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평창동계올림픽 3주년을 맞아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을 만납니다. 출전했던 선수들과 그해 겨울을 평창에서 보낸 이들을 만나 평창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봤습니다. '다시, 나의 평창'의 다섯 번째 주인공은 평창 올림픽 때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쇼트트랙 계주 금메달을 따냈던 이유빈 선수입니다.[편집자말]
2018년은 그녀에게 잊지 못할 해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고, 첫 시즌의 월드컵에서 메달도 땄다. 자국에서 펼쳐지는 올림픽에 계주 선수로 출전하는 행운도 얻었다. 이유빈(21) 선수 이야기다. 

2018년 2월 10일 강릉 아이스 아레나 경기장에서 네 명이 합을 맞춰 경기를 이끌어나가야 하는 쇼트트랙 계주 예선 경기가 열렸다. 그리고 주자 중 한명으로 이유빈 선수가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네 바퀴를 달린 시점에서 이유빈 선수가 넘어졌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 선수는 손을 뻗어 뒤따라오던 최민정에게 극적으로 바통을 넘겼다. 뒤쳐졌지만 최민정, 심석희, 김예진, 그리고 이유빈도 다시 뒤쫓아갔다. 결과는 네 선수의 올림픽 신기록 합작이었다. 선수들은 금메달까지 함께 만들어냈다.  

2018 평창 올림픽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았던, 국민들의 뇌리에 각인된 역경의 주인공, 이유빈 선수를 지난 2월 14일 서울 올림픽공원 인근에서 만났다. 올림픽 때의 기억은 물론 지난 시즌의 상승세,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각오까지 들어볼 수 있었다.

"석희 언니 덕분에, 첫 시즌 많은 도움 되었어요"
 
 여느 대학생처럼 보였던 이유빈 선수.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국가대표라는 무게를 잘 아는 '베테랑'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느 대학생처럼 보였던 이유빈 선수.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국가대표라는 무게를 잘 아는 '베테랑'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박장식

 
이유빈 선수는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올라가던 시기 시니어에 데뷔했다. 첫 시즌 출전한 2차 월드컵 1000m 경기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가 하면, 올림픽 팀에도 합류해 계주 선수로 출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에게 시니어 대표팀 승선은 생소하기만 했다.

"시니어 데뷔를 하니 선수로서의 책임감이 더 강해지더라고요. 같이 하는 선수들도 주니어 땐 또래 친구들이었는데 시니어에선 맏언니와 열 살 차이가 나기도 했고요. 나이 차이 때문에 더욱 시니어 무대라는 것이 실감 났습니다."
 
첫 시즌의 부담감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유빈 선수는 다른 선배들의 조언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네 살 위의 심석희 선수가 가장 고마웠다고. 심 선수는 선수로서의 책임감에 대한 것은 물론 사소한 부분까지도 물어보면 대답해주며 이 선수를 다독였다고 한다.

이유빈 선수는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개인전이 아닌 계주 종목에만 집중했다. 그는 "계주가 정말 힘든 종목이라고 생각한다. 한 바퀴 반을 전속력으로 돌아야 하는데, 속도가 다르다 보니까 처음 연습할 때 정말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며 "계속 얼음 위를 타면서 바통터치에도 신경 쓰는 것을 반복하다 보니 더욱 그랬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올림픽이 다가왔다. 이유빈 선수도 강릉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하는 올림픽인 데다, 특히 새로 문을 연 아이스 아레나에서 시합을 뛴다는 생각에 두근두근했다고. 이유빈 선수는 "설레는 마음이 컸다"고 설명했다.

"넘어졌던 순간, 모든 게 무산되나 싶었죠"

그렇게 강릉에 들어선 후 경기에 출전하게 되었다. 2월 10일, 아이스 아레나에 처음 입장할 때를 이유빈 선수는 잊지 못한다. 이유빈 선수는 '사실 부모님께만 말씀드렸던 얘기'라면서 그때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경기장 가는 버스 안에서부터 긴장이 많이 되더라고요. 아이스 아레나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사람이 많고, 그렇게 함성 소리가 큰 적이 없었거든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느낌이 이런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렇게 나섰던 계주 예선 경기. 하지만 이유빈 선수는 경기 초반 넘어졌고 관중들의 함성소리는 탄식소리로 바뀌었다. 이 선수는 "1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들게 운동했는데, 모든 것이 무산되는 기분이었다"며 "엄청난 실망감에 빠졌다"고 회고했다.

그런데 넘어지는 순간 뒤따라오던 최민정 선수가 손을 뻗었다. 이유빈 선수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뻗었다. 넘어지면 벌떡 일어나야만 하는 개인전과는 다르게, '계주는 일어나기 전에 먼저 바통터치를 할 수 있도록 손을 뻗어야 한다'는 언니들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수들의 '분노의 질주'가 시작되었다. 선두와 반 바퀴가 넘게 벌어졌던 거리는 점차 좁혀지기 시작했고, 7바퀴를 남기고 1위 자리까지 올라갔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고조된 순간, 심석희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했다. 4분 6초 40. 이유빈·심석희·최민정·김예진 네 명의 선수들이 합작한 올림픽 신기록이었다.

