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6년 전 공시생의 성지인 노량진에 입성했다. 응시하려는 직렬에 해당하는 조건을 부합하기 위해선 사회복지사자격증 취득해야 했고 120시간의 실습이 필요했다. 수소문 끝에 공부와 현장실습을 병행할 수 있는 복지기관을 찾아갔다.

'가정과 학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의 자립을 지원합니다.' 홈페이지에 적혀있는 기관 소개 문구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가정집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곳은 여성들만 지내는 금남의 구역이라 계단을 오르는 입구에서부터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겼다.

현관에서 바라본 거실엔 이모님이라 불리는 중년의 여성들과 몇몇의 젊은 여자아이들이 뒤섞여 저녁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오랫동안 집에서 가족들과 보낸 나에겐 공동체 생활은 왠지 낯설고 어색했다.

아이들을 잘 지도해달라는 시설장님의 당부와 함께 두 달간의 검정고시 교육봉사가 시작되었다. 내년 4월을 목표로 그룹을 이뤄 시험 대비반을 꾸렸다. 그중 한 아이가 유독 각진 말을 내뱉으며 신경을 건드렸다. 심지어 진도에 차질이 생길만큼 수업 분위기를 흐려놓았다. 말끝마다 토를 다는 질문과 답변은 무엇을 상상하듯 그 이상이었다.

"대학 나왔다면서 왜 아직 백수예요?"
"고시원 산다면서요? 집 없어요?"
"여기서 돈 받고 가르쳐 주는 거예요?"
"어차피 말해도 못 알아들으니까. 그냥 대충하세요. 열심히 하지 말고."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비아냥거림에 비에 흠뻑 젖은 생쥐처럼 당황한 표정만 지었던 나. 여과 없이 뱉은 말들이 내 가슴에 생채기를 남겼다.

얼마 후, 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슈퍼에 들러 다양한 간식들을 잔뜩 구입했다. 진도는 반도 못 나갔는데 책거리 마냥 살짝 들뜬 기분이었다.

"샘 돈도 없으면서 이런 거 왜 사 왔어요? 짭잘한 나쵸는 맥주랑 마셔야 제맛인데."
"나중에 클럽 가서 친구들이랑 마셔."
"엥? 샘 클럽도 가봤어요? 딱 범생이 과인데?"
"나이가...몇 인데... 홍대 클럽 2~3번은 다녀왔지."


대화의 물꼬를 튼 게 그때부터였을까? 대학 생활, 연애 상담을 주제로 수다를 떨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매 수업시간마다 편하게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자투리 시간을 마련하니 턱을 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짓던 아이가 내 몸짓과 행동에 관심을 보였다. 여태껏 불량했던 수업 태도에 대한 지적도 수긍하며, 나중엔 보충수업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는 학구열까지 불태웠다.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두드리자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기 위한 나만의 공식이 마침내 통한 것이다. 어쩌면 그게 내가 선입견이란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바라본, 최초의 푸른 하늘이었을지도 모른다.

우연한 기회가 직업적 인연의 시작이었을까? 오늘도 나는 갖은 핑계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온몸으로 표출하는 아이들을 마주한다. 비행청소년들을 선도하고 교화하는 직업을 가진 보호관찰관으로서 위험한 경계선을 넘나드는 친구들과 호흡하며 잦은 숨 고르기를 반복한다. 때론 감정 소비가 극에 달해 회의감을 느낄 때도 많지만 그럴 때마다 가슴 속 묵직한 울림을 줬던 그날의 기억을 꺼내 본다.

태그:#선입견, #색안경을 벗고, #푸른하늘, #보호관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일상에서 발견한 서사를 기록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함께여서 행복한 우리 가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