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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활동 방해하는 일본정부 규탄 기자회견이 2019년 7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인권회복 활동 방해하는 일본정부 규탄 기자회견이 2019년 7월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앞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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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식민지배 하의 혼란한 상황에서 침략국이 민간인을 상대로 자행하는 성폭력은 국제형사재판소가 규정한 전쟁범죄의 대표적인 유형 중 하나이다. 20세기에만 해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캄보디아, 우간다, 베트남 등 무력 충돌에서 조직적인 강간이 전쟁의 무기 또는 전쟁전술로 자행되어 왔다. 이는 공동체나 민족집단의 민간인 구성원을 모욕하고 지배력을 과시하여 두려움을 심어주고 공동체를 분산/분열시키거나, 더 나아가 강제이주나 인종청소의 목적에 의해서도 수행되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이러한 전시 성폭력을 일반적인 성폭력과는 구분하여 전쟁범죄로 규정했고, 강간 수용소뿐만 아니라 전시 성매매 강요 및 성노예까지의 다양한 형태는 물론, 개인이나 군 내지 정부에 의해 자행되는 제도화된 강간행위를 모두 포함시켰다.

1932년부터 일본국에 의해 운영된 '위안소'는 일본군이 점령 중이었던 중국, 동남아시아, 남태평양 지역 등 전쟁지역마다 계속하여 설치되었는데, 주로 그 대상을 10대, 20대의 성경험이 없는 소녀들을 표적으로 삼았다. 소녀들을 폭행, 협박, 납치하거나 취직시켜주겠다고 기만을 하는 등 온갖 불법적인 수단으로 동원하였으며, 감금환경 하에서 무차별한 강간은 물론 상습적인 폭행과 고문, 낙태시술까지 행해지는 등 전시 성폭력 중에서도 그 규모나 체계와 가혹함이 압도적이었다.
    
이러한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지 80여 년이 지난 2021년 1월 8일에 되어서야 대한민국 법원은 처음으로 일본국의 '위안부' 제도는 위법하며, 일본국은 자국 피해자들에 대하여 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경제협력' 때문에 외면당한 피해자들의 아픔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취재진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고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이 취재진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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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은 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과정에서 '위안부' 피해를 비롯한 식민지 피해를 청산하지 못했다. 극동군사재판에서의 불처벌(impunity)상태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거쳐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과 2015년 한일합의에도 면면히 이어지면서 '우호적 관계의 증진'과 '경제협력'의 표현 하에 제대로 다뤄지지 못했고, 피해자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이러한 전후처리과정은 국제연합(UN)이 <피해자 권리장전>에서 선언한 피해자들의 완전한 보상 및 사죄에 대한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한 것은 물론 마땅히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희생자들을 법적인 보호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이러한 국가의 일련의 조치는 '위안부' 제도에 대한 우리 사회 내 왜곡된 인식을 조장하고 방치했다. 1991년 김학순으로부터 시작된 증언에도 국내 일부 연구자들마저 피해자들을 '자발적 성매매'라고 하는 등 식민지적 강간으로서 '위안부' 제도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1996년 여성폭력에 관한 특별보고관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보고서를 통하여 '위안부'가 '군사적 성노예 시설'임을 분명히 하며 일본의 책임 이행을 촉구하였다. 1998년 성노예제 문제에 관한 특별보고관 게이 맥두걸 보고서를 통해서도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전시 하의 체계적인 강간과 성노예 시설로서 국제법에 위반되는 전쟁범죄이며, 반인도적인 죄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일본 정부의 책임 이행은 물론 일본내 관여자들까지 모두 형사처벌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 밖에도 수많은 국제인권기구가 1990년대에 이미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심층적 조사와 분석을 통해 전쟁범죄임을 결론 내리고, 한국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반복적으로 피해자 보상과 가해자 처벌에 대한 권고와 결정들을 내려왔던 것에 비하면 이번 사법부의 판단은 너무 늦었다. 

"가해자(가해국)에 대한 불처벌의 관행 때문에 여성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 - 라디카 쿠마라스와이 유엔 특별보고관 (2001년 제57차 유엔 인권위원회)
 

미국은 한국과 달리 1976년 '외국주권면제법(Foreign Soverign Immunities Act, FSIA)'을 제정하여 주권면제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외를 명시하고 있다. 그 예외 중 하나가 '외국이나 외국이 고용한 직원의 직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행위로 미국 내에서 발생한 인적 피해에 대하여 금전배상을 청구'하는 경우이다.

미국은 1980년 칠레 국가정보요원에 의하여 자국민이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칠레국을 법정에 세워 자국민에 대한 책임을 물으면서 "당 법원은 인류에 반하는 행위임이 분명한 살인에 대하여 면제권을 부여할 아무런 재량이 없다"라고 하여, 그 어떠한 주권이나 법리도 자국민의 인권에 우선할 수 없음을 명확히 하였다. (Letelier v. Republic of Chile, 748 F.2d 790, 2d Cir. 1984)

일본도 2009년에 '외국 등에 대한 우리나라의 민사재판권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외국 국가의 책임으로 사망 또는 상해 등의 사건이 일본 내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도록 하였다. 일본 법원에서 가해 국의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보다 우선시 되는 건 없다
    
2017년 12월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추모하며 300개의 의자에 헌화를 하는 '빈의자에 새긴 약속' 퍼포먼스가 진행 되고 있다.
▲ "빈 의자에 새긴 약속" 2017년 12월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위안부 피해자를 추모하며 300개의 의자에 헌화를 하는 "빈의자에 새긴 약속" 퍼포먼스가 진행 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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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국제연합은 '세계인권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UDHR)'을 선언하면서 제 8조에서 "모든 사람은 헌법이나 법률이 자신에게 부여한 기본적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하여 권한 있는 국내 법정에서 실효성 있는 구제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였다. 세계인권선언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최소한으로 보장되어야 할 핵심적인 인권을 단 30개의 항목으로 명문화해, 인류의 평화 공존을 위한 불가침의 권리임을 선언했다. 이보다 더 확고한 국제법상의 원칙은 없다.
 
"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형제도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누가 나를 이해하겠어. 형제도 못 믿는 내가 누구를 믿겠어. (중략) 전생을 알고 나서 받아들였어, 내 운명을. 전생이 아니고는 이해할 길이 없었어. 그래도 그 속에서 목숨만은 살아 돌아왔어. 그리고 아흔 세 살 생일을 맞았네."
- 김숨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 - 일본군 '위안부' 김복동 증언집> 현대문학, 195면
 
또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2021년 판결 선고를 기다리고 있다. 법원은 판결로서 피해자들의 권리를 직접 구제할 수 있다. 그 어떠한 주권이나 외교관계도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에 우선할 수 없다. 평생 국가로부터, 사회로부터, 가족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되어왔던 희생자들에 대하여 법원은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아닌 인류의 보편적 인권을 기준으로 납득할만한 판결을 내려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변 일본 군'위안부' 문제 공동대리인단입니다.


태그:#일본군위안부피해자,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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