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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저희 부부는 각자의 일 때문에 13년간 따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아내의 집으로 들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동거를 시작한 기념으로 제주의 처제가 노지 한라봉 한 박스를 보내왔습니다.

"10개도 아니고, 20개도 아니고 10kg을 두 사람이 언제 다 먹지..."

내 혼잣말에 박스를 개봉하던 아내가 나를 힐긋 올려다보았습니다.

"내 말이 옳다는 건가?"
 
 제주의 처제가 보내온 한라봉
 제주의 처제가 보내온 한라봉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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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표정은 이전에 직면한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담긴 메시지를 즉시 해독하는 것은 내게 아직 무리였습니다. 몇 개를 식탁에 올리고 함께 맛을 보았습니다.

"바로 따서 보냈네. 어제 딴 듯 신선한 걸 보니..."

들쭉날쭉 크기가 달랐지만 아내는 흡족해했습니다.

"과일은 공산품이 아니에요. 햇살과 바람과 토양과 농부의 땀으로 익은 것이라 큰 것은 맛있고 작은 것은 더 맛있어요."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내 마음속까지 읽어서 미리 답했습니다.

접시에 몇 개씩을 담아 아내가 계단을 몇 번 오르내리니 박스 속은 금방 쑥 내려갔습니다.

"아~ 그 표정은 '물정에 어둡다'라는 표정이었구나."

언제 다 먹지, 했던 내 말 뒤의 아내 표정이 비로소 독해가 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샐러드볼에 가득 담아온 잘 익은 김치 포기 
 
 주인집 할머니께서 주신 김장김치
 주인집 할머니께서 주신 김장김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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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고맙습니다. 저희는 하루 두 끼만 먹어서 아침을 좀 늦게 먹어요. 그러면 조금만 주세요."

전화기를 놓자마자 아내가 주방으로 뛰어가서 그릇을 찾았습니다.

"조금 가져오려면 작은 그릇을 가져가야 하는데..."

손바닥만 한 유기 국그릇을 들고 현관문으로 가는데 2층 계단 중간 참에서 아래층 주인 할머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내 손에 들린 그릇을 보고 하는 말 같았습니다.

"에그, 여기다 어떻게 담아..."
"많이 주실까 봐 부러..."
"내가 이미 담아왔으니 가져가서 부어놓고 줘."


아내가 들고 들어온 것은 잘 익은 김치였습니다. 아내의 집에서 가장 큰 샐러드볼을 찾아야 했습니다.
 
 주방 설거지 선반으로 활용하면 좋을 재활용 스틸 선반
 주방 설거지 선반으로 활용하면 좋을 재활용 스틸 선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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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전화를 받고 나갔다 들어온 아내의 손에는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 접시 선반이 들려있었습니다.

"길음동의 아파트로 청소 다니시는 아주머니가 가져오셨네. 당신이 오고는 그릇들이 각 2개씩이 되어야 하니 작은 싱크에 그릇을 두고 설거지를 할 수 없겠더라고요. 위생적이지도 않고... 그래서 상부장 밑에 달 수 있는 행거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서 며칠 전에 혹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있나 물어보았었거든요. 오늘 아파트에 재활용품으로 나왔길래 생각나서 가져오셨다네요."

필요한 것만 떼어낸뒤 내게 건네주며 달아달라고 했습니다.

"찬장 하부에 접시 넣을 만한 간격을 두고 달려면 좀 굵은 철사가 필요하고, 그것을 자를 니퍼와 고정할 나사못, 돌려 박을 십자드라이버가 필요한데?"

그동안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했던 아내에게 그 모든 도구가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다시 집을 나갔습니다. 조금 뒤 그 일체를 가지고 왔습니다.

가진 것을 나눠 사는 미니멀 라이프 
 
 이웃집에서 빌려온 연장들
 이웃집에서 빌려온 연장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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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못과 드라이버는 옆집 할머니가, 철사와 니퍼는 배관일 하시는 건너 집 지하 할아버지가 주셨어요."

도구 일체가 갖추어지니 그것을 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릇과 무와 당근 등 남은 식재료까지 올려놓은 아내는 묵은 숙제를 푼 듯 개운해했습니다.
 
 이웃의 십시일반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선반
 이웃의 십시일반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선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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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싱크대가 두 배로 넓어졌네. 씻은 그릇 물빠짐도 걱정 없고..."

이 동네의 미니멀 라이프는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각자 가진 것을 나누며 사는 것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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