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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가며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관계'다.
 나이 들어가며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것은 "관계"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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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전 며칠 동안 화제가 되었던 한 여배우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이다. 아리따운 국민 여배우로서 한 시절을 풍미했던 이 노배우가 현재 프랑스의 자택에서 쓸쓸하게 방치되어 있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기사화된 것.

이 이야기는 결국 그 배우의 남편과 딸, 그리고 그녀의 동생들 간 벌어진 소송전의 일부였음이 밝혀졌다. ​유명 피아니스트인 그녀의 남편은 공연을 위해 내한한 자리에서 '가정사로 떠들썩하게 해서 죄송하다. 그러나 아내는 평온히 잘 지내고 있다'는 말로 세간의 입방아를 잠재웠다.  

스크린 속에서 온 나라 여성들의 선망의 여배우로 존재하던 그녀의 시간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특히, 그녀가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는다는 사실을 지극히 안타까워 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편과 함께 온 세상을 여행하는 노후의 삶 또한 많은 이들에게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으니 그럴만도 하다. 대중들은 '그렇게 남부럽게 살던 스타도 병 앞에서는 어쩔 수 없네'라며 혀를 찬다. 

가만, 사람들이 그녀를 안타까워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본다. 아마 치매라는 병에 걸려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생활할 수 없게 된 상태에 대한 안타까움일 것이다. 그렇게 곱고 우아하던 한 여성이, 상황에 대한 주체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 간의 분쟁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지독한 병, 치매 때문이라고 여긴다. 

치매는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질병이 맞다. 다른 병은 몰라도 치매만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의 속 마음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스스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 잘 모르고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지 못하는 인지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게 치매에 대한 가장 큰 공포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세상 그 어떤 질병이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태를 불러오지 않는 것은 없다. 일단 병에 걸렸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나를 잃는 것이다. 심한 복통을 불러오는 맹장염, 제대로 앉아있지 못하는 허리 디스크, 다리가 퉁퉁 붓는 간경화 모두 기존의 자신이 느끼지 못하던 불편함을 가져온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치매보다 암이 차라리 낫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항암의 고통을 느껴보지 않아서 하는 말일 수 있다. 막상 기타 다른 병에 걸리면, 나 자신은 고통을 인지하지 못하는 치매가 오히려 낫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다른 병은 내가 고통스럽지만 치매는 환자를 돌보는 다른 이들에게 민폐가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병이든 환자의 고통을 마음 편히 바라보는 돌봄자는 없다. 어쨌든 '병 중 어떤 병이 가장 힘들다', '가장 고통이다'라는 단순 비교 자체는 불가능한 것이고 이는 치매도 똑같다.

항상 문제는 사람이다 

치매라서 유독 더 고통스럽거나 더 안타까운 것만은 아닌 것이다. 모든 질병을 가진 이들에게는 크건 작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고 환자는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힘들다. 무슨 질병이든, 누구에게든 마찬가지다. 그래서 질병이야 말로 가장 공평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면, 정작 안타까워할 것은 치매가 아니다. 이 여배우의 가족 간 소송전이 벌어진 것은 치매 자체보다도 사람들 간 관계 문제로 볼 수 있다. 개인 사생활의 자세한 내막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노력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세상의 선망이 안쓰러움으로 바뀔 만큼 관계의 복잡다단함을 직면한 이 배우 가족들에게 지금 가장 답답한 것은 그 관계를 푸는 (혹은 끊는) 일일 것이다.

물론 배우 당사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다른 질병에 걸렸다면 자신을 둘러싼 문제를 두고 어느 정도의 교통 정리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악의를 가지고 달려드는 적극적인 사람이 있다면 관계 앞에 그 방패막이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항상 문제는 사람이다. 

