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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노구교 인근에 있는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마당에 있는 '지난날을 잊지 말자'(前事不忘)라는 표어. 치욕적인 과거를 애써 잊으려 하기보다는, 이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자극제로 활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민족의 자세가 아닐까?
 북경 노구교 인근에 있는 중국인민항일전쟁기념관 마당에 있는 "지난날을 잊지 말자"(前事不忘)라는 표어. 치욕적인 과거를 애써 잊으려 하기보다는, 이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자극제로 활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민족의 자세가 아닐까?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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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의 야수적인 침략주의는 1937년 7월 7일 북경 교외 노구교 사건을 조작하여 군사도발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전면적인 침략전을 전개하는 수법 그대로였다.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기대하던 중ㆍ일전쟁의 발발이다. 선전포고도 없이 총공격을 개시한 일본군은 전광석화식으로 북경ㆍ천진에 이어 장개석 정부의 수도 남경을 점령하고, '남경대학살'로 무고한 30만 인민을 살육했으며, 무한ㆍ광동ㆍ산서에 이르는 주요도시 대부분을 점령했다.

중국은 장개석이 공산당의 항일민족통일전선 결성 제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제2차 국공합작을 이루어 일제에 맞섰다. 중국의 양대 진용은 일제의 전면 침략으로 다시 국공합작을 일궈냈으나 실제는 외적보다 내부의 적의 소탕에 우선하는 형국이었다.

이 시기 만주는 일제의 식민지가 되고, 한인들은 국내의 식민통치와 다르지 않는 가혹한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일제의 식량공급지이자 동시에 전쟁자원 조달처가 되었으며 창씨개명과 신사참배가 강요되었다.

여기에 각종 친일단체가 조직되어 교민들을 갈취하고 독립운동 경력자와 그 가족을 위협하였다. 일제는 이른바 만주국과 관동군의 관리하에 각종 친일단체를 조직했는데, 대표적인 것은 '간도협조회'와 '만주국협화회'가 있었다. 총회원수 7,757명을 거느렸던 '간도협조회'를 통해 어용단체의 실체를 살피고자 한다. 

1934년 9월 6일 연길 헌병대장 가등(加藤) 중좌를 산파역으로 해서 한국인 김동한(金東漢)을 회장으로 내세운 이 단체는 ①편협한 민족관념을 버리고 아시아민족의 대동단결을 꾀해야 하여 ②강철과 같은 굳은 조직으로 외래의 공산주의를 적멸하는 동시에 ③일ㆍ만 합작과 복리증진을 꾀한다는 강령을 내걸었다. 

구체적인 행동강령은 ①일ㆍ만 일체의 사상을 선전ㆍ배양하고 ②공산당 및 반만항일군을 해체시키려고 노력하며 ③공산당 및 반만항일군 그리고 일반 민중에게 세포를 이식하고 ④공산당 및 반만항일군의 잠행을 적발하고 ⑤조선인 불령분자는 조선인의 힘으로 소멸시키고 일만합작을 이룩한다는 것이었다. (주석 2)

  
중일전쟁 당시의 난징 대학살을 그린 영화 <난징 난징>
 중일전쟁 당시의 난징 대학살을 그린 영화 <난징 난징>
ⓒ 부산국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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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협조회'의 본부는 연길헌병대 본부 안에 자리잡고 연길헌병대장의 지휘를 받으며 연길현ㆍ왕청현ㆍ명월구ㆍ안도현ㆍ도화현에 5개 지부와 각 현 지부에 따로 구회를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협조회는 특수공작을 수행하기 위해 의용자위단과 협조의용단이라는 무장단체를 조직, 공산주의자와 한인독립운동가의 사살 또는 회유전향케 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민들의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군비를 뜯어냈다. 만주의 교민들은 이중삼중의 수탈에 시달리고 독립운동가들은 밀정과 친일단체 요원들로부터 감시를 받아야 했다. 최운산은 1939년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하고 독립군자금을 조달한 혐의로 구속되어 10개월 형을 선고받고  다시 투옥되었다. 도합 여섯 번째였다. 


주석
2> 만주국군간행위원회, 『만주국군』, 491쪽, 동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무장독립투사 최운산 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그동안 연구가들의 노력으로 연해주와 서간도의 독립운동은 많이 발굴되고 알려졌지만, 2020년 봉오동ㆍ청산리대첩 100주년을 보내고도 두 대첩에 크게 기여한 최운산 장군 형제들의 역할은 여전히 묻혀진 상태이다.
태그:#최운산, # 최운산장군평전, #무장독립투사_최운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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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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