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버지는 지난 해 환갑을 맞았다. 앞서 딸들에게 용돈 한 번 받지 않았던 그였지만, 환갑이었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현금 50만원과 꽃다발이었다. 아버지가 여전히 자신의 차에 싣고 다니는 딸들의 마지막 선물이다.
 아버지는 지난 해 환갑을 맞았다. 앞서 딸들에게 용돈 한 번 받지 않았던 그였지만, 환갑이었기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현금 50만원과 꽃다발이었다. 아버지가 여전히 자신의 차에 싣고 다니는 딸들의 마지막 선물이다.
ⓒ 나종기

관련사진보기


아버지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여전히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아버지와 팔짱 낀 큰 딸, 그 곁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작은 딸.
 
"친구처럼 재미있게 살자"했던 두 딸은 이제 세상에 없다. 작은 딸의 남자친구가, 작은 딸과 큰 딸을 모두 죽였다. '당진자매살인사건'이라 세간에 알려진, 그 사건이다.
 
2020년 6월 25일 밤, 김아무개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했다. 둘은 술을 마시다 다퉜다고 한다. 여자친구가 잠든 후 목을 졸랐다. 이후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친구의 언니 집에 침입했다. 다음 날 새벽 퇴근하고 돌아온 언니마저 살해한 후 언니의 휴대폰과 카드, 차량 등을 훔쳐 달아났다. 두 딸의 시신은 6일이 지난 7월 1일에야 발견됐다.
 
사건 발생 불과 12시간 전, 큰 딸은 아버지에 메시지를 보냈다.
 
"힘들어도 내 생각 하면서 파이팅하세요~^^ 맘에 안들면 때려쳐요ㅋ 내가 먹여살릴테니께 ㅋㅋ 점심 챙겨드세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점심을 챙기는 다감한 딸이었다. 볼 수 없는 두 딸들을 카톡에서 불러봤다.
 
"많이 보고싶다. 내 딸들..." (2020년 7월 19일 21:30)
"내 딸들 잘들 지내지." (2020년 7월 22일 14:34)

답이 없다. 대낮에도, 한밤중에도. 그리움이 사무쳤다.
 
청와대 청원 답변 "마땅한 처벌"... 또 무너진 아버지 
 
아버지는 1심 공판을 앞두고 청와대에 청원을 올렸다. "심신미약을 주장하는 범인이 제발 마땅한 벌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또 "그놈의 신상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23일에 올린 청원은 지난 1월 22일에 마감됐다. 26만 545명이 청원에 동의했다.
 
2월 19일 드디어 청와대 답변이 올라왔다.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에 대해서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국민청원에서 답변을 드리기 어려운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중략) 법원에서도 심신미약 감형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부디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마땅한 처벌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마땅한 처벌... 원론적인 답변 앞에 아버지는 또 무너졌다. "부아가 치밀어서 지난밤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청와대 답변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이럴 바엔 국민청원을 왜 해요. 26만 명 청원 동의 받느라고 무던히 노력했는데... 엄청 고생해서 해 놓은 결과물이 뭐예요. 아무것도 없잖아요."
 
지난 2월 23일, 근무지인 하남의 한 건설 현장에서 아버지 나종기(61)씨와 만났다. 마스크에 가려진 아버지의 얼굴은 한눈에 봐도 버석해 보였다.
 
"신상 공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1심에서 무기징역이 나왔는데, 무기징역은 가석방돼서 나올 가능성이 높잖아요. 외손주들이 커가고 있는데... 그 놈이 가석방돼서 우리 애들 찾아 나서면 어떻게 해요, 요새 얼마나 빨리 찾아내는데... 내가 죽고 난 뒤에 우리 손녀한테... 제3의 범죄가 일어나서는 안 되잖아요. 그뿐이에요."
 
아버지는 고등학생 손녀가 눈에 밟힌다고 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1월 20일 대전지법 서산지원 형사1부(김수정 부장판사)는 강도살인, 절도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아무개씨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했다. 사형을 구형했던 검찰도, 피고인 김씨도 항소했다.
 
"무기징역 받아서 평생 감옥에서 못 나온다, 그게 되면 받아들이겠어요. 그런데 아니잖아요. 감형돼서 나오잖아요. 사형 선고돼도 사형시키지 않는 거 저도 잘 압니다. 그래도 어떡해서든 못 나오게 하려고 이러는 겁니다.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 시킨다면 사형이 마땅합니다. 얼마나 악랄하게 범행을 저지른 건지, 제가 밝혀내야 해요."
 