'돌봄장'이라는 것이 있다. 죽음에 대비하여 '어떤 죽음을 맞게 해달라' '사후에 자손들은 어떻게 살아라' '재산 분배는 어떻게 해라'라는 말들을 적는 것이 유언장이라면 '내가 아프면 이렇게 돌봐달라'고 돌봄에 대한 요청 사항을 적는 것이 '돌봄장'이다. 이미 '내가 치매에 걸리면 이런 음악을 들려주세요' '목욕은 며칠에 한 번 시켜주세요'라는 내용의 돌봄장 써보기를 실천하는 노년 모임도 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미리 유언장도 써보고 장기기증 신청서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을 써두기도 하지만 사실 죽음 이전에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지 못할 질병의 기간'이 있을 수 있음을, 그 기간이 매우 길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는 것이 먼저다.

질병의 기간에도 최소한의 나를 지키려는 의지의 표현으로 돌봄장을 써두는 것인데 사실 음악을 들려주거나 목욕을 시켜달라고 하는 것이 돌봄자에 의해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긴 하다. 그런데 그나마 법적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돌봄장'의 형식이 있으니 바로 그것이 '성년후견인' 제도다. 

성년후견인 제도는 질병 기간 중 본인의 사무를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비해서 후견인을 지정해두는 제도다. 이미 질병으로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버린 환자가 법원의 감정을 거친 후 자식이나 지인을 후견인으로 지정하여 금융자산 처리, 법률대리 등을 맡기는 것을 '성년후견'이라고 한다. 프랑스 법원의 판단을 거쳐 형제들이 아닌 배우자와 자식을 성년후견인으로 지정했다는 노배우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반면 앞으로 정신 기능이 악화될 것에 대비해서 미리 후견인을 선정해둘 수도 있는데 이를 임의후견이라고 한다.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법률 사무소를 찾아 비용을 내고 진행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사전 후견인 지정은 가능하다. 

단, 후견인으로 지정된 이가 환자의 재산을 유용하는 등 후견인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이를 감시할 수 있는 체계가 부족하긴 하다. 하지만 여러 가족 사이에서 갈등을 빚는 위 여배우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병에 걸리기 전 자신의 생각을 밝힌 법적 서류 한 장이라도 있었다면 그래도 좀 상황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제는 사람들이 정말 아프기 전까지는 자신이 아플 것이라 예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하며 건강에 신경쓰고, 죽음이야 자신에게도 올 것이라는 기정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정작 질병과 돌봄의 문제가 내 것이 되리라는 전제하여 이를 준비하는 이들은 별로 없다.

'내가 아무리 아프고 흉한 모습을 보여도 전적으로 나를 돌봐줄 믿을 만한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위해 사회가 마련한 제도를 활용하여 미리 대비해두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질병을 막을 순 없지만, 준비할 순 있다 

이런 법적 제도를 포함, 돌봄장을 써 본다거나 유언장을 써 놓는 것 모두, 근본적으로는 '관계 정리'를 위해서다. 노년에 접어들면 필요한 것을 남기고 물건들을 버리는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한다던데 이 시기에 정리할 것이 물건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재산과 법적 권리를 누구에게 맡길지 정하는 것은 내가 일생 동안 사회에서 맺은 관계를 집약하는 가장 핵심적인 결정이다. 내가 아프고 나서 내 돈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내 관계가 어떻게 될지 고민해본다면 결정이 훨씬 쉬울 것이다.  

'질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고 써놓은 나 또한 과연 어떤 게 원인이고 어떤 게 결과인지 헷갈린다. 병이 관계를 악화하는 것처럼 보여도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가 병을 유발하는 경우도 많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모든 것의 원인을 질병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다가올 수 있는 질병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질병에 걸리기 전, 혹은 걸린 후에라도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집중해서 대비하고 대응해야 한다. 어설픈 감성이나 인간의 도리를 지키자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푸는 데 있어 그것이 더 효율적이고 근복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태그:#인생, #치매, #관계, #후견인, #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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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엄마가 있었다> 작가. 문화, 육아, 교육 분야의 잡지에서 기자로 일했다. 결혼 후 힘든 육아와 부모의 질병을 겪으며 돌봄과 나이듦에 관심 갖고 사회복지를 공부한다. 소중한 일상, 인생, 나이듦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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