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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창현 변호사
  조창현 변호사
ⓒ 최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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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님! 이의있습니다!"라고 외치는 말 속에는 긴장감과 더불어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있어 왠지 진중해 보인다. 22일 만난 조창현 변호사가 그랬다.

"많은 사람이 아직 변호사를 만나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마치 큰 사고를 당해야만 만나는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언제든 따뜻한 차 한잔하러 오셔도 됩니다"라고 말하는 미소 속에 부드러운 눈빛이 참 따듯했다.

서산과 당진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면서 바쁜 와중에도 매년 중·고등학교 모교를 찾아 변호사에 대한 진로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 서산구치소와 홍성교도소를 방문하여 재소자들의 재사회에 대한 자문과 신체장애인복지회 서산시지부 자문위원, 마을변호사 등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언제든 달려가는 조 변호사를 날 좋은 늦은 오후에 만났다.

- 알고 보니 조규선 전 서산시장이 부친이시다. 일찍부터 부친의 출마로 성장 과정이 남달랐을 텐데?
"정치인을 아버지로 둔 덕분에 나는 늘 아버지의 선거 일정에 맞춰서 생활했던 것 같다. 언제부턴가 내 입에서는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무수히 반복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버지 좀 뽑아주세요". 선거법상 배우자와 직계존비속만이 후보자와 동행을 하지 않아도 선거운동 기간에 명함을 돌릴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우리 아버지는 선거에 출마하기 시작하셨고 우리 가족은 익숙하게 아버지를 도우려고 발 벗고 나섰다. 선거운동 기간마다 마을회관이나 행사장을 돌면서 선거운동을 했다. 그나마도 나는 군대에 가고, 시험공부를 오래 했기에 선거와는 잠시 떨어져 있었던 기간이 길었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정말 지근에서 아버지의 선거를 돕느라 힘든 일을 수도 없이 겪었을 것이다.

특히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선거 결과에 따라 평생을 마음 졸이며 사셨던 분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영향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다가왔었던 같다. 서령고에 입학하던 때에 아버지께서 처음 서산시장에 당선되셨다. 당시 시장이 되면 시청 뒤쪽에 있는 관사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일단 통학 거리가 가까워져 편하게 등하교를 할 수 있어 좋았다. 그뿐만 아니라 뭔가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학업에 전적으로 매진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반에서 반장을 도맡아 하기도 했다."
 
서령고 재학 시절 모습
 서령고 재학 시절 모습
ⓒ 조창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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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직업이 변호사인 걸 보면 학창시절부터 꿈꿔왔던 것 같은데?
"천만의 말씀이다. 아버지의 선거일을 도우며 정치를 꿈꿔왔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에는 정치외교학과를 진학하기 위해 공부를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정치외교학과를 지원한 대학은 모두 떨어지고, 법학과를 지원한 한양대만 합격하여 의도치 않게 법을 전공하게 됐다.

처음 입학하자마자 생소한 법률 용어들로 수업이 진행되고, 뭔가 어수선한 학과 분위기 때문에 잠시나마 법대에 온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법학이라는 학문이 실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돼 있고, 인풋 대비 아웃풋이 확실하게 나오는 학문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 한때 공항에서 근무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법을 공부하다 어떻게 공항에 들어가게 됐나?
"20대 호기 어린 젊은 시절에는 대부분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판·검사나 변호사를 꿈꾸지 않나. 나 또한 그랬다. 사법고시를 준비할 때에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화려하고 멋진 주인공이 되기 위해 무작정 신림동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다.

당시 한양대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친구와 같은 건물에 거주했는데 우리는 서로 "독서실에서 제일 일찍 가고, 늦게 집에 가는 고시생이 되자"고 약속을 했고, 실제로 건물주 할아버지도 "너네들은 무조건 시험에 합격할 거다"고 하셨다. 그만큼 우리는 2년간 정말 미친 듯이 공부에 매달렸다. 하지만 고시의 벽은 높았다. 낙방의 쓴맛을 미련 없이 버리고 대학교에 복학하여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취업 준비를 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을 마친 28세 약간은 늦은 나이에 한진 계열인 한국공항(주)에 취직하여 인천공항으로 1년간 출퇴근을 했다."
 
