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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잎파리와 사료를 먹을 때도 큰 다툼이 없다.
그러나 수탉의 권위는 확고하여 잘 때도 둥지에서 혼자 잔다.
▲ 수탉 한 마리와 암탉 네 마리의 가족 배추 잎파리와 사료를 먹을 때도 큰 다툼이 없다. 그러나 수탉의 권위는 확고하여 잘 때도 둥지에서 혼자 잔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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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새벽에도 수탉은 울었고 새해 첫날에도 울었으며 오늘도 울었다. 우리 수탉이 울기 시작한 후 비로소 동네의 수탉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한밤처럼 깜깜한 새벽에 나가 봤더니 수백 미터 떨어진 동네의 수탉 우는 소리가 들렸다.

개는 가끔 짖고 수탉은 자주 울었다. 유독 오늘만 우는 것은 아닐진대, 개를 걱정하면 개 짖는 소리가, 닭을 염려하면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 모양이었다.

개가 짖는 이유는 명확하다. 낯설고 위협적인 기색을 느끼거나 쫓아버려야 할 못된 놈의 기척이 있으면 짖는다. 배가 고파서 우는 어린 애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가끔, 먼 달을 쳐다보며 아주 오래된 늑대의 피가 들끓어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때는 목을 빼고 슬프게 길게 운다. "우~~~우~~~"

반면에 수탉이 우는 이유는 아직 알지 못한다. 해가 지자마자 둥지에 들어가 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그 후는 배추나 시래기를 줘도 내려와 먹지 않고 잠만 잔다. 단지 밤이 길어서 낮을 재촉하는 조바심일까, 아니면 수탉의 권위를 보이며 허세를 부리지 않으면 많은 암탉을 거느릴 수 없다는 초조함 때문일까. 

누에 뽕잎 갉아 먹는 소리
 
규칙적인 몽돌 소리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깊히 잠들게 하는 자장가이기도 하다.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와 함께 대한민국 좋은 소리 100선에 선정된 바가 있다.
▲ 망치 해변의 몽돌 규칙적인 몽돌 소리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깊히 잠들게 하는 자장가이기도 하다. 누에가 뽕잎 갉아 먹는 소리와 함께 대한민국 좋은 소리 100선에 선정된 바가 있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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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에는 몽돌해변으로 유명한 해변들이 제법 있다. 학동흑진주몽돌해변과 망치몽돌해변도 그중에 속한다. 파도에 깎여 동글동글하고 매끄러운 돌을 몽돌이라고 부르는데 일반 잡석이 몽돌이 되는 데는 장구한 세월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적당히 깊은 수심과 몇 번의 태풍만 있으면 된다고 어부들은 말했다.

파도가 뒤집히며 돌을 가져가면 다음 파도가 그 돌을 서로 비비고 그다음 파도가 다시 해변으로 밀어 보내면 그다음 다음 파도가 다시 그 돌을 가져가는 식이다. 몽돌이 규칙적으로 으르렁 소리를 내며 몸을 비빌 때, 갯가 마을의 노인네들은 깊이 잠든다. 간혹, 우루룽거리며 큰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나는 시끄러운 밤에는 아침 일찍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갈 일이 없기에 더 깊이 자게 된다.

'몽돌 구르는 소리'는 우리나라 좋은 소리 100선에 선정된 바 있는데, 닭을 키우면서 '좋은 소리 100선'에 속한 또 다른 소리를 듣는다. 바로 '누에 뽕잎 갉아 먹는 소리'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소리를 닮은 '닭 배춧잎 쪼아 먹는 소리'다. 그 사각거리는 소리는 마른 풀잎에 떨어지는 소나기 소리를 닮았다. 그러나 닭이 배추를 쪼아 먹는 소리는 뽕잎 갉아 먹는 소리보다 더 힘차서 굵은 물방울이 한꺼번에 떨어지는 한여름의 소나기 소리다.

특히 배추 쪼아 먹는 소리는 열무나 상추를 쪼아 먹는 소리보다 야무지다. 또한, 퍽퍽 거리며 먹는 모습은 옹골지고 맛깔스러워서 보는 나도 침이 고여 아가미가 아플 지경이다. 반면에 바싹 마른 짚을 쪼는 소리는 빈곤하고 부박하여 안쓰럽다. 겨울의 닭 모이가 겨울 산처럼 메마르고 가벼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순하고 헐거운 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날이 밝지 않은 이른 새벽에 거실의 불을 켜면 잠시 후에 예외 없이 수탉이 울기 시작하는데, 도대체 조심성이란 찾아볼 수 없다. 저렇게 버르장머리가 없는 놈은 처음 본다. 나는 그 수탉의 교감 신호를 해독하지 못하기에 불안하고 안절부절못하며 또한 궁금하다.

저렇게 무례하게 울어대면 암탉들은 어떻게 자라는 것인지, 혹은 암탉들도 같이 깨어 있는 건지, 잠을 깼다면 암탉들이 짜증을 부리지는 않는지, 그리고 수탉의 저런 자신감은 마땅한지를 생각했다.

그러나 밖이 춥고 어두워서 나가 확인하지는 않는다. 봄날이 와서 새벽이 일찍 깨면 그때 나가 보겠다. 발소리를 죽여 아내가 자는 침대 한켠으로 도둑고양이처럼 다시 기어들어 갈 때, 나는 수탉이 부러워서 더 미워진다. "또 운다 울어. 그놈의 수탉, 더럽게 크게 짖네……."

암탉이 알을 낳는 일은 아이 낳는 것과 같이 거룩하다
 
암탉이 알을 낳을 때는 머리를 산란 둥지에 박고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이 될 때도 있을 정도다.
▲ 산란 중인 암탉 암탉이 알을 낳을 때는 머리를 산란 둥지에 박고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는 일이 생긴 게 아닌지 걱정이 될 때도 있을 정도다.
ⓒ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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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빨리 나와 봐."

아침에 반사용 거울(자칭 수동식 태양광 스마트 시스템)각도를 맞추러 나갔다가
닭장을 들여다보니 암탉 한 마리가 짚 둥지에 미동도 없이 고개를 박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봐도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걸 봐서 사태가 생겼다는 걸 직감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말을 더듬거리며 이 비상한 사태를 아내에게 설명했더니 "혹시 달걀 낳는 거 아니유?"라고 태평스럽게 말했다.

"참내, 움직이지를 않는다니까."

아내는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숨 쉬고 있는 거 안 보이요. 고마 이리 오소. 괜히 방해하지 말고. 사람이나 닭이나 아이 낳고 알 낳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요."
"내가 노안이라서 잘못 봤네. 난 '보리' 똥 치우려 가 봐야 해서 인제 그만..."


사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지만 닭이 알을 낳는 모습을 본 적도 없거니와, 저렇게 온몸으로 알을 낳는 줄을 몰랐다.

덧붙이는 글 | 거제도 갯가에 엎드려 살면서 백봉 오골계 다섯 마리를 키우는 은퇴한 백수입니다.
생전 처음 키워보는 닭과 씨름하면서 생긴 이야기가 코로나로 지친 일상에 작은 웃음이라도 주면 좋겠습니다.


태그:#양계 일지, #거제도 와현마을, #백봉오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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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월에 퇴직한 후 백수이나, 아내의 무급보좌관역을 자청하여 껌딱지처럼 붙어 다님. 가끔 밴드나 페이스북에 일상적인 글을 올림.

이 기자의 최신기사대체, 왜, 알을 안 낳는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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