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 3주년을 맞아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납니다. 출전했던 선수들과 그해 겨울을 평창에서 보낸 이들을 만나 평창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습니다. '다시, 나의 평창'의 두 번째 주인공은 평창 올림픽 때 '여자 봅슬레이 첫 출전'을 이뤘던 봅슬레이 김유란 파일럿입니다.[기자말]
 이번 시즌 여자 봅슬레이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활약했던 김유란 선수

이번 시즌 여자 봅슬레이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활약했던 김유란 선수 ⓒ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2018년 2월 21일 평창 슬라이딩 센터. 이날 열린 여자 봅슬레이 첫 경기에서 김유란 선수는 파일럿이 돼 팀을 이끌었다. 1차 시기 15위, 2차 시기에서는 13위의 성적을 기록한 '김유란 조'는 3차, 4차 시기를 합쳐 최종 14위에 올랐다. 한국 여자 봅슬레이 선수들이 첫 올림픽에서 거둔 값진 성과였다. 멀리 강릉에서는 컬링 열풍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평창 올림픽 이후 김유란 선수는 모노봅(혼자 봅슬레이를 타는 종목)을 병행했다. 코로나19 탓에 지난 1월 중순 이번 시즌 처음으로 출전한 독일 쾨닉세 월드시리즈(BMW IBSF 7차 월드컵)에서 그는 4위에 올랐다. 이날 그의 경기 장면은 케이블 스포츠 채널을 통해 생중계 되기도 했다. 올림픽이 아닌 대회의 여자 봅슬레이 경기를 생중계한 건 사상 처음이다. 

올림픽 이후 3년이 지난 지금, 김유란 선수가 바라보는 베이징 올림픽, 그리고 평창은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 정식 종목이 되는 모노봅과 여자 봅슬레이에서 메달을 꿈꾸는 김유란 선수를 지난 9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모노봅 중계 빨리 이루어져서 기뻐요"

김유란 선수는 인터뷰 당시 독일 알텐베르크에서 시즌 막바지 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모노봅 경기가 한국에서 중계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놀랐다"며 "중계가 되더라도 최소한 세계선수권에서 잘 해야 중계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라며 기뻐했다.

"중계방송이 나간 후 3년 정도 연락이 오지 않았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을 정도"라며 웃은 김 선수는 "여자 봅슬레이, 나아가 모노봅이라는 종목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김유란 선수가 최근 호성적을 낸 모노봅은 어떤 종목일까. '한 명이 달리는 봅슬레이'인 모노봅은 혼자서 브레이크맨과 파일럿 역할을 모두 해야 한다. 원래 청소년과 장애인 봅슬레이에서 쓰이다가 여자 봅슬레이의 저변 확대를 위해 2022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김 선수는 "파일럿이 모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며 "2인승 봅슬레이에 비해 무게도 가벼워서 조종이 예민하다. 조금만 세게 조종해도 경로가 확 틀어져 버리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도 벌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러 부분에 중점을 둬야 하기 때문에 적응에 시간이 필요한 종목"이라고 부연설명했다.

"꿈의 무대였던 평창 올림픽, 후회 없었다"

김유란 선수는 원래 육상 선수였다. 하지만 운동을 하는 도중 슬럼프가 왔고 대학 졸업 후에는 운동을 그만두려고 했단다. 그는 "고등학교 당시 코치님이 '봅슬레이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봅슬레이. 처음에는 무서웠다. 헬멧 고정하는 끈조차 못 채울 정도로 손을 벌벌 떠는가 하면, 속도가 무서워 울면서 봅슬레이를 타곤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어려움은 몸의 근육을 키우는 것이었다. 그는 "벌크업이 필요했기에 20kg이나 찌워야 했다. 살찌우는 게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힘들었다"라고 고백했다. 