한양대학교 졸업식때 부모님과 함께
 한양대학교 졸업식때 부모님과 함께
ⓒ 조창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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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변호사가 되려고 했던 계기는 따로 있나?
"서른도 되기 전에 정년 이후의 삶이 고민되어 사표를 쓰고 로스쿨을 가게 됐다면 믿으실지 모르겠다.

내가 다녔던 한국공항(주)은 항공사와 마찬가지로 지상조업사들도 독과점 체제로 운영이 되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업무량이 낮고, 대부분 정년 보장이 되는 좋은 회사였다.

그러던 중 정년퇴직을 준비하고 계시는 당시 부장님이 신입사원인 나를 유난히 이뻐해 주셔서 우리는 자주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날 인생에 관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 부장님이 정년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것을 보게 됐다.

문득, '나도 60세에는 뭐 먹고 살지?'라는 물음에 확실한 대안이 없었고 '평생 가져갈 수 있는 자격증을 하나 취득한다면 죽을 때까지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나는 과감하게 낙엽이 물들어가는 10월, 정년퇴직하시는 부장님과 동시에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바로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하여 로스쿨에 진학을 준비했다."

- 로스쿨에 다녔던 이야기를 해달라.
"현재 판·검사와 변호사가 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로스쿨 진학밖에 없으므로 주위 많은 분이 로스쿨에 대하여 문의를 해온다.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4년제 학사과정을 마친 다음, 석사과정인 3년간의 로스쿨 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그리고 매년 1월에 실시되는 변호사 시험을 반드시 합격해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사립대학교 로스쿨의 경우 한 학기 학비만 천만 원이 넘는다. 나는 다행히도 연고지이며, 국립대인 충남대학교 로스쿨에 입학 하게 되어, 비교적 저렴한 학비를 내면서 생활하게 됐다.

하지만 아무리 저렴한 금액일지라도 로스쿨을 다닐 당시에는 집으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논술학원에서 첨삭 강사 업무를 병행하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한국장학재단에서 지원해주는 학비 및 생활비 대출을 받아가면서 공부를 했다. 하지만 비싼 책값과 별도의 학원 강의는 그 돈으론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누나가 영어교습소에서 번 돈을 매달 보내주었다. 어려운 형편임에도 동생을 챙겨준 누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로스쿨 재학시절 축구동아리 활동 사진
 로스쿨 재학시절 축구동아리 활동 사진
ⓒ 조창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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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쿨 재학 당시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내게는 참 고마운 친구가 있다. 대학 동기인 공정거래위원회 이기성 변호사다. 당시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는 마지막 해에는 정말 어려워 30만 원 정도의 월세를 낼 돈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눈에 띈 것이 우유배달이었다. 최소 공부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과 중 아르바이트는 불가능했고, 대신 새벽 시간을 짬짬이 이용하여 배달업무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배달 인수인계를 받기 위하여 대전에 있는 모 아파트에서 우유배달 선임자를 기다렸다. 하지만 선임자가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그날은 어쩔 수 없이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에 친구에게 별생각 없이 "배달업무를 못 하게 됐다"고 이야기를 하자, 당시 자신도 돈이 없으면서 신용대출을 받아서 흔쾌히 목돈을 빌려주었다. 그 돈을 받아들자 가슴이 먹먹했다. 친구를 봐서라도 반드시 합격하자고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그길로 아르바이트를 모두 제쳐두고 공부에만 매진했고, 이듬해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변호사 업무를 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것이 바로 고마운 내 친구에게 돈을 갚은 것이다. 우리는 그날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 변호사로서 보람 있었던 일은?
"가장 최근 사건이다. 당진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청소년들에게 술을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됐다. 청소년들이 위조신분증을 제시하였기 때문에 사장님은 당연히 성인인 줄 알고 술을 제공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당시 CCTV가 없었고, 청소년들은 모두 위조신분증을 낸 적이 없었다고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유죄가 선고될 상황이었다. 청소년 보호법 위반은 벌금이 50만 원에 불과하지만, 사장님은 이로 인하여 1달간 영업정지를 해야 하는, 나아가 폐업의 위기가 달린 매우 중대한 사안이었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청소년들 4명을 상대로 모두 증인신문을 하였지만, 학생들은 법정에서조차 "사장님이 그냥 술을 주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학생들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기에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 주범인 A학생의 진술을 기준으로 B·C학생들에게 압박을 가하자, 결국에는 "지갑 속에 위조신분증이 있었다"는 내용을 실토받을 수 있었다. 결국 무죄가 선고되었고, 사장님께서는 다행스럽게도 영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판결 선고 뒤에 사장님은 "코로나19 때문에 정말 죽을 것 같이 힘들었는데, 영업정지라도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울먹였고, 이러한 사장님을 보면서 변호사로서 작은 일이지만, 미약하게나마 도와드릴 수 있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SCC(서산 청년 소상공인 모임) 강의 사진
 SCC(서산 청년 소상공인 모임) 강의 사진
ⓒ 조창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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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일을 하다 보면 황당한 사건들도 가끔 있을텐데?
"친구에게 걸려온 보이스피싱 사건이다. 어느 날 서산에서 식당 영업을 하는 친구가 울먹이면서 전화가 왔었다. 이유인즉슨, 자신이 기존 대출이자보다 금리가 더 저렴한 은행으로 대체상환을 하였는데, 원래 대출을 진행했던 은행에서 계약위반행위라고 하면서 대출금 5천만 원과 위약금 6백만 원을 내야 한다는 말을 했단다. 그것도 오후 3시까지 그 은행직원한테 돈을 줘야 하니까 지금 주러 가고 있다며 말이다.

