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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미국 현지시각) 미국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공식 발표된 이후 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12월 14일(미국 현지시각) 미국 대선 선거인단 투표 결과가 공식 발표된 이후 보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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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3일(워싱턴D.C. 시각) 선거에 승리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20일 정오 대통령직에 취임한다. 14시간 빠른 서울 시각으로는 21일 새벽 2시다. 도널드 트럼프의 권한이 끝나고 바이든 행정부의 시대가 열린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함으로써 당선인이 사실상 확정되는 11월 첫째 화요일부터 당선인이 백악관에 들어가는 1월 20일까지 대략 70~80일이 소요된다. 이번에는 78일이 걸렸고, 트럼프 때는 73일이 흘렀었다.

왜 70~80일이나 걸리지?

대통령 취임일이 1월 20일로 정착된 것은 수정헌법 제20조에 의해서다. 건국 선포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다음날인 1932년 3월 2일 "(현직) 대통령과 부통령의 임기는 본 조(條)가 비준되지 아니하였더라면 임기가 만료됐을 해의 1월 20일 정오에" 끝난다는 수정헌법 제20조 제1항이 발의됐다.

이 조항이 1933년 1월 23일 비준됨으로써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1월 20일부터 개시됐다. 뉴딜 정책으로 유명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전임자인 허버트 후버 대통령(재임 1929~1933) 때 이런 변화가 있었다.

수정헌법 제20조 제1항에 의해 생긴 70~80일의 기간이 이번엔 실질적 기능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런 기간이 없어서 당선인이 곧바로 취임했다면, 바이든과 트럼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예측할 수 없다. 이번에는 이 기간이 현직 대통령의 대선 불복을 무력화시키는 '완충 역할'을 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수정헌법 제20조 제1항과 비슷한 조항이 대한민국 헌법 제68조다. 제68조 제1항은 "대통령의 임기가 만료되는 때에는 임기 만료 70일 내지 40일 전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대통령직 인수 기간을 40일에서 70일로 못 박았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당선인이 자격을 상실할 경우에는 제2항에 의거해 그 기간이 '60일 이내'로 바뀐다.

현대 한국인들에게는 이런 기간이 당연하게 느껴진다. 집안일이나 회사일도 아니고 국정을 인수하는 데 그 정도 기간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길 수 있다.

'인수기간'에 대한 다양한 사례

하지만, 시야를 전세계로 넓히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이런 시스템을 갖고 있지 않다. 의원내각제 국가의 경우, 총선으로 제1당이 바뀌고 새로운 내각이 출범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민주당의 간 나오토 내각 하에서 2012년 12월 16일 중의원 선거가 치러지고 여기서 승리한 자민당(자유민주당)의 아베 신조가 그달 26일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을 출범시키는 데는 10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영국의 경우에는 이 기간이 현저히 짧다. 총선에서 이긴 정당의 대표가 왕을 만나고 새 내각을 출범시키는 데 소요되는 기간은 보통 하루나 이틀 정도다.

의원내각제가 혼합돼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권한이 보다 더 강한 프랑스의 경우에도 긴 시간이 요구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뒤의 대통령선거가 있기 이틀 전인 2017년 5월 7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에마뉘엘 마크롱은 일주일 뒤인 14일에 취임했다.

눈을 과거로 돌려도 마찬가지. 일례로 조선시대에는 새로운 주상이 등극하는 데 최장 5일이 걸렸다. 세자가 아니라서 후계자 수업을 받은 적이 없는 군주가 옹립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음력으로 명종 22년 6월 28일(양력 1567년 8월 2일)에 명종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고 음력 7월 3일(양력 8월 7일)에 조카인 선조가 왕위를 이을 때도 닷새밖에 걸리지 않았다.

정상적인 승계 혹은 선거를 거치지 않고 불법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세력은 군사력은 준비돼 있을지 몰라도 행정적인 국정운영 능력은 준비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도 정부를 인수하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정권을 차지한 세력은 거사 당일에 행정권을 인수하곤 했다. 연산군을 몰아낸 중종이 쿠데타 당일 경복궁에서 즉위식을 가진 사례, 박정희가 5.16 당일에 군사혁명위원회(18일부터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출범시켜 정부 권력을 인수한 사례 등이 그것을 보여준다. 행정적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집단들의 정권 인수 기간이 오히려 더 짧다는 것은 행정부 인수가 70~80일 또는 40~70일이 걸릴 만한 일이 아님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긴 '인수기간'... 한국도 예외는 아닌데

