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우리 생활과 뗄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법이 나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법적 판단으로 내 운명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적도 물론 없었다. 법 때문에 죽을 것처럼 억울하다는 생각까지는 아니었지만, 부당한 상황에 가슴을 치고 속상함을 삭이려고 노력했던 적은 두어 번 있는 것 같다. 

송사에 휘말려 법정에 섰던 사연은 집과 관련된 경우였다. 결혼 전까지 알뜰하게 모든 돈을 어머니께서는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서 지방에 구옥을 계약하셨다. 그 집은 주인이 아닌 부동산 대리인에 의해 이중으로 계약된 집이었고, 우리가 가진 계약서는 아무 효력이 없었다. 명백한 사기였지만, 들어간 돈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닥친 현실이 정말 무서웠지만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법의 판단이었다. 법에 매달렸지만 법은 너무 멀었다.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재판정은 소란하고 어수선했다. 절차에 따라 말할 기회가 주어졌지만 나쁜 사람들에 대한 단죄는 품위가 넘쳤다. 법망은 촘촘하지 않았고 억울한 사연을 품은 채로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잃은 돈이 허망했고 원래대로 돌려놓고 싶었지만 진흙탕 싸움밖에 남지 않았던 것 같다. 주어진 상황이 싫었고 벗어나고 싶었다. 명백하게 밝히지 못하는 판단이, 눈물과 고성과 욕설이 오가는 재판정이, 몇 장의 서류에 기대는 논리가 싫었다.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법은 정의의 편도 약자의 편도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첫 송사의 매운 경험을 통해 법정은 다시는 못 올 곳이라는 인식을 깊게 심어주었다.

그런 모진 사연이 있어도 법정 드라마를 좋아한다. tvN 드라마 <빈센조>는 나의 흥미를 끌어당기는 포인트가 여럿 있었다. 낡은 건물에 모여사는 세입자들의 사연과 그들이 기대는 유일한 희망인 '지푸라기' 법무법인. 생계의 위협에 맞서는 사람들과 그 건물에 은밀히 묻어 둔 금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화끈한 변호사 빈센조 까사노(송중기)의 개입 등.

모두 흥미로웠던 것 같다. 각각의 캐릭터가 선사하는 웃음으로 인해 세입자들의 절박한 상황이 심각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지만, 말하지 않아도 넉넉히 이해되는 상황에 바로 몰입할 수 있었다.

3회 차에서 지푸라기의 홍유찬(유재명) 변호사는 거대 기업과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에 의해 죽는다. 사고 현장에서 살아남은 빈센조 변호사가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며 마치 마블의 히어로들처럼 악에 대항하는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게 되는 지점이 되는 것이다. 

마블의 히어로들은 사람들의 억울함을 자신들이 가진 능력으로 즉각 해결해 준다. 우리 역사의 영웅이었던 홍길동이나 박 씨 부인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중들이 열광했던 것도,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과감한 결단이, 적어도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풀어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비슷한 연장 선상에서 드라마 <빈센조>의 매력을 느꼈다. 조직의 배신으로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한국에서 금을 찾아 자신의 길을 떠나려고 했던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가, 베테랑 독종 변호사 홍차영(전여빈)과 함께 악당의 방식으로 악당을 쓸어버리는 이야기는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 같았다.

지푸라기 변호사 홍유찬은 죽기 전, 제약회사의 불의를 확인하고 감옥에 가도 좋으니 할 수만 있다면 싹 다 불 질러 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유언처럼 뱉은 그의 말대로 빈센조는 그의 바람을 실행으로 옮긴다. 홍유찬이 말했던 악이 악을 응징하길 바라는 판타지가 일찌감치 등장했다. 

이미 애청했던 박재범 작가의 전작 <열혈사제>에서도 다혈질 사제는 재벌과 검찰, 언론의 끈끈한 카르텔을 무너뜨린다. <김과장>에서는 '삥땅 전문 경리과장'이 부정과 불합리와 싸우며 무너져가는 회사를 살린다. 드라마 <빈센조> 역시도 마피아 세계의 냉혈함을 장착한 인물의 자신만의 룰대로 악당을 쓸어내고 정의를 구현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들어가면 억울한 사연이 넘쳐난다. 현대판 신문고다. 자신들의 억울한 사연에 대한 법적 판단과 근거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많다. 법은 가진 것 없는 자들에게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때문에 억울해도 참고 사느라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는 묵직한 대못이 박혀 있다. 

소득 불균형, 차별이 만연한 세상, 억울한 사연이 점점 더 많아지는 세상에서 '눈에는 눈' 식의 함무라비 법전만큼의 대안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의 욕구가 커진다. 현실의 법은 가진 자들에게는 말랑하고 없는 자들에게는 더욱 엄격하고 가혹한 것을, 뉴스를 대충 훑어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누군가 그것을 통쾌하게 깨주길 바라는 마음은 나 혼자만은 아닌 것 같다. 드라마에 열광하는 지점은 다르겠지만, <빈센조>의 높은 시청률은 통쾌하게 악을 응징하는 데 대한 공감의 지표라고 해석하고 싶다. 현실 세계에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바람이 단번에 해결되는 모습을 드라마에서는 속시원히 보여주고 있다. 법적 당위와는 관계없이 흘러가는 상황에 열광하는 것이 어찌 보면 씁쓸하기도 하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불의 시대지만, 소득 불균형과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2021년 2월 통계청의 '2020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중 소득 1 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64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득 5 분위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002만 6000원으로 2.7% 늘었다. 수치는 모두 증가지만, 같은 증가로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지표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코로나가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든 면이 있겠지만, 어렵고 고단한 사람들의 생활은 오늘이라서 더 힘든 것은 아닐 것이다. 어제와 같은 바뀌지 않는 현실, 어제와 같은 피할 수 없는 삶, 고통을 삭이고 감추고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도록, 그래서 숨죽이고 살아가도록 세상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한동안 드라마와 멀어졌다가 다시 친해지는 중이다. 드라마에 몰입해서 악을 징벌하는 것을 응원하지만, 현실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간절히 그런 세상을 꿈꾸는 것 같다. 드라마의 상황처럼 현실에서도 약자의 편이 있기를 바라지만, '눈에는 눈' 식의 판결은 이미 불가능한 세상이다. 그럼에도, 약자들의 가슴속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현실에도 나타났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본다. 
빈센조 눈에는 눈 현대판 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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