지난 1월 20일 자신의 딸들을 죽인 살인자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아버지는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판사의 선고가 나오자마자 아버지는 재판정에서 "저 사람이 감형을 받아 나올 수 있고, 제3의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며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나온 아버지의 시선은 한참 동안 바닥에만 머물러 있었다.
 지난 1월 20일 자신의 딸들을 죽인 살인자에 대한 1차 공판이 열렸다.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아버지는 "너무 억울하다"고 했다. 판사의 선고가 나오자마자 아버지는 재판정에서 "저 사람이 감형을 받아 나올 수 있고, 제3의 범죄가 일어날 수 있다"며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재판정에서 나온 아버지의 시선은 한참 동안 바닥에만 머물러 있었다.
ⓒ 이정환

관련사진보기


피해자 유족의 몫이 돼버린, 그의 '악랄함' 밝혀내기 위한 고군분투    

2심을 앞두고 그의 '악랄함'을 입증하기 위해, 아버지는 고군분투 중이다. 김씨가 과거에 일하던 가게를 수소문하고, 김씨가 죽은 딸들의 휴대폰으로 쓴 소액 결제 내역을 알아낸 것도 아버지다.
 
"애들이 25일에 죽었는데, 두 딸 휴대폰으로 6월 30일, 7월 1일에 소액결제 내역이 있더라고요. 소액결제 1일 한도가 30만원이라서 딱 그거에 맞게 계획적으로 뺐어요. 106만 7000원, 그걸로 온라인 게임을 한 놈이에요. 이걸 제가 당진 경찰서 가서 정식으로 고발했어요. 검사 배정됐더만요."
 
아버지는 '왜'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했다. 왜 우발적 살인이라고 하는지, 사인이 교살은 맞는지, 도대체 왜 두 딸을 죽였는지, 경찰은 왜 현장검증을 하지 않았는지. 모두 의문이다. 9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진경찰서 관계자는 "당시 현장 검증은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면서 "당시 사건 현장 감식 과정에서 피의자 지문이나 유전자가 모두 나왔고, CCTV 등을 통해서도 피의자 진술과 현장 상황이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 애를 침대에서 목 졸라 죽였다는데, 그럼 침대가 흐트러져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현장 가보니 가지런했어요. 목 졸려 죽였다는 그놈 말만으로는 사인을 가려낼 수 없는 거예요. 사인불명이에요. 큰 애가 돈이 많은 줄 알고, 계획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거 같아요. 작은 애랑 말다툼해서 우발적으로 죽였다? 작은 애가 잠들길 기다렸다가 죽였으면 그거부터 계획 범행 아닌가요? CCTV에 찍히는 거 피하려고 큰 애 집까지 계단으로 걸어서 올라갔잖아요. 그게 어디 우발이에요. 그런데도 우발적이다, 심신미약이다, 가해자가 진술한 대로만 조서가 꾸며졌어요. 망자는 말이 없죠. 너무 억울해요."
 
아버지는 거듭 억울하다고 했다. '수사가 좀 더 치밀하게 이뤄졌다면 사형이 선고됐을 확률도 높아질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곧바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더욱이 무기징역을 받아도 감형돼 출소하는 경우가 있는 만큼, 딸들이 '어떻게, 무슨 이유로 죽임 당한 건지' 명명백백 밝혀내는 것은 아버지에게는 절박한 일이다. 따라서 '당진 자매살인 사건'과 '당진 연쇄살인 사건'은 아버지에게는 큰 차이다. 수사 방향 자체가 처음부터 달라질 수 있었다는 생각에서다.

"한 장소에서 죽인 게 아니잖아요. 작은 딸 죽이고, 큰 딸 집 가서 또 죽인 건데. 이건 연쇄살인이죠. 연쇄살인마예요. 이걸 왜 자매살인사건이라고 부르나요."
 
아버지는 "끝까지 갈 거"라고 했다.
 
"저 애들 얼굴도 못 봤어요. 썩어 문드러져서 구더기 발발 끓는... 큰 봉투에 담아 애들 보냈어요. 부모가 용납이 되겠습니까. 목 조른 후에 자수라도 했으면 (시신을 빨리 수습해서) 얼굴이라도 깨끗하게 보고 정리해서 보낼 수 있었는데... 얼마나 한이 맺혀요. 어찌 됐건 간에 끝은 봐야죠.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법이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시민 26만545명이 동의한 청원에 대한 청와대 답변. 그 서술은 길었지만 골자는 간단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이라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 그 답을 보고 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시민 26만545명이 동의한 청원에 대한 청와대 답변. 그 서술은 길었지만 골자는 간단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이라 답변을 드리기 어렵다". 그 답을 보고 아버지는 화가 치밀어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오마이뉴스 독립편집부 = 이주연ㆍ이정환 기자

태그:#당진살인사건, #교제살인, #아버지, #무기징역
댓글17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