못해 괴로워하는 딸, 현주가 그이다. 존재로서 사랑받지 못하고 아빠의 필요에 의해 이용당하는 현주의 처지에 감정이입이 되어, 읽으며 함께 아팠다. 

'아빠딸' 현주는 아빠를 기쁘게 하려고 공부를 하고, 아빠가 정해준 전공을 선택했으며, 가족 내에서 아빠의 감정을 도맡는 역할을 자처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주말마다 아빠와 영화, 쇼핑, 외식으로 함께 보내느라 또래의 남자 친구도 변변히 사귀지 못하고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 

하지만 아빠는 자신 때문에 비롯된 딸의 이런 필연적 결핍에 무정했고, 학원강사인 딸의 직업을 부끄럽게 여겼다. 늙어갈수록 딸에게 점점 더 염치없는 모습을 보여주던 아빠는 급기야 사귀던 여자와 헤어진 후 자신의 감정 뒤처리까지 딸에게 감당케 하는 인격적 미숙함의 정점을 찍는다. 

현주는 왜 진작에 동생이나 엄마처럼 아빠로부터 벗어나거나 거리를 두지 못했을까? 자의식이 발달하면서 아빠의 사랑방식에 대해 의구심이 들던 때가 분명히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아빠가 제공하는 안락함에 너무 오랫동안 길들여져 그랬을까? 아니면 끝까지 아빠에게 존재로서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부모가 자녀를 존재로서 사랑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잘은 모르지만, 자녀를 별개의 인격적 존재로 인정하고, 부모의 위신, 체면, 욕심 등 어떤 목적을 위해서도 자녀를 이용하거나 수단화 삼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현주의 아빠가 현주를 존재 자체로서 사랑했다면 양상은 분명 달랐을 것이다.

현주의 전공을 아빠 맘대로 단정 짓지 않았을 것이고, 현주가 또래들과 시간을 보내며 자신만의 취향을 가꾸도록 했을 것이다. 현주의 직업을 부끄러워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격려해주고 지지해 주었을 것이다. 누군가를 사귀다 실패하고 새로운 이를 다시 만나는 과정을 겪으며 속이 단단해지도록, 현주의 삶에서 아빠는 물러나 주었을 것이다. 

오랜 번민 끝에 아빠를 떠났다가도 익숙함을 찾아 다시 아빠 곁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던 현주는 말한다. '수렁에 너무 오래 빠져 있어서 수렁에 빠진 줄도 몰랐나 보다'라고. 아빠의 필요에 의해서 이용당하는 존재라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아빠에게 중독'되어 버렸다고.

담배든 마약이든 모든 중독이 그렇듯이, 중독으로 가기 전 초반에는 뭔가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일정기간 이상 지속하면 결국 심신을 병들게 만들고야 마는 게 중독의 특징이다. '아빠 중독'이란 말은 그래서 매우 적절한 비유이다. 

김영하 작가는 부모-자녀 관계의 옳고 그름을 극명하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단지 보여주었다. 자신을 지배하던 아빠가 세상을 떠난 후, 그제야 세상에 홀로 딛고 서게 된 자녀가 얼마나 지독히 고독하고 처절한 심정인지를 여리고 착한 현주를 통해서.
 
    아이들과 존재 대 존재로 대등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
  아이들과 존재 대 존재로 대등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고 싶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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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두 자매가 엄마와 아빠사이에서 각자의 풍랑으로 요동칠 때, 한 가족이면서도 이 풍랑을 빗겨간 자녀가 있다. 바로 현주의 오빠이다. 오빠는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거제도 조선소로 직장을 구해 내려가 내내 그곳에 머물렀다.

그는 가족들에게 애정은 있어 보이나, 가족사에 적극 관여하지도,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게, 제 할 일은 하며 적절히 관조적 태도를 취한다. 혹시 그는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 자립적 존재가 되는 방편으로 부모님과 자신사이에 물리적 거리를 한껏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일찌감치 깨달았던 것은 아닐지... 

나도 부모가 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어간다. 마음속 무거운 돌덩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이들과는 존재 대 존재로서 대등하게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아웅다웅 살아가고 싶다. 생각한 대로 사는 건 늘 어려운 일이지만, 부모로서의 나의 태도는 내가 만들어 가는 법이니 힘을 내보련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은이), 문학동네(2017)


태그:#부모자녀, #사랑, #김영하, #오직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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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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