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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성 현장 모습.
 농성 현장 모습.
ⓒ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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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햇볕, 햇빛, 핫팩, 아니면 난로? 햇빛이 그리운 겨울 농성장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질문이다. 내가 김진숙 복직을 내걸고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김우씨를 찾은 날, 작은 빛을 본 것 같았다. 화창한 봄날 같던 그날의 빛줄기를 닮았다.

지난 16일, 단식 26일 차를 표시한 몸 자보를 건 김씨의 얼굴은 단식 26일차라고 믿겨지지 않을 만큼 평온하다. 자타가 인정하듯 태평한 성격 탓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김진숙 복직' 싸움이 노정하고 있는 조용하면서도 질긴 성격과 결을 같이하고 있었다. 그래도 단식이란 사람의 기본적 생리를 거스르는, 아니 중단하는 것에 가까운지라 쉬운 결심은 아니었을 텐데…. 그에게 김진숙씨와 어떤 인연이 있기에 단식투쟁까지 하냐고 물었다. 그러나 대답은 의외였다.

"꼭 그 사람을 알아야 단식을 하나요? 김진숙씨와는 개인적으로 특별한 인연은 없어요, 본적도 없고요. 김진숙씨도 자기 개인의 일이나 지인들과 관련된 문제 해결을 위해서만 싸운 것은 아니잖아요. 명숙도 문중원 열사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했을 때 문중원 열사와 아는 사이였던 건 아니잖아요.

제가 아는 건 35년간의 해고가 부당하다는 사실이고, 이번이 김진숙씨가 복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제가 단식을 하게 된 건 일종의 부채감 때문인 것 같아요. 2011년에 김진숙씨가 85호 크레인 고공농성할 때 여러 차례 희망버스가 있었지만 한 번도 희망버스를 타지 않았거든요."


부채감은 때로 연대의 빛으로 발화하곤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에 큰 빛들이 있는지 모른다. 그는 2014년 세월호참사가 있기 전까지는 한국 사회에 벌어지는 각종 투쟁에 후원금을 내는 정도로만 마음을 전했다고 했다. 2009년 용산참사 때도 남일당 빌딩에 가서 추모를 하고 기금을 내고 묵념을 하고 돌아왔고, 2011년 희망버스 때도 그랬다. 그러던 그의 발을 떼게 만든 것은 세월호 참사였다.

"(사회가 이런 지경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안해서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광장에 나갔어요."

그 후로 마포지역 416모임을 하고 416연대 운영위원으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단식도 세월호참사 때 처음 하게 됐다. 세월호 특조위를 해산시키려 한 정부에 항의하는 단식농성이었다.

평범한 시민이 하는 단식

그 후로도 그는 단식을 한 번 더 했다. 2017년 겨울, 파인텍 노동자들이 '합의사항 이행'을 촉구하며 고공농성을 할 때였다. 고공농성이 1년이 다 되어 가도록 해결의 기미가 없자, 시민사회종교계는 회사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나승구 신부, 박승렬 목사, 송경동 시인,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등이 시작했고, 그 외에도 이해성 연출가 등 예술인들도 동참했다. 그도 단식을 21일간 했다.

"그때 제가 단식을 했을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왜 네가 단식을 해?'였어요. 제가 시민사회종교계를 대표하는 대표급 인물이거나 시민사회로부터 존경받는 훌륭한 삶을 살았던 사람도 아니니까요. 그때 저는 '나 같은 평범한 시민 중에 한 명이 단식을 한다면 싸움이 어렵지 않게 다가가지 않을까. 비슷한 사람이 단식을 하는 것도 뜻깊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단식을 하는 중에도 그는 파인텍 사장인 김세권 집 앞 1인 시위를 꾸준히 했다. 일산에 사는 주민이 함께 해줘 어렵지 않았다. 일산에 사는 주민들은 1인 시위는 우리가 할 테니 단식 중인데 일산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며 응원도 해주었다. 뜻과 뜻이 만나니 외롭지 않았다. 부채감이 빛으로 확산되는 순간이었다.

정권 바뀌었지만, 청와대의 냉담은 그대로 

세 번째 단식에 들어간 그에게 겨울 노숙단식이라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세월호 참사 때나 파인텍 단식 때도 천막은 있었는데 청와대 앞 단식농성장은 그야말로 허허벌판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겨울은 특히나 춥지 않은가.

처음에 청와대 경호원들과 종로경찰서는 집회 금지 구역이라며 비닐 한 장, 담요 한 장 허락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연락했으나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 겨우 밤에 침낭에서 자는 정도였다. 경찰들은 보기 흉하다며 아침 6시에 침낭을 뺏어가서는 밤 10시에 돌려주는 식이었다. 피켓으로 만든 작은 바람막이 벽도 투쟁으로 겨우 확보한 잠자리다.