3년을 훈련하고 올림픽으로 향했지만,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는 그는 "자칫하면 올림픽에 못 나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라며 "훈련을 하면서도 막연하게 올림픽이라는 무대가 멀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땅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다. 첫날 열렸던 1차, 2차 시기에는 예상보다 꽤 좋은 성적이 나왔다. 현실적으로는 13위라는 목표를 세웠지만 어쩌면 Top 10 안에도 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했단다. '김유란 조'는 다음날 3차·4차 시기에서 총합 14위로 올림픽을 마무리했다.

"경험이 부족한 탓에 실수도 많았다. 그래서 두 계단이 밀렸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었다. 마지막 4차 시기에서 피니시 라인을 통과하는데, '꿈의 무대'라는 올림픽을 무사히 마쳤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그저 벅찼다. 지금도 그때 경기를 다시 영상으로 보면 올림픽 때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곤 한다. 그저 매 경기 최선을 다했기에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평창은 김유란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김유란 선수.

김유란 선수. ⓒ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김 선수에게 있어 올림픽은 한층 더 성숙해지는 계기가 됐다. 김 선수는 "평창 올림픽 전에는 '아무도 기대를 하지 않지만, 막연하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욕심을 부렸다"며 "지금은 심적으로 성숙해졌음을 느낀다"고 말했다.

올림픽 때 동료들의 선전도 김유란 선수를 자극하는 원동력이었다. 윤성빈 선수의 스켈레톤 금메달, '원윤종·전정린·서영우·김동현' 조의 봅슬레이 은메달이 그랬다. 김유란 선수는 "나도 저만큼 올라가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생겼다"며 "원윤종 오빠나 석영진 오빠도 '어떤 상황에서는 이렇게 대처해야 한다'라면서 주행 면에서 도움을 많이 주시곤 한다"며 웃었다.

동갑내기 선수들도 그에게 힘이 된다. '석영진 조'의 이정민 선수, 여자 스켈레톤 김은지 선수가 그렇다. 김유란 선수는 '92 라인'이라며 그들을 소개했다. 그는 "긍정적인 에너지 덕분에 큰 도움을 받곤 한다"면서 "혹여나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반대로 '잘 될 거야'라고 이야기를 해 준다"고 말했다. 

베이징 올림픽의 목표 "나 자신 믿고 타야죠"
 
 이번 시즌 인스부르크 모노봅 월드시리즈 경기에서, 주행 시작에 앞서 준비하는 김유란 선수.

이번 시즌 인스부르크 모노봅 월드시리즈 경기에서, 주행 시작에 앞서 준비하는 김유란 선수. ⓒ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제공

 
김유란 선수의 장점은 주행력에 있다. 무엇보다 코스를 안정적으로 빠져나가는 능력이 뛰어나다. SBS 이세중 해설위원도 지난 모노봅 월드시리즈 중계 당시 그 부분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선수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들 덕분이다"라며 "근거 없는 자신감도 한몫하는 것 같다, 나 자신을 믿고, 겁 없이 트랙을 타곤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들어오는 대로 허리 부상 회복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아직 다른 선수들에 비해 약하다고 느끼는 스타트 훈련을 중점적으로 해 스타팅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김 선수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대비해 얼음이 있는 슬라이딩 센터에서 계속 훈련했으면 한다"라고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그의 각오를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김 선수는 "무조건 메달이다. 모노봅도, 2인승 봅슬레이로 꼭 포디움 안에 서고 싶다"며 "샤오하이퉈 트랙의 코스가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어려운 트랙에서 힘을 내는 장점을 발휘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몇 등 안에 들겠다는 생각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좋은 경기를 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그는 감사의 인사도 잊지 않았다. 

"썰매가 하나 내려가는 데 엄청 많은 분들이 함께 한다. 뒤에서 노력해 주시는 감독님, 그리고 지도자분들, 스태프분들과 경기 관계자분들은 물론 함께 뒤에서 노력하는 팀원들까지 다들 고생이 많다. 정말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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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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