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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리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거리홈리스이 종이 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다.
 연일 혹한의 추위에 함박눈까지 내리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서울역 지하도에서 거리홈리스이 종이 상자를 이부자리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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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역 노숙인 응급잠자리 집단감염 사태에 언론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일 서울시 브리핑에 따르면, 서울역 응급잠자리 관련 코로나19 확진자는 64명으로 늘었다. 홈리스 내 집단감염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에 대한 진단과 대책이 시급하지만, 언론과 방역·정책 당국은 감염된 홈리스의 소재 파악에만 일차적으로 관심을 두고 있다.

예견된 집단감염 사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던 2020년 4월, UN 주거권특별보고관이 '홈리스 보호를 위한 코로나19 지침'을 발표했다. 특별보고관은 지침의 서두에서 "전염병 상황에서 적정 주거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잠재적 사형 선고"라고 지적하면서 "적정한 주거, 음식 등은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을 보존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비상시에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홈리스의 상황을 잘 드러낸 지침이었기에, 서울시가 이 지침에 따라 적절한 홈리스 정책을 마련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서울시는 코로나19가 확산되던 시기마다 '최대한 집에 머물 것'을 권장했을 뿐, 정작 집이 없거나 집단밀집시설을 이용해야만 하는 홈리스에 관한 대책은 제대로 마련하지 않았다. '노숙인 등'을 위한 무료급식장의 아침 식사를 빼버렸고, 예산 부족을 이유로 '서울시 노숙인 공공일자리'의 근로조건을 악화하려 시도했다.

그렇게 1년을 허비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스마트복지'의 방향을 모색한다던 서울시는 코로나19로부터 홈리스를 보호할 예산 마련에 있어서는 스마트하지 않은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거리 홈리스에게 필요한 것
 
코로나19 확진자 1인이 격리된 보건복지부 자활사업 ‘특화자활’ 운영사무실. 바로 옆에 격리된 밀접접촉자에 따르면 4인이 동일집단격리돼 있다. 3인은 음성 판정이 나 다른 곳으로 가고 양성판정된 1인이 현재 격리돼 있다고 한다. 2021년 01월 25일 촬영.
 코로나19 확진자 1인이 격리된 보건복지부 자활사업 ‘특화자활’ 운영사무실. 바로 옆에 격리된 밀접접촉자에 따르면 4인이 동일집단격리돼 있다. 3인은 음성 판정이 나 다른 곳으로 가고 양성판정된 1인이 현재 격리돼 있다고 한다. 2021년 01월 25일 촬영.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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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화자활사무실 옆 컨테이너 공간.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거리홈리스 1인이 격리 중이다. 그에 따르면, 도시락과 물이 공급되고 있으나 소변은 밖에 있는 플라스틱 통을 쓴다. 대변은 실무자 대동 희망지원센터를 이용해야하나 일을 시키는 것 같아 가능하면 도시락을 조금만 먹는다고 한다. 2021년 01월 25일 촬영.
 특화자활사무실 옆 컨테이너 공간.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로 분류된 거리홈리스 1인이 격리 중이다. 그에 따르면, 도시락과 물이 공급되고 있으나 소변은 밖에 있는 플라스틱 통을 쓴다. 대변은 실무자 대동 희망지원센터를 이용해야하나 일을 시키는 것 같아 가능하면 도시락을 조금만 먹는다고 한다. 2021년 01월 25일 촬영.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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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응급잠자리 확진자 발생 이후 감염자가 점차 늘어나자 서울시는 지난 1월 25일 서울역 일대 응급잠자리 3곳을 폐쇄했다. 그런데 1월 30일, 이 세 곳을 다시 열고 운영을 시작했다. 현재의 응급잠자리가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시설 운영을 강행할 태세다.

홈리스행동과 빈곤사회연대 등 반(反)빈곤 단체들은 시설 운영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지만, 서울시는 홈리스 중 코로나19 검사 결과 '음성'인 이들만 이용하도록 하고, 매주 검사를 받게 할 것이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항변한다.

정말 안전하다고 단정해도 괜찮은 걸까. 검사 결과 '음성'이 나오더라도 잠복 상태에 있는 이들이 이용할 위험이 있다. 또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거리홈리스는 거리에 그대로 머물러야 한다. 검사를 하는 것만으로 집단감염 확산을 막는 효과를 기대할 순 없다는 이야기다.
 
코로나 검사 결과 확인서. 확인서가 있어야만 다수인 거주 시설 이용과 공공/민간 무료급식을 이용할 수 있고, 일주일마다 갱신해야 한다.
 코로나 검사 결과 확인서. 확인서가 있어야만 다수인 거주 시설 이용과 공공/민간 무료급식을 이용할 수 있고, 일주일마다 갱신해야 한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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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집단감염 확산세를 막기 위한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앞서 언급한 UN주거권특별보고관의 '홈리스 보호를 위한 코로나19 지침'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지침은 홈리스 개인에게 다양한 복지서비스에 접근할 개별 주거가 주어져야만 코로나19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물리적 거리 두기, 자가 격리, 검역 및 기타 보건 권장 사항을 준수할 수 있도록 응급 숙소를 보장해야 한다. 응급 숙소 거주자는 사생활을 보장받고, 물·위생, 식품, 사회적·정신적 지원, 보건 서비스, 코로나19 검사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 또한 가능하고 적절하다면 정부는 장·단기 주택을 구매해 홈리스에게 제공해야 한다."

현 상황에서 시급한 대책으로 제시돼야 하는 건 홈리스에게 독립적인 위생설비를 갖춘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환기가 가능하고 개별 화장실이 갖춰진 방이 제공돼야 한다. 해외 국가들에서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시 소유의 건물을 이용하거나 민간 숙박시설을 임대해 홈리스에게 제공하는 방안이 빠르게 시행돼야 한다.

기존 사업을 확대 시행하는 방법도 있다. 2월 1일부로 각 운영기관에 교부된 '노숙인 임시주거지원' 사업 예산을 확대 변경해 기존보다 나은 거처를 홈리스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일자리, 급식, 의료, 상담 등 사례관리가 지속 이뤄져야 함은 물론이다.

거리 홈리스 주거권 보장이 백신

서울시는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단밀집시설에 해당하는 응급잠자리 중심의 동절기 대책을 밀어붙였다. 홈리스 당사자들의 상황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시민사회와 국제사회의 경고를 무시한 서울시의 불통 행정과 일방적인 정책결정은 결국 집단감염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나타났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서울시는 시설입소 중심의 홈리스 정책을 개선해나갈 의지를 보여야 한다. 코로나19 치료가 어렵다고 쉬이 포기할 수 없는 것처럼, 홈리스에게 독립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응급잠자리 제공보다 고려할 것들이 많다 해도 포기해선 안 될 일이다.

주거권 침해 상황에 내몰린 홈리스의 삶이 계속되는 한, 바이러스 확산은 멈출 수 없다. 홈리스들의 열악한 주거상태가 코로나19의 숙주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적절한 주거대책을 마련해 감염 위협에 내몰린 홈리스를 보호해야 한다. 이것만이 정책실패의 책임을 그나마 덜 수 있는 길임을 서울시가 깨닫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입니다.


태그:#홈리스행동, #서울역, #홈리스,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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