내 입에서는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라는 놀란 음성과 함께 '아차 보이스피싱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동안 보이스피싱 범죄 재판을 워낙 많이 진행해 보았기 때문에 확신하곤 "잠시 돈을 주는 것을 멈추고, 얼른 금감원 대표번호로 전화해서 물어보라"며 번호를 일러줬다. 잠시 후, 전화는 떨리는 음성으로 "완전히 망했다"며 "금감원 직원 또한 실제로 대출 접수가 된 것이고,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는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그때서부터 나조차 살짝 혼란스러웠지만 친구를 안심시키며 "내가 직접 금감원에 문의 해보겠다"라고 하고 전화를 걸었다. 웬걸, 금감원에서는 내게 "명백한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답변을 해주었다.

당시 친구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보내준 어플을 깔았기 때문에 친구 휴대폰에서는 어떠한 번호, 심지어 112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조직이 전화를 당겨 받을 수 있게 덫을 쉬워 놓은 것이었다. 조직들은 수사기관을 사칭하여 피해자를 속이는 수법이었다. 평소 보이스피싱 범죄를 많이 다뤄봤었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속을 뻔했던 이 사건, 더 이상 친구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는 유명한 변호사, 돈을 많이 버는 변호사를 꿈꾸지 않는다. 대신 오래 일하면서 한 건 한 건에 최선을 다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 지금 맡은 사건들 또한 의뢰인들에게는 삶의 전부가 걸려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다.

일을 하다 보면 하루에 6~7건의 재판이 있을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고도의 집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체력을 증진하기 위해 꾸준한 몸 관리와 함께, 한번이라도 더 재판기록을 읽고 들어가 의뢰인들의 의견을 최대한 재판부에 전달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청소년 상대 선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사기행각이 극성을 피우고 있다. 벌써부터 학생들의 피해가 만만치 않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사기범죄에 노출된 청소년들에게 실생활과 관련한 법과, 성인이 되면 겪게 될 법적인 문제에 관하여 미리 고민해볼 수 있는 강좌를 개설하고 싶다. 그리고 임금을 받지 못하는 직장인들, 억울하게 경찰 조사를 받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법은 항상 우리 일상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법적 지식을 통해 더는 억울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서산시대에도 실립니다.


태그:#조창현 변호사 , #유진범 조창현 법률사무소, #재판장님 이의있습니다, #따뜻한 변호사 , #오래가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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