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러다가 말겠지."

작년 9월쯤이었나. 잔기침을 한 번 하기 시작하면 숨이 꼴딱 넘어갈 만큼으로 번졌다. 환절기니까 그럴 거야. 평소 기온이 확연히 달라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하고야 마는 비염 증상이겠지 하고 넘겼던 게 벌써 해가 지났다. 가족들에게 혼쭐이 나고 나서야 대학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코로나19 확진자 소식이 연일 끊이질 않는다. 대학병원으로 가는 발길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KF94 마스크를 꼭 착용하라고 했고, 호흡기 내과는 병동을 따로 둘 만큼 엄격하게 관리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과의 접촉도 웬만하면 피할 만큼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진료를 받으러 가는 내내 동선과 엘리베이터가 따로 만들어진 것을 보고 걱정이 더 밀려왔다. 마치 내가 코로나19 확진자가 된 느낌이었다.

몇 달을 참다 찾은 호흡기 내과

호흡기 내과가 있는 응급치료센터 건물 6층에 도착했다. 바닥부터 진료실 출입문 등등이 새집마냥 깔끔했다. 코로나19로 긴급히 만들어진 곳이구나.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났다. 애써 신경을 돌릴 만한 유튜브를 시청하며 긴장된 시간을 날려 보냈다. 10여 분 정도 기다렸을까. 미리 예약해 뒀기에, 곧장 담당 교수 방으로 들어갔다.

"증상이 어때요?!"
"기침이 심해요."

"얼마나 됐어요?"
"환절기부터 시작했으니까 4개월 가까이 됩니다."

"아니, 왜 이제 왔어요?"
"!!!!"


천식. '계절성 알러지' 쯤으로 알고 갔던 내게 내려진 병명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틀에 박힌 편견이었을까. 강원도 어느 산골, 혹은 탄광촌에서나 걸릴 법한 그 천식. 주변에서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단어조차 생소한 천식.
 
 진료 후 받은 처방. 숨이 가쁠 때마다 해야 하는 흡입치료기와 비염약
 진료 후 받은 처방. 숨이 가쁠 때마다 해야 하는 흡입치료기와 비염약
ⓒ 백지혜

관련사진보기

 
옛날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에서 약해 빠진 막내 동생이 죽을 듯이 기침을 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기침을 하다 쓰러지면 한 손에 쥐어질 만한 크기의 호흡기 기계 같은 걸 입에 물고 몇 번의 긴 호흡 끝에 진정이 되던 그 장면이. 내 오랜 기침의 원인이 그 '천식'일 줄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이라 나는 헛웃음이 났다.

결혼 6년 만에 세 아이의 엄마가 됐다. 세 명 모두 건강한 아이로 자라고 있다.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이상 증상이 없었던 나였기에 나는 건강을 자신했다. '어떻게 셋이나 낳았어? 진짜 대단하다' 습관적으로 듣던 마약 같은 칭찬 때문에 각성이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엄마니까. 스스로 강인한 사람이란 착각으로 살며 내 몸을 돌보지 않았던 거다.

나를 돌보지 않은 대가

나에 대한 무심함도 어리석었지만, 실제로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다. 2년 터울로 아이들을 낳고 기르느라 생긴 4년 6개월의 경력단절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닫느라, 천금 같은 새 직장에 목을 맸다.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생각보다 나는 내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었다. 일을 놓으면 내 자신도 놓아질까 봐 겁이 났다. 그렇게 쉬어가라는 몸의 신호를 무시하고 앞만 보며 달려 나갔다. 그런데, 그 끝이 천식이라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교수는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왜 이제 왔는지 물었죠?"
"네..."

"비염이 언제부터 있었나요?"
"어릴 적부터 달고 살았어요. 만성질환이라고 알고 있고, 약으로는 억제효과만 있지 근본적인 치료는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치료를 할 생각은 안했어요?"
"만성비염이 치료가 가능한가요?"

"당연하죠. 생활습관을 바꾸면 가능해요."
"아..."

"비염치료를 미리 했으면 천식 안 왔어요. 치료가 안 될 거라는 본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몸을 내팽개쳐놨다가 병을 키운 거예요."
"......"


이를 어쩌나. 몸뚱아리를 그냥 방치한 것도 모자라 비염이 치료되지 않을 거란 착각이란 죄목도 더해졌다.

"자! 나도 천식이 있어요. 그래서 이 병을 내가 잘 알아요.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그럼 나을 수 있습니다."
"평생 약을 먹어야 하나요?"

"솔직히 말해서 약만 잘 먹으면 이틀만에도 기침은 멈춰요. 천식이 그래요. 그런데 이게 완전한 치료는 아닙니다. 환절기마다 겪는다고 했으니까 적어도 1년은 지켜봐야 해요."


살았다. 치료가 가능하단다.

"단, 절대 과로와 스트레스는 안 됩니다. 그럼 1년보다 훨씬 더 길어져요."
"과로와 스트레스를 안 받는 현대인이 어디 있습니까?"

"절대로 열심히 살 생각 하지 마세요. 이번 생은 놀다가 죽겠다고 생각하고 살아야 해요."
"교수님... 제가 애가 셋인데요...(과로와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안 받을 수 있을까요...)

"자신을 위해 조금은 내려놔야겠죠. 안 낫고 싶어요?"


열심히 사는 게 내 주특기인데, 열심히 살지 말라니. 나의 하루는 과로로 시작해서 과로로 끝나는데 그걸 하지 말라니. 일을 해야 삶의 활력을 얻는 사람한테 과로와 스트레스 없이 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집을 나가서 회사 출근하는 게 육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내 삶의 낙인데, 그걸 포기하라니.

심경이 복잡하다. 일단 내일 아침까지 원고 마감할 게 남아서 방금 전까지 어깻죽지에 고통을 이겨가며 작성했다. 일주일 전부터 재택근무를 하는 내게 팀장이 날마다 전화를 해 와서 재촉하는 바람에 기획안을 2개나 썼다. 오늘도 3시간 자면 다행이다. 도대체 이 천식은 누가 만들어낸 천식인가.

댓글1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4년 6개월이란 경력단절의 무서움을 절실히 깨달은 아이셋 다자녀 맘이자, 매일을 나와 아이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워킹맘. 글을 쓰는 일이 내 유일한 숨통이 될 줄 몰랐다. 오늘도 나를 살리기 위한 글을 쓴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