사실, 대통령선거와 취임식까지의 기간은 현직 대통령을 무력화시키고 국정운영의 동력을 떨어트리기 쉽다. 정식 취임은 하지 않았지만 국민의 신임을 방금 막 확인한, '싱싱한' 당선자의 기세를 현직 대통령이 상대하기란 쉽지 않다. 현직인 김영삼 대통령보다 3살 많은 김대중 당선인이 1997년 12월 18일 대선 이후에 상대적으로 훨씬 생기 있게 보였던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래서 대통령직 인수 기간은 실상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 기간이 두 달을 넘겨도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한국 정치문화가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왕정체제 하에서는 후계자가 현직 군주의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현직 군주에게 문제가 생기면 후계자가 신속히 즉위할 수 있었다. 후계자가 없는 경우에도, 왕족들은 대개 도성에 살았기 때문에 이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왕족이 아닌 일반 백성 중에서 대통령을 뽑는 정치적 실험이 있었던 18세기 미국의 상황은 달랐다.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사람이 미국 수도나 그 부근에 살고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넓은 땅에서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당선인에게 넉넉한 시간을 주지 않으면 안 됐다. 거기다가 새로운 행정부의 각료가 될 사람들이 수도에 모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또 단일국가가 아니라 연방제 국가였기 때문에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절차를 각각의 주와 공유하는 일에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수정헌법 제20조 제1항이 발효되기 전까지 대통령 취임일이 3월 4일이었던 것은 그런 사정들 때문이었다.

그런데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의 임기는 조선 정조 즉위 13년 뒤인 1789년 3월 4일에 개시되지 않고 그해 4월 30일에 시작했다. 1788년 12월 15일부터 1789년 1월 10일까지 열린 대통령선거에 당선된 그의 취임 예정일은 3월 4일이었지만, 실제 취임식은 4월 말에 가서야 열리게 됐던 것이다. 

조지 워싱턴의 취임식이 예정보다 늦어진 이유가 빌 클린턴 대통령 자료관( https://clintonwhitehouse4.archives.gov)에 실린 글인 '역사 속의 대통령 취임식(The Presidential Inauguration in History)'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은 "조지 워싱턴이 합중국의 초대 대통령이 된 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도인 뉴욕시에서였다"라면서 이런 설명을 제공한다.

"의회는 새 정부가 1789년 3월 4일 책무를 개시하도록 예정했었지만, 혹독한 겨울은 여행을 어렵게 만들었고, 4월 6일이 돼서야 유권자들의 투표를 계산하고 선포할 충분한 수의 의원들이 뉴욕에 도착했으며, 이에 따라 조지 워싱턴 님이 만장일치로 대통령에 선출되고 존 아담스 님이 아메리카합중국의 부통령에 정식 선출된 것으로 보인다."

취임 예정일보다 1개월이나 늦은 4월 6일에 워싱턴의 당선이 정식 확정됐다. 이 절차를 치르기 위해 의원들이 뉴욕에 집합하는 일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4월 6일에 당선이 확정됐는데도 4월 30일에 가서야 취임식이 열린 것도 교통과 통신 사정 때문이었다. "(당선이 확정됐다는) 그 흥미로운 뉴스가 버지니아에 있는 워싱턴의 집인 마운트 버넌까지 전달되는 데 여러 날이 걸렸다"라고 위 글은 말한다.
 
마운트 버넌에서 뉴욕까지의 거리
 마운트 버넌에서 뉴욕까지의 거리
ⓒ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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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트 버넌에서 뉴욕까지는 오늘날에는 대략 380km 정도의 자동차도로를 달려 4시간 반만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지만, 이 당시는 조선으로 치면 정조 임금의 시대였다. 조선뿐 아니라 미국의 교통사정도 지금 같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당선 확정 소식이 워싱턴에게 전달되고 이를 들은 워싱턴이 뉴욕까지 여행하는 일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말을 타고 배를 타는 '장구한 여정'을 거쳐 4월 30일에 취임식을 치를 수 있었다.

사정이 나아진 그 뒤에는 대통령들이 3월 4일에 취임했다. 그러다가 1933년에 취임일을 변경하는 수정헌법 조항을 비준하게 됐던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선거일과 취임일 사이에 몇 개월의 간격을 둔 것은 대통령직 인수에 시간이 많이 걸려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18세기 미국의 교통·통신 사정에 기인한 것이었다. 차기 군주가 도성에 살던 관행이 미국에서 적용될 수 없었던 데도 원인이 있었다.

이런 문화가 세계 여타 국가들로는 잘 전파되지 않았지만, 한국은 미국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40~70일'이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태그:#미국 대통령, #대통령 취임식, #조 바이든, #조지 워싱턴, #대통령 취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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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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