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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표지 사진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표지 사진
ⓒ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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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창 너머로 보이는 소나무의 스-.
소나무 가지에 내려앉은 까마귀의 끄-.
아침 하늘에서 희미해져 가는 달의 드-.

나는 아침마다 나를 둘러싼 낱말들의 소리를 들으며 깨어나요.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도 말할 수가 없어요.

2021년 1월 출간된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에는 캐나다의 시인 조던 스콧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담겼다. 책에서는 훗날 그를 시인의 길로 이끌어준 일화가 그림과 글로 짧은 동화처럼 소개된다.

조던 스콧은 어렸을 때부터 말더듬(말이 막히는 현상)을 겪고, 여러 시집을 출간하는 동안 말을 더듬는 것에 관해서도 시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고 한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조던 스콧 작가의 첫 어린이책으로,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와 함께 용기 그리고 타인과 '다른 부분'에 대한 섬세한 관점을 제공한다. 

학교 발표시간에 말 더듬은 아이

책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아이가 창 밖을 바라보며 여러 단어들을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호기심이 많은 어린 아이였던 저자는 소나무, 까마귀, 낮달을 보고서 "낱말들의 소리가 들려요"라고 되뇌인다. 하지만 말더듬이 심해 그에게는 소나무의 시옷, 까마귀의 쌍기역, 달의 디귿을 발음하려다 막혀 육성으로 말하기 쉽지 않았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본문 중 일부분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본문 중 일부분
ⓒ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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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학교에 가자 발표시간이 열리고,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이야기해 보자고 말한다. 이윽고 교실 뒷자리에 앉은 저자가 발표할 차례가 돌아오고 아이들의 눈길이 집중되지만, 그는 "입이 꼼짝도 안 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장소에 관해 제대로 말하지 못 한다. 말을 더듬어 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한 데다가,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소리까지 들리자 저자는 상처받고 만다.

그날 하교시간 차를 타고 아들을 데리러 온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이가 어떤 일을 겪었고 왜 주눅들었는지 알게 된다. 아버지는 "발표를 잘 못했나 보구나"라고 말하며 무심히 운전대를 돌리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저자는 알록달록한 바위와 물벌레들이 많은 강가에 들른다. 그리고 아버지는 아들에게 굽이치며 흐르는 강물을 보여주며 말을 건넨다. "너는 저 강물처럼 말한다"고.
    
말 한마디가 준 용기

아버지의 말에 용기를 얻은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에 관해 그날 들렀던 강가에 관해 발표시간에 이야기하게 된다. "나를 둘러싼 낱말들을 말하기 어려울 때면 그 당당한 강물을 생각해요"라며 저자는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히는 강물"의 흐름이 자신의 말하기와 닮았다고 표현한다.  
 
나는 울고 싶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그러면 울음을 삼킬 수 있거든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나는 말하기 싫을 때마다 이 말을 떠올려요. 
그러면 말할 수 있어요. 

나는 강물처럼 말한다.

어린 시절 나 역시 어릴 때부터 말더듬이 심했다. 그래서 저자가 학교에서 발표시간 도중 같은 반 아이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일화나, '시옷, 쌍기역, 디귿' 발음이 어려웠다는 표현을 공감하며 읽었다.

10대 내내 '시옷'이 들어간 단어 앞에서 발음하기를 멈칫거렸고, 그게 싫은 나머지 너무 빨리 말하려다 말더듬이 심해졌다. 목에서 입까지 올라온 말이 유독 '시옷'이 들어간 단어 앞에서 가로막힌 듯 걸렸고, 국어시간이나 영어시간에 지문을 읽어보라는 선생님의 말은 늘 내게 재앙과도 같이 다가왔다.

일순간 조용해진 교실에서 교과서를 읽다 말을 더듬는 일, 말 더듬는 걸 피해보려다 오히려 발음이 꼬이는 상황, 결국 실수한 내 말에 웃음이 터진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간은 10대인 나에겐 너무 견디기 힘든 것들이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본문 중 일부분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본문 중 일부분
ⓒ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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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더듬은 지금은 그나마 나아진 편인데, 아직도 가끔 그 습관이 때로 튀어나와 나를 당황하게 만든다. 말더듬 때문에 웅얼거리거나 말을 너무 빠르게 해버려서 유창하게 말하지 못 했던 순간들, 그걸 보고 누군가 답답해하거나 비웃던 기억도 곧잘 다시 떠오르곤 한다.

이 책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내가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돌아가서 무언가 말을 해줄 수도, 과거를 바꿀 수도 없지만...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작가가 당시의 나에게 말을 건네주는 듯했다. 말하는 데 서툴러도 괜찮다고.

저자 조던 스콧의 글은 시드니 스미스 작가의 따뜻한 삽화와 어우러져 독자에게 작지 않은 울림을 준다. 아버지가 강으로 데려간 날 외로움이 줄어들었다는 저자는 말을 더듬는 순간 "철저히 혼자라고 느낀다"면서도,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는 게 비정상이거나 부끄러운 일만은 아니라고 적었다.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라는 조던 스콧의 말은 말더듬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나와 다른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새로운 시각을 전해준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조던 스콧 (지은이),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긴이), 책읽는곰(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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