그렇게 올림픽 신기록을 안고 결승전까지 진출했다. 이유빈 선수는 결승전 경기에 뛰지는 못했지만 누구보다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다. 그리고 마침내 올림픽 2연패를 거두는 순간이 왔다. 이유빈 선수는 포디움 맨 위에 오르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포디움 맨 위에 올라가니까 아이스 아레나의 얼음 위와는 전혀 다른 설레는 기분이 들었어요. 축하해 주러 와 주신 관중분들 보는 것이 좋기도 했고요."
 
 2018년 2월 21일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플라자에서 금메달을 수여받은 여자 계주 금메달리스트 선수들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맨 왼쪽부터 이유빈, 김아랑, 김예진, 최민정, 심석희 선수..

2018년 2월 21일 평창 동계올림픽 메달플라자에서 금메달을 수여받은 여자 계주 금메달리스트 선수들이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맨 왼쪽부터 이유빈, 김아랑, 김예진, 최민정, 심석희 선수.. ⓒ 박장식

 
시상대 위에 올랐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유빈 선수는 "예전에 올림픽 경기를 TV로 볼 때는 선수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했다"며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것도 감동이었고 관중분들이 애국가를 함께 불러주시는 것도 감사했다"고 전했다.

조금 짓궂은 질문도 던졌다. 과연 올림픽 준결승 때의 영상을 다시 본 적이 있을까. 이유빈 선수의 답은 'Yes'였다. 그런데 영상을 다시 본 이유가 재밌다.

"굳이 찾아보지는 않죠. 그런데 유튜브 알고리즘 때문인지 뜬금없이 추천 영상으로 뜰 때 한 번씩 보곤 해요. 언니들이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냈으니까 다른 분들이 '한국의 위대함을 보여준 것 같다'고 칭찬해 주시는 댓글을 보곤 해요. 물론 제가 넘어지는 장면은 '못한 것도 봐야지' 싶지만, 그래도 그 장면은 실눈 뜨고 보게 되네요."

시련인 줄 알았던 부상이 준 선물

올림픽 바로 다음 시즌의 이유빈 선수 몸 상태는 최상이었다. 하지만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이 선수는 "어이없게 다쳐서 2차 선발전을 포기했을 때 실망감이 컸다"고 전했다. 하지만 부상이 이유빈에게는 '일상'을 누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1년 동안 평범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서 친구들과 추억도 쌓고, 가족들과 함께 여행도 다녀왔어요. 선수로서는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들도 친구들과 공유했고요. 참 아쉬웠던 부상이었지만 그 덕분에 친구들도 더욱 많이 사귀고, 훈련이나 경기 때문에 못 나갔던 학교 축제도 참가하면서 학교생활도 더욱 재밌게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리고 부상에서 회복한 이 선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대표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 훈련에 열중하면서 대학교 입시 준비도 병행했단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이 선수는 대학 수업을 듣게 된 점을 빼면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면서도 대표팀에서만큼은 '막내'를 탈출했다고 웃어 보인다.

자신감 덕분이었을까. 2019-2020 시즌 6차 월드컵 1000m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이유빈 선수는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이었다"며 "생각하던 대로 모든 경기가 잘 풀려서 기분도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이 선수는 '이대로 국가대표 선발전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꾸어놓았다. 갑작스레 시즌이 끝났고, 예정되었던 국내 경기도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

이유빈 선수는 대학교를 다닌 지 1년이 지났지만 대학부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이 선수는 "시합 감각이 무뎌지는 느낌이 들어 힘들다"며 "그나마 소속된 곳이 있으니 괜찮은데 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은 지금 얼마나 힘들까 싶다"고 걱정했다.

"외부의 상황 때문에 시합이 한동안 없어서 힘들었어요. 이번 베이징 동계올림픽 선발전은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되어서 예정대로 꼭 열렸으면 해요. 거기서 꼭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으면 좋겠죠."
 
"꼭 1000m에서 메달 따고 싶어요"

이유빈 선수는 베이징 올림픽보다 올림픽 대표를 뽑는 국가대표 선발전이 더욱 어렵다면서도 열심히 노력하면서 선발전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한다.

베이징 올림픽에 나간다면 어떨까. 이유빈 선수는 "평창 올림픽 때는 스태프나 자원봉사자분들이 한국 분이라 친근감이 있었다"며 베이징 올림픽은 더욱 긴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이어 이 선수는 "가장 잘 하는 종목이니까 1000m에서 꼭 메달을 따고 싶다"고 포부를 전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 선수에게 '평창'과 '올림픽', 그리고 메달에 대해 물었다. 이유빈 선수는 먼저 '평창'이라는 단어에 대해 "평창 올림픽 이전에는 그저 '쇼트트랙 선수'라는 이름으로 나를 소개하곤 했다"며 "하지만 올림픽을 시작으로 나를 소개하는 단어가 '대한민국 쇼트트랙 선수'가 됐다, 참 고마운 단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림픽에 대해서 이 선수는 "내가 선수로서 4년마다 계속 도전하고 넘어야 할 산"이라면서도 "평창 올림픽은 이미 지난 추억이니 이제는 다음 올림픽을 기대하고 싶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올림픽 메달은 '나 스스로에게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누구도 쉽게 메달을 가질 수 없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도 꾸준히 다른 외국 선수들, 그리고 국내 선수들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배들에게 배울 것은 배우고, 제 스스로도 발전해야만 앞으로도 올림픽 메달이라는 선물을 받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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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빈 쇼트트랙 평창 동계올림픽 금메달 메달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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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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