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최근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다가 독특한 이름을 발견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파이어족'이라고 칭한 것이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단어라 굉장히 강한 충격을 받았다. 보보스족, 여피족 같은 단어는 들어봤지만 파이어족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름 생각을 해보니, '파이어(fire)'라는 단어는 비교적 간단한 영단어니까 아마 합성어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fire'의 뜻 중 하나는 해고를 뜻하므로 해고에 대비하는 사람들은 아닐까? 소비를 최대한 줄여서 자동차와 식비의 비중을 줄이고, 저축액을 크게 높여서 검소하게 사는 사람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알아보니 파이어족은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저축액을 크게 높이는 사람들이 맞았다. 하지만 이들이 원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실직으로 인한 위험 대비가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경제적 자유'다.
 
 파이어족이온다
 파이어족이온다
ⓒ 스콧리킨스

관련사진보기

 
'파이어족이 온다'는 파이어족에 대해 전혀 몰랐던 저자가 파이어를 알게 되고 파이어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미국 서부에서 살고 있는 맞벌이 부부로, 파이어의 길을 걷기로 스스로 선택하고 파이어족에 대한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파이어는 'Financial Independence'와 'Retire Early'의 앞 글자를 합친 단어다. 경제적 자유와 조기 은퇴를 동시에 노리는 사람들을 뜻한다. 경제적 자유는 근로 소득이 아닌 다른 소득으로 생활을 꾸리는 전환을 뜻하고, 조기 은퇴는 일반적인 정년 퇴직이 아닌, 수십 년 앞서 당겨서 이룬 퇴직을 뜻한다.

자신의 일터와 일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일 자체에 엄청난 열정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FIRE'는 누구나 꿈꿔볼 만한 매혹적인 단어다. 저자는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하면서 인생을 가꾸는 일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한 번 뿐인 삶이지 않은가.

책에 따르면, 'FIRE'는 그냥 이룰 수 있는 목표는 아니고 노력이 필요하다. 'FIRE'를 꿈꾸는 사람은 일단 소비를 크게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이 책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책은 미국인들 대부분이 가계 내에서 소비 비중을 크게 잡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저자 역시 소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저자의 부부는 맞벌이로 고소득자임에도 불구하고 소득의 대부분을 소비로 썼다고 한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넓은 집, 가족끼리 여행을 다니기에 좋은 차, 어떤 스트레스라도 잊게 만들어 주는 맛있는 음식을 모두 가지고 싶어했다.

하지만 저자는 'FIRE'의 꿈을 가지게 되고 자신의 삶을 반성했다. 그는 아내와의 협의를 통해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집을 구매할 때 완벽한 집이 아니어도 만족하기로 했고, 차는 될 수 있으면 저렴한 것으로 바꾸고 운송수단으로서의 가치에 주목했다. 식비 역시 크게 줄이고 가정에서 식사하기로 마음먹었다. 꿈꾸던 집 대신 꿈꾸던 생활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저자 가족들은 소비를 줄였고, 저축액을 늘렸다. 그들은 이렇게 늘어난 저축액을 인덱스 펀드 투자에 운용하기로 했다. 인덱스 펀드는 특정한 주가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다. 펀드매니저에 잦은 관리가 필요하지 않고, 수수료가 매우 저렴한 것이 특징이다. 개별 종목 주식을 사거나 위험한 펀드에 가입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운용법을 택하기로 한 것이다.

저자 부부는 다른 파이어족을 만나서 정보를 교류하고, 파이어족으로서 살기 위한 계획을 챙기면서 살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바뀐 생활양식을 바탕으로, 조기 은퇴를 시도하고 이후에는 자신들이 진정 원하던 삶을 살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확실히 파이어족은 하나의 열풍이다. 국내 대형 포털에도 파이어족 카페가 생겨나고 있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초반부에 굉장한 흥미를 느꼈다. 돈 때문에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경제적 자유란 꿈같은 단어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자 'FIRE'는 성취하기 어렵고 불안정성이 있는 계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돈이다. 일단 파이어족이 되려면 저축액이 있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이라면 저축의 상당 부분을 모아도 저축액이 늘어나지 않는다.

근로 형태가 불안정한 사람들은 자신이 모은 저축액을 비상시에 써야 하는 일이 많기에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만큼의 자금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이 생애에서 가장 소득이 높을 연령대에 도달하기 전에 은퇴해서 높은 소득을 포기하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할 단점이다.

저자 역시 이를 염두에 두었는지 고연봉자만이 파이어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 책은 평범한 사람이 저축액을 드라마틱하게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불안정성도 하나의 문제다. 파이어족의 자금 운용 방법 중 하나는 인덱스 펀드, 즉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를 이용하는 것이다. 파이어족의 은퇴 연령을 감안하면 사실 파이어족이 자신의 주력 직업의 소득 없이 살아야 하는 기간은 적게는 30년에서 크게는 40년이 넘을 수 있다. 여성이고 비교적 일찍 은퇴한다면 이보다도 더 길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인덱스 펀드가 일반 주식 구매보다 안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수십 여년의 시간을 볼 때 걱정 없이 살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촉발된 금융 위기, 닷컴 버블 등은 사람들의 심장을 철렁하게 하는 끔찍한 사건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 없이 지내는 것은 일상을 재난으로 몰고 갈 이유가 된다고 본다.

파이어족의 생활 태도에는 크게 공감한다.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필요한 것만 사고, 자신의 운용자금을 불안하지 않게 쓰는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삶은 배워야 한다고 본다. 그렇지만 그런 삶에도 불구하고 은퇴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인생은 참 길다.

파이어족이 온다 - 금융위기 후 전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은 라이프스타일 혁명

스콧 리킨스 (지은이), 박은지 (옮긴이), 지식노마드(2019)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