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에선 처음 또는 다시 볼 만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부터 아직 국내에 정식으로 소개되지 않은 작품까지 다양하게 다루려고 합니다. [편집자말]
<냠냠> 영화 포스터

▲ <냠냠> 영화 포스터 ⓒ 왓챠


가슴이 커서 허리도 아프고 남자들의 끔찍한 시선에 시달리던 알리슨(마이케 노빌르 분)은 만류하는 어머니 실비아(안닉 크리스티앙스 분)와 내키지 않아 하는 남자친구 미카엘(바르트 홀란데르스 분)과 함께 성형을 전문으로 하는 크로포치크 클리닉을 찾는다. 그런데 가슴 축소 수술을 받기 직전, 크로포치크(에릭 고돈 분) 박사가 은밀하게 진행하던 실험체가 격리시설 바깥으로 나와 사람들을 감염시키며 병원엔 대혼란이 일어난다.

매년 수십 편에 달하는 좀비 영화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대부분 나라가 좀비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냠냠>은 벨기에 최초의 좀비 영화다. 좀비를 소재로 고어와 코미디를 결합한 <냠냠>은 노르웨이의 <데드 스노우>(2009), 스페인의 <쥬앙 오브 더 데드>(2011), 프랑스의 <골 오브 더 데드>(2014), 오스트리아의 <좀비 스키장>(2016)으로 이어지는 유럽산 좀비 코미디 영화의 계보에 속한다. 

연출은 <로스 탁시오스>(1998), <초퍼>(2012) 등 여러 단편 영화를 만들었던 라스 다모아쥬 감독이 맡았다. 그가 만든 작품들 중 3분짜리 단편 영화 <페이션트 제로>(2015)는 <냠냠>과 소재(좀비)와 스타일(고어)에서 공통분모가 많다(※이 작품은 비메오를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냠냠> 영화의 한 장면

▲ <냠냠> 영화의 한 장면 ⓒ 왓챠


<냠냠>의 도입부는 영화가 담고자 하는 거의 모든 걸 함축하고 있다. 공포 영화에서 섹시한 금발의 글래머는 대상화된 여성의 상징이다. 가슴 확대 수술이 아닌, 가슴 축소 수술을 받고자 하는 알리슨은 '예상을 깨버리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그녀가 실비아, 미카엘과 향하는 병원은 영화의 '무대'가 된다. 

버스에 탄 남성들이 알리슨의 가슴을 보고 놀리는 장면과 피를 보면 구토를 일으키고 온갖 실수를 저지르는 미카엘은 이후 영화의 '웃음' 소재로 계속 활용된다. 정리하면 병원을 배경으로 가슴 큰 여성과 멍청한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코믹 호러가 <냠냠>이다.

<냠냠>의 서사는 고어와 코미디를 보여주기 위한 최소한의 얼개에 불과하다. 제한된 공간에서 여러 인물이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는 서사 자체는 진부하기 짝이 없다. 좀비 바이러스의 기원은 크로포치크 박사가 노화를 막는 효소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로 대신한다. 영화 곳곳은 말이 안 되는 것 투성이다.

근래 좀비물들이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담았지만, <냠냠>은 메시지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성형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전무하다. 인간의 욕심이 신의 처벌을 불렀다는 뻔한 소리나 늘어놓는다. 여성과 성형 수술을 소재로 삼아 고어와 메시지를 겸비했던 <열외 인간>(1977)과 장르는 같을지언정 태도는 정반대인 셈이다.
 
<냠냠> 영화의 한 장면

▲ <냠냠> 영화의 한 장면 ⓒ 왓챠


<냠냠>은 메시지 대신 고어에 정성을 쏟는다. 영화엔 머리, 손, 다리, 심지어 생식기까지 온갖 절단이 등장하고 쉴 새 없이 피가 솟구친다. 지방흡입 장치가 거꾸로 작동하여 온몸이 터지는 장면도 보인다. 여기에 말장난과 몸개그 등 웃음을 주는 포인트를 잔뜩 넣어 재미를 더한다. 다리가 잘린 좀비가 다른 좀비들보다 빨리 이동한다는 황당무계한 설정이나 난데없이 좀비 도마뱀이 등장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여러 좀비 영화 가운데 방송 세트가 무대인 <데드 셋>(2008), 기차에서 펼쳐지는 <부산행>(2016), 회사 건물을 활용하는 <메이햄>(2017)은 제한된 공간을 영리하게 쓴 사례로 꼽힌다. <냠냠>은 신체 훼손의 공간인 병원을 그야말로 신체를 마음껏 훼손하는 공포의 무대로 바꾼다.

알리슨과 미카엘 등 생존자들은 <레지던트 이블>(2002)처럼 좀비떼의 공격을 피해 갇힌 공간 바깥으로 나갈 방법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병실, 수술실, 주차장, 영안실, 쓰레기장, 옥상 등 병원의 이곳저곳을 누빈다. 때로는 CCTV로 공포를 주고 빨강, 파랑, 주황, 노랑 등 다양한 조명을 이용하여 같은 공간의 다른 분위기를 조성한다. 제작비가 8억 남짓한 저예산 장르 영화로서의 영리함이 엿보이는 연출이다. 제작비를 고려하면 분장과 특수효과도 놀라울 따름이다.

좀비 코미디 영화 <냠냠>은 <리애니메이터>(1985)와 <고무인간의 최후>(1987)로 대표되는 80년대 B급 호러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재미와 고어로 가득하다. <톡식 어벤져>(1985)로 유명한 컬트 저예산 영화의 산실 '트로마'를 21세기에 마주한 느낌도 든다. 장르의 팬이라면 좀비가 신체를 '맛있어(yummy)' 하는, '맛있는(yummy)' B급 재미의 향연 <냠냠>(Yummy)은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작품이다. 제53회 시체스영화제 상영작.
냠냠 라스 다모아쥬 마이케 노빌르 바르트 홀란데르스 베냐만 라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