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23 12:53최종 업데이트 21.02.2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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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의 첫 노인용 공공임대아파트 안내도. 고급스러운 사양에 각종 편의 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 HDB

 
싱가포르 HDB(주택개발청)에서 6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공공임대아파트를 분양 한다기에 HDB 본사에 마련된 쇼룸에 다녀왔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노인들만을 위해 분양하는 공공임대아파트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새롭게 신도시로 개발되는 부킷바톡 지역에 160세대 규모로 2024년에 완공될 예정입니다.

쇼룸에는 많은 노인들이 찾아와서 새로운 아파트에 높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미니어처로 만들어진 건물은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였고, 32㎡의 실제 크기로 구현해 놓은 모형 주택은 노인 둘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습니다.


침실과 거실이 필요할 때만 분리할 수 있도록 슬라이딩 도어가 설치되어 있고, 침실에는 붙박이장이, 거실에는 일체형 주방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생각보다 크게 만들어진 화장실은 노인이 휠체어를 타고도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거라고 했습니다. 곳곳에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손잡이와 미끄럼 방지 바닥이 있어 노인들을 위해 꼼꼼하게 설계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보살핌 필요한 노인 위한 맞춤형 아파트
 

노인들이 공동체를 꾸릴 수 있도록 층마다 공용 공간이 마련됩니다. ⓒ HDB

   
층마다 주민들이 식사를 함께 하거나 소모임을 할 수 있도록 공용 공간이 마련될 예정입니다. 단지 1층에는 산책로와 휴게실, 헬스장, 다용도실 등이 있고, 식사를 위한 푸트코트, 편의점, 클리닉도 들어서서 노인들에게 필요한 모든 편의시설을 단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건물 전체를 휠체어를 이용해서 어디든 편히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65세 이상의 노인에게만 입주 자격이 주어지는데 일상생활에서 돌봄이 필요한 노인에게 우선권이 있습니다. 입주를 하면 24시간 비상 대응 서비스, 정기적 건강검진, 간단한 집 수리 서비스 등이 패키지로 제공이 됩니다. 몸이 불편해서 간병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정부에서 비용의 80%를 지원합니다. 식사 및 목욕, 이동 등의 돌봄 서비스 역시 정부가 보조금을 지원해 줍니다. 가족의 부양 없이 따로 살기를 원하지만 정기적인 보살핌이 필요한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아파트입니다.
  

노인용 공공임대아파트 쇼룸에서 많은 노인들이 사양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 이봉렬

 
싱가포르 보건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노인을 위한 공공임대아파트를 처음 계획할 때부터 노인과 그 자녀, 서비스 제공자, 의료 전문가 및 간병인의 의견을 모두 고려했다고 밝혔습니다.

입주는 임대계약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최소 15년에서 최장 35년까지 기간을 선택할 수 있는데 15년의 경우 4만 달러 (약 3400만 원), 35년의 경우 6만 5천 달러(약 5500만 원)입니다. 입주할 때 전액을 납부해야 하는데 한국의 국민연금과 같은 CPF를 이용해서 낼 수도 있고, 정부의 보조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계약 기간 이내라고 하더라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면 HDB에 반납하고 남은 기간에 해당하는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이렇게 좋은 아파트가 없을까요?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이제 막 분양 신청을 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2016년에 벌써 첫 입주를 시작할 정도로 먼저 시작한 사업입니다.

한국의 공공실버주택
  

고령자를 위한 주거복지 로드맵 ⓒ 국토교통부

 
2016년 성남시 위례에서 공공실버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첫 입주자를 받았으며, 이후 고령자 복지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2020년 4월 국토교통부의 발표에 따르면 2019년 말까지 전국 8곳의 1116세대를 공급했고, 2025년까지 1만 세대 이상을 공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휠체어 이동을 위해 문턱을 모두 없애고 안전 손잡이 설치, 높낮이가 조절되는 세면대 등 노인의 특성에 맞춰 설계가 됩니다. 단지 안의 복지관에서는 문화강좌가 열리고, 건강 관리와 응급대응도 지원을 합니다. 임대료는 시세의 30% 수준으로 책정이 된다고 하니 1만 세대가 아니라 전국 곳곳에 가능한 한 많이 보급되어서 노인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봉렬 in 싱가포르>를 연재하면서 늘 '싱가포르에선 이런 것도 하고 저런 것도 있는데 한국도 배워서 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기사를 써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은 그 반대입니다. 한국에서 먼저 시작하여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며 점차 확대하고 있는 사업을 싱가포르에서는 이제 막 시작하고 있습니다. 기사를 쓰면서도 기분 좋은 일입니다.

대신 뒤늦게 시작한 싱가포르 노인 주택의 몇 가지 장점이 눈에 띕니다. 층마다 마련되는 공용 공간, 정기건강검진 및 집 수리 서비스 등의 패키지, 돌봄 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80% 지원 등이 대표적입니다. 노인들이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게 아니라 밖으로 나와서 다른 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불편해진 노후에도 누군가의 부양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생활을 누리면서도 정기적인 돌봄을 보장받을 수 있는 편하고 안전한 공간 그리고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공동체. 이런 게 진정한 노인 복지가 아닐까 합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는 걸 한국이 보여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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