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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돌아왔다. 지난해 미국 대선을 제외하고는 코로나19 등으로 한동안 뉴스에서 보기 힘들었던 북한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북한 원전'이라는, 으레 우리가 보아왔던 익숙한 모습으로.

국민의힘은 4월 재보궐 선거를 맞아 현 정부가 북한에게 원전 지원을 하려고 했다며 열심히 북한을 들먹이는 중이다. 친북 성향의 정부가 국민들 몰래 북한을 지원하고자 했고, 북한은 그것을 바탕으로 남한을 위협한다는 빤한 스토리다.

사실 국민의힘의 주장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정부가 북한에게 원전을 지어준다고 한 것은 현 정부가 아니라 그 전 보수 정권에서부터 기획한 일이며, 또한 그것 자체가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떤 정권이 감히 국가의 명운을 걸고 국제사회를 속여 가며 북한 원전을 지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야당은 그러한 사실을 빤히 알면서도 같은 문제제기를 계속 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야당의 색깔론에 경도되고 만다. 그 대상이 다름 아닌 북한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본과 중국, 미국보다 먼 나라

우리 사회에서 거의 모든 논의는 북한과 관련된 순간, 합리성을 쉽게 잃고 만다. 사람들은 여전히 북한을 두려워한다. 북한이 강해서가 아니다. 아직 미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무지로부터 비롯한 공포와 편견. 우리 사회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동안 꽤 많은 노력을 해왔다. 반공교육 일색이었던 교과 과정을 고쳤으며, 평화와 통일을 주제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또한 시중에는 북한의 역사, 사회구조, 정치체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발간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사회의 북한에 대한 편견은 여전하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기성세대는 물론이요, 젊은 세대 역시 북한을 이상하고 비합리적인 존재로만 여긴다.

무엇 때문일까? 그 이유는 북한을 배우긴 배우되, 우리와 다른 면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이며 민주주의인 남한과 달리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국가로, 그곳 사람들은 가난과 억압 속에 산다는 것이 교육의 주요 내용이다.

물론 교과서에 북한과 남한의 차이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질성도 다룬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통일을 전제로 한 민족의 동일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전통을 갖고, 같은 역사를 공유한다고 가르치지만 그곳에는 민족과 당위성만 있을 뿐, 실제로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어찌 사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북한은 일본과 중국, 미국보다도 훨씬 먼 나라이다.

그곳에도 사람이 산다는 당연한 진리

사진가 임종진의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은 이와 같이 편견으로 감싸여 있는 북한을 그대로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와 완전히 다른 체제에 살고 있는, 그러나 한민족으로서 반드시 동질성을 공유해야 하는 북한이 아니라 그냥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 집중한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사소한 일에 웃고, 울고, 감정을 드러내는 북한 사람들.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 -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 겉표지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 -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 겉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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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책을 접하고 걱정이 앞섰다. 저자의 방북기간이 너무 오래 전 일이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2018년 평창올림픽 이후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면서 발간된 책들에는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장마당이나 핸드폰 등 북한의 변화된 모습이 많이 담겼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과연 요즘의 북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그러나 책을 읽은, 아니 본 이후에는 그런 걱정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가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은 북한의 변화하는 현실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그곳에서의 삶이기 때문이었다. 체제가 무엇이든 간에 이어지는 사람들의 일상과 그 속에서 겪는 희로애락들.

저자는 그 중 특히 북한 사람들의 다양한 웃음을 포착해낸다. 웃음이야말로 그 사회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증거이고, 그들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표시이며, 사람의 마음을 어렵지 않게 열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쉽게 전염되는 웃음의 특성상 독자들은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같이 배시시 웃을 수밖에 없다.
 
평화로 가는 사진여행 중 한 장면.
 평화로 가는 사진여행 중 한 장면.
ⓒ 임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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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문득 놀라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던 게 아닐까? '모든 사람은 웃는다'는 그 당연한 사실도 스산한 분단의 현실 때문에, 당위성에 목이 멘 교육 때문에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웃음을 보아도 자기검열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래의 통일연수원장 이야기처럼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다.
 
흔히 '사회통합' 노력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민주시민 교육은 물론이고 북한 사회와 통일에 대한 제반 지식 등이 사회통합의 중요한 요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꾸준히 이런 교육을 펼쳐왔습니다. 일종의 '이성'에 기반한 교육이었으며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운 점이 남아 있습니다. 남북 간 이질성은 심해지고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낮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회를 '통합'하는 데는 지식적인 측면도 필요하지만 어쩌면 감성적인 부분이 더욱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 6p
 
저자는 자신의 딸 리솔이에게 이야기 하듯 책을 이어나간다. 아직도 북한에 대해서만은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는 이들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고 싶은가 보다. "사는 거이 다 똑같디요"라고. 

평화로 가는 사진 여행 - 아빠가 딸에게 들려주는 평화 이야기

임종진 (지은이), 오마이북(2021)


태그:#평화로가는사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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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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