"내 생애 가장 큰 추위를 견디는 것 같아요. 바람을 막아줄 위(천장)도 없고, 옆(벽)도 없이 추위를 견뎌내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그런데 사실 칼바람보다 더 추운 건 청와대와 경찰의 냉대예요."
 
 농성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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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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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금처럼 밤에 피켓 사이로 비닐 한 장 덮을 수 있었던 것도 수없이 경찰과 싸워서 얻은 투쟁의 산물이라고 했다. 정권 교체는 이루어졌으나 청와대의 외면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했다. 촛불 정부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김제남 시민사회수석과의 만남을 말해줬다.

"매우 추운 날씨일 때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과 만났어요. 김진숙 복직을 위해 정부가 해결해야 하지 않냐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대통령이 아닌 노사 합의로 결정할 문제'라는 것이었어요. 이 문제가 풀리지 않아도 청와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원망을 한다면 안고 가는 것밖에 없다는 거예요. 어쩌면 이렇게 무책임할까 싶었어요. 그래서 체념하는 심정으로 경찰이 농성장 비닐도 못 치게 하는 폭력에 대해 말했어요. 그랬더니 '여기는 집회금지 구역입니다' 하고는 자리를 떴어요. 우리를 춥게 만드는 그들의 무관심과 냉대를 본 거지요."

그 후 한파인데도 농성자들에게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위해서인지 '임시한파대피소'라는 큰 현수막을 건 자동차를 갖다 놓았다. 추우면 거기서 자라고 했다. 최소한의 비닐 한 장 치게 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고 갖다 놓은 자동차는 '면피용'이다.

앞에도 옆에도 큼직하게 '임시한파대피소'라고 써놓은 차에는 아무도 가지 않았다. 밤새 빈 자동차의 시동을 켜놓아서 차는 시끄러운 소음과 공해를 내뿜었다. 해결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밤새 공회전하는 차와 문재인 정부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알려졌다시피 김진숙씨는 노조를 불온시하는 정권 때문에 국가정보기관에 끌려갔다가 무단결근을 사유로 해고된 사람이다. 한마디로 국가폭력이 해고의 원인이다. 그러나 촛불로 탄생한 정부도 여전히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김진숙씨의 복직은 국가폭력에 대한 국가와 기업의 반성을 의미한다. 김진숙 개인의 복직일 뿐 아니라 국가에 의해 노조 활동조차 탄압하던 독재정부의 만행을 바로 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더 이상 국가가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탄압하지 않고 보장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래서 복직이 더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현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

단식 31일이 되던 날, 희망뚜벅이행진을 하던 김진숙씨가 청와대 분수대 앞 단식농성장에 왔다. 김진숙씨와의 첫 대면이었는데, 어땠냐고 물었다. 그는 솔직한 사람이어서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암 투병 중에도 행진할 수밖에 없는 김진숙씨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고 했다.

사실 그도 20대 초반 원주에 있는 한 라면 공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한 전력이 있다고 말했다. 땀 흘리는 노동으로 살아가고 싶어 라면 공장에 취업한 것이었다. 정직한 돈을 벌고 싶었으나 회사는 대학을 다니다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괴롭혔다. 급기야 멀쩡하게 생산한 스프 봉지를 일부러 찢어서까지 조작하고, 징계위 한 번 열지 않고 1년도 안 돼서 그를 해고시켰다.

당시에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 데다 변호사도 없이 소송을 하다 보니 김진숙씨처럼 패소했다. 동료들에게 꼭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해고 싸움을 했으나 결국 현장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부채감이 김진숙 복직 투쟁에 담겨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빚과 빛의 전환, 그래서 그날 나는 따뜻하다고 느꼈던 것일까.

김진숙씨도 명예복직이더라도 동료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회사와 정부의 잘못으로 쫓겨났으나 어쩌면 동료들과 땀과 눈물 섞인 현장을 잊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농성 현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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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3일)로 무기한 단식 33일 차다. 그와 함께 단식을 하고 있는 정홍형 금속노조 부양지부 수석부지부장과 성미선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서영섭 신부, 송경동 시인이 서서히 말라가고 있다. 그들을 마르게 하는 건 단식 때문이 아니다. 이제 문재인 대통령이 답하고, 국회가 답하고, 이동걸 산업은행장이 답하고, 한진중공업 사측이 답해야 한다.

단식농성장에서 일어서는 김진숙 씨에게 그는 광장에서 다시 만나자고 했다. 그러마하는 답을 받았다. 그때까지 그 둘은 서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싸울 것이다. 이렇게 싸우는 우리들이기에 우리는 이미 승리한 싸움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명숙씨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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