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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어게인 63호의 무대 모습
 싱어게인 63호의 무대 모습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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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하러 미용실에 앉았는데 또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자기야, <싱어게인> 봤어?"
"63호!"
"맞아 63호. 그 뭐냐, 1호가 될 수 없언가 거기에 나온 사람이 싱어게인 63호에 푹 빠져있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그제서야 알게 되었잖아. 어떻게 스무 살 밖에 안 된 사람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지?"
"저는 벌써 휴대전화 컬러링으로 설정했어요. 처음에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그 손님과 주인장이 나누는 jtbc 프로그램 <싱어게인>에 관한 대화였다. 나도 몇 번 방송을 봤지만, 도대체 63호가 누굴 말하는지 얼굴이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결국 둘의 대화에는 귀로도 참여하지 못한 채 미궁에 빠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궁금증을 해결했다.

미용실에서 말한 63호 주인공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참가한 다른 사람과 듀엣으로 경연할 때였다. 듀엣으로 노래하는 것을 들었을 때는 목소리의 감성이 오롯이 전달되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잘하네, 정도였다. 그런데, 혼자 불렀던 다른 노래를 들어보니 젊은 사람인데도 노래의 감성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던 것 같다.

<싱어게인>은 이름을 잊어버린 무명 가수가 나와 노래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처음 프로그램이 시작될 당시는 포맷이나 출연진의 면면에 대한 구설이 포털을 장식하기도 했다. 출연진의 자질과 출연진을 시니어와 주니어로 구분해 놓은 것, 어느 심사위원은 말을 한마디도 안 한다거나 어느 심사위원은 전문성이 없다거나 하는 얘기에 프로그램에 대한 흥미를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프로그램의 몇몇 장면이 TV 채널을 돌리다 멈추면 나오고, 또 나오고 했다. 그렇게 스치듯 붙잡듯 잠깐씩 보았던 내용 중, 63호와 화제가 되는 몇 명의 노래가 내게는 특별하게 들렸던 것 같다. 거기에 다른 사람에게서 놀라운 찬사까지 들었으니 그 가수의 노래를 더 들어보자고 생각했다.

포털을 검색하니 방송에서 나오는 '63호'라는 호칭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이름까지 알려진 상태였다. 그가 지금까지 프로그램에서 노래한 영상은 1400만 조회수를 넘어섰고, 당사자는 집안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마스크로 중무장해도 다들 알아본다고 하니, 풍성한 파마머리는 그만의 이미지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본인 스스로 '찐 무명'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노래에 많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고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미용실 손님은 63호의 이력은 물론 부모 관계까지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팬심이라는 것이 그런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고, 그래서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그래서 그렇게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는구나, 하는 실력의 근간을 입증하고 확인하는 것. 그리고 가장 먼저 팬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증명해 보이는 것.

처음 이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정말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 많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그들 모두가 이미 가수지만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는, 가수가 아닌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린 학생들이 막연하게 연예인을 동경하거나 가수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은 일찍이 알고 있었지만, 그 길로 접어들고도 이름을 알리지 못하는 재야의 고수가 많다는 사실, 직업만으로 먹고살기도 힘들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던 것 같다.

이름을 각인시키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하는 세상 

방송에 나온 이들은 자기 이름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많은 가수들 중 몇 명만이 이름을 알리고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상황이 그 세계의 실상이었다. 그런데, 가수만 그럴까. 개그맨도, 배우도, 감독과 수많은 작가들, 거기에 주목받지 않는 직업군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생계를 위해 사투를 벌이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시간 내가 몸담았던 세계에서도 분명 교사이지만 교사인 듯 교사가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았다. 아무리 자존감을 높이려고 노력해도 기간제, 비정규직, 시간 강사라는 이름은 사람을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당당하게 아이들에게 말하지 못했고 그 이름으로 따로 불리는 상황들이 못 견디게 힘들었던 것 같다. 

해마다 다시 계약하고 그 계약에서 살아남아야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세상. 계약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그들도 무명의 가수 혹은 연예인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세상이었다. 같은 교과, 같은 업무, 같은 학생들을 지도하지만, 교사라는 이름 앞에 붙은 색다른 타이틀은 불도장으로 새긴 낙인처럼 지우기 힘들었던 것 같다. 상관없다고 자존감을 한껏 높여 보았지만, 해마다 마음의 상처는 더 깊고 진하게 새겨졌던 것 같다.

<싱어게인>에서 초, 중반에 탈락했던 사람들이 한결같이 '좋은 기회였다', '행복한 시간이었다'라고 말하며 꼭 '앞으로도 가수 〇〇〇으로 열심히 살아가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떠났다. 자신의 이름 석자로 사람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 더 나아가 팬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알기에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느껴지는 그늘이 더 쓸쓸해 보였다.

코로나가 1년이 넘게 이어지면서 무대가 사라지고 공연장이 사라지고 영업장이, 일자리가 사라졌다.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는 곳도 앞으로 얼마간 이어갈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무대를 내려가는 그들의 소회와 다짐이 얼마나 힘들게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는 것인지, 누구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부서지고 사라지는 사람들, '한 번 더' 기회가 필요한 이들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신개념 리부팅 오디션 프로그램, 그 취지는 좋은 것 같다. 가수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무명들에게 다시 기회를 허락하고 자기 이름 석자를 말할 수 있는 무대를 허락한다면... 이런 생각을 하며 이 땅의 '무명'으로